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관
포스터는 교회사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풀러신학교에서 상담학으로 목회학 박사를 받고 줄곧 영성신학을 가르쳤던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교회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분명한 이유가 있다. 또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교회 역사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해석하려 한다. 또한 그는 교회 역사의 맥락에서 레노바레 운동의 의의를 찾으려 한다.
우리는 포스터가 1998년에 출판한 『생수의 강』에서 그의 역사관을 쉽게 접해 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교회사의 흐름을 6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묵상의 전통, 성결의 전통, 카리스마의 전통, 사회 정의의 전통, 복음의 전통, 성육신의 전통이다. 여기서 열거한 전통들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포스터의 관심은 제도화된 교회가 남긴 역사의 발자취에 있지 않다. 그보다도 그는 ‘영적 삶의 강물’로 비유되는 교회의 전통이 지닌 중요성을 드러내려하고 있다. 이 강물의 물줄기들은 때로는 고립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하신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고립은 역사적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몇 세기 동안 일부 귀중한 교훈이나 중요한 경험들이 무시되어 왔으나 적절한 시기에 한 인물 또는 운동이 나타나 이런 소홀함을 바로잡곤 한다. 이들이 새로운 가르침의 영향을 받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고정 관념과 다른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변화되는 일에 대해 저항하게 되고, 새로운 운동을 저해하게 된다. (중략)
이런 현상이 몇 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반복되어 있어났다. 그 결과 삶의 여러 가지 물줄기들- 좋은 물줄기, 중요한 물줄기들-은 기독교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었다. 이 분리로 인해 우리들은 균형 잡힌 삶의 비전과 믿음을 상실했다. 하지만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 동안 서로 분리되었던 물줄기들을 모으고 계신다.
이러한 주장에서 포스터가 말하는 물줄기의 흐름이 기초하는 역사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는 대부분의 교회사가(敎會史家)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외면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과거의 역사의 중심으로부터 고립, 소외, 그리고 분리되었던 전통들이 이 시대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이런 의도로 포스터가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포스터는 자신이 제시한 6가지의 교회사의 흐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예수를 본받고 닮아가는 삶(Christlikeness)을 귀중한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덕을 쌓고, 성령에 충만하고, 넘치는 사랑을 실천하였던 개인과 단체에 대해서 교회사적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였다. 그는 교리적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기를 거부하는 반면, 분명하게 삶의 모범을 제시하시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사느냐의 여부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가 예수를 본받는 일을 신앙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터가 전통적인 교회사의 서술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교회사의 흐름을 재편성하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 가운데 나타났던 신학 전통의 특성을 아예 무시했다는 점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먼저 ‘묵상의 전통’의 흐름을 나타낸 도표에 포스터의 그의 넓은 역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여기서 2000년 동안 교회사에 나타난 여섯 가지의 ‘중요한 운동’을 소개하였는데, 사막의 수도사와 수녀들, 베네딕트회 수도회, 성 클라라 수녀회, 공동 생활 형제 자매회, 모라비안 운동, 그리고 경건주의 운동 등이다. 또한 이곳에서 그는 여러 ‘주목할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이집트의 안토니우스, 닛사의 그레고리, 노르위치의 줄리안, 십자가의 요한, 리시우의 테레사 등의 신비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20세기의 인물들로 선정된 세 사람, 캐서린 휴에크 드 도허티,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웬은 모두 가톨릭이다.
또한 ‘카리스마 전통’의 흐름을 나타낸 도표에서, 포스터는 ‘중요한 운동’을 몬타누스주의 운동, 그레고리안 전례 운동, 프란체스코 수도사들, 재세례파, 오순절 운동, 은사주의 운동의 부흥, 그리고 현대 예배의식 각성을 꼽았다. 또한 ‘주목할 인물’로 몬타누스, 빙겐의 힐데가르드, 조지 폭스, 윌리엄 시모어, 오랄 로버츠, 그리고 존 윔버 등을 들었다. 이들도 모두 보수적인 신학의 전통에서 이탈한 개인과 단체들이다.
그러나 포스터는 그들을 소개하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진정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삶을 본받기 위해 노력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교회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덕분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그가 소개한 대표적 인물과 운동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부분이 첨부되어 있다. 아마도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의도와 함께, 교회 역사의 영웅과 같은 그들을 독자들에게 널리 소개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그들을 소개하는 글에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교회의 살아 있는 역사를 구성하는 인물들과 운동들을 흘끗 살펴보는 일을 즐기기 바란다.”
포스터는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솔직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 가운데 지난 2천년 동안 이끌어 오신 교회의 흔적을 자신이 만든 ‘영적 삶의 강물’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려 한다. 문제는, 교회 역사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없는 독자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포스터가 재구성하여 소개하는 교회역사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없는 일반 성도들은 그의 잘못된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객관성을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교회 역사를 해석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니다. 교회 역사에서 자신이 평생토록 힘써온 ‘영적 형성’의 의미를 찾고 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교회사의 진실을 왜곡시키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