2. 레노바레의 기본 사상
1) 성경관
한국 레노바레의 대표인 이동원목사는 『레노바레 성경』의 추천사에서 “이 성경을 앞에 두고 연구와 묵상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기록하였다. ‘연구와 묵상’은 지금까지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행하여 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행된 성경으로도 가능한데, 무슨 이유로 레노바레에서 ‘연구와 묵상’을 위한 성경을 출판하였을까? 세대주의자 였던 사이루스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는 1909에 성경을 배우려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신학적 관점으로 해석된 내용을 담아 『스코필드 주석 성경』을 출판하였다. 그 후로 특별한 신학적 관점과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다양한 주석 성경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도 서점에는 참으로 다양한 주석 성경이 꽂혀져있다. 그러나 포스터가 편집장을 맡은 『레노바레 성경』은 ‘또 하나의 주석 성경’으로 보기에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레노바레 성경』은 한 마디로 레노바레의 지침서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성경에는 ‘연구와 묵상’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자료는 물론, 성경의 본문을 묵상하는 방법이나 질문의 예 등을 찾아볼 수 없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포스터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통하여 레노바레의 주된 목적인 ‘영성 형성’을 돕는 서적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경 전체를 재구성하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레노바레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The with-God life) 일색이다. 성경의 앞쪽에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전체 서문, 파노라마식 개관, 그리고 요약을 기록하였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소개하는 소논문을 15편이나 66권의 성경 사이에 나누어 삽입하였다. 이와 같이 『노바레 성경』은 조직적으로 독자들에게 레노바레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도록 강요한다.
『레노바레 성경』는 성경을 ‘하나님과 함께하는레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책으로 소개한다. 비록 살아가는 환경과 처지가 달랐어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함께하셨다는 이야기는 성경 전체의 맥을 이해할 수 있는 중심적인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모범이 되시는 분이다. 또한 그는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자신과 같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것을 분부하셨다. 그러므로 『레노바레 성경』이 ‘영적 형성’의 도구라는 것은, 이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레노바레 성경』는 스스로 새롭게 내린 성경에 정의에 맞추어 색다른 성경 읽는 법을 제시한다. 성경 읽기, 연구, 암송, 그리고 묵상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가 없으며, 이런 신앙 행위를 통한 목적은 ‘참된 생명’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시한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주관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실재가 독자의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 대신 성경을 읽으면서 내면세계의 개혁이 일어나려면 ‘마음으로 읽는 방법’, 즉 ‘거룩한 독서’ 또는 ‘영적 독서’(lectio divina)를 선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방법은 “말씀의 본문에 굴복하고 내가 말씀을 다루기보다 말씀이 내 안에 흘러들어오도록 나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이다. 본문의 극적인 상황에 나의 마음과 생각이 젖어 들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톨릭교회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고대 수도승의 전통에 근거하여 권장하는 성경 읽기법으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레노바레 성경』 성경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기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영적 형성을 위한 지침서이다. 성경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같이 하신 이야기로 이해하기 때문에 성경의 영감의 여부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구전된 설화식의 이야기로 이해하는 『레노바레 성경』은 모세의 5경 저작설을 노골적으로 부인한다.
창세기는 초기 신앙 공동체 안에서 대대로 구전(口傳)된 설화식 이야기로 시작한다. 모든 가족가사 다 그렇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이 누구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지 점차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반복하여 들으면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이 형성되었고, 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중략) 이 시작에 관한 책을 만들기 위해 풍부한 구전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상이한 문학적 자료들을 사용했다. 고대 예배 공동체의 초기 의식에서 비롯됐음직한 유려한 찬송시들도 그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근동의 종교적인 설화와 신화에 병행하는 이야기들이 유일신 사상을 고취하려는 의도 하에 재구성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과 중요한 사건들이 상세히 기록된 긴 사화(史話, saga)들도 있다. 예배 의식 이야기들은 특정한 예배 장소들이 세워졌음을 설명해 주며 풍습과 장소, 명칭들의 유래를 말해준다. 족보들은 가족 구성원들을 세대별로 열거하고 큰 덩어리로 묶어 통일성 있는 구조로 나타낸다.
이와 같이 『레노바레 성경』은 고등비평을 수용함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노골적으로 부정한다. 20세기 초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에서 생겼던 현대주의의 신학적 논쟁의 핵심은 성경관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자들은 하나같이 모세의 5경 저작설을 부인하였다.
메이첸은 자유주의자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전혀 다른 성경이며, 그들의 종교도 전혀 다른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창세기는 초기 신앙 공동체 안에서 대대로 구전(口傳)된 설화식 이야기로 시작한다. 모든 가족가사 다 그렇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전해들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이 누구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지 점차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반복하여 들으면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이 형성되었고, 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중략) 이 시작에 관한 책을 만들기 위해 풍부한 구전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상이한 문학적 자료들을 사용했다. 고대 예배 공동체의 초기 의식에서 비롯됐음직한 유려한 찬송시들도 그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근동의 종교적인 설화와 신화에 병행하는 이야기들이 유일신 사상을 고취하려는 의도 하에 재구성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과 중요한 사건들이 상세히 기록된 긴 사화(史話, saga)들도 있다. 예배 의식 이야기들은 특정한 예배 장소들이 세워졌음을 설명해 주며 풍습과 장소, 명칭들의 유래를 말해준다. 족보들은 가족 구성원들을 세대별로 열거하고 큰 덩어리로 묶어 통일성 있는 구조로 나타낸다.
이와 같이 고등비평을 수용하는 대신 성경의 영감설과 권위를 부정하는 『레노바레 성경』은 레노바레의 신학 사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문제는 어떤 성경관을 가지고 성경을 다루는가하는 것에 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이 될 수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 때문에 성경에 입각한 신학, 성경대로 믿는 신앙, 그리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생활에 대한 강조가 정당화될 수 있다. 1920년대 미국장로교회와 1930년대 한국장로교회에서 생겼던 신학 논쟁의 핵심은 성경관이었다. 고등비평을 받아들인 자유주의자들은 모세의 5경 저작설을 부인하였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맞서 하나님 말씀의 완전한 축자영감과 권위를 수호하려 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이 읽고 있는 성경은 보수주의자들의 성경과 다르다고 비판한 그레셈 메이첸(J. Gresham Machen)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자유주의가 기독교와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는 것은 조금도 기이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토대가 서로 다른 까닭이다. 기독교는 성경의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 자유와 생활을 성경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죄많은 인간의 변화하는 정서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레노바레 성경』을 수용하는 것은 곧 자유주의의 성경관을 수용하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