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구원관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을 척결하고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함으로써 교회를 새롭게 변혁시키고자 했던 운동이다. 특히 요한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후대 교회에게 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교리를 분명히 하였다.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가톨릭과 개신교는 각기 독자적인 교리와 역사를 지닌 두 개의 다른 종교가 되었다. 서로를 향한 불필요한 적대심이나 증오감은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만 두 종교 사이의 교리적 동조는 결코 가능하지 않으며, 어떤 이유에서도 이를 허용할 수 없다.
그런데 포스터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를 혼합시킴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이 후대에게 물려준 귀중한 유산을 애써 거부하려 한다. 포스터는 2004년 Theology Today에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시는 구원의 속성을 설명하는 ‘Salvation is for Life'라는 논문을 기고하였다. 이 논문에서 포스터는 구원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비록 그가 선택한 단어는 성경적으로 보이지만, 그 표현의 의미는 종교개혁자들의 구원관으로부터 명백히 이탈한 것이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 우리가 소유한 “새로운 삶의 질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포스터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닌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 속사람의 심원이 갱신되어 창조물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완벽한 자녀로 변화되는 것을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게 된다. 이들은 새로운 삶의 질서를 지녔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한다. 포스터는 로마 가톨릭의 신인협동론적인 반펠라기안주의를 그대로 도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주입된 은혜(infused grace)를 통하여 인간의 행위(work)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나는 ‘은혜 안에서의 성장’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를 말하기를 원하는데, 이 견해들이 이상할 만큼 모순되게 들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잘 어울리는 것들이다. 먼저, 우리의 생각과 삶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비약적인 도약을 촉진시키는 신적 은혜의 주입(infusion of divine grace)을 관대하게 허용해야 한다. (중략) 나의 두 번째 견해는 동전의 다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는 노력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것은 실제적인 노력이다.
포스터는 ‘영적 형성’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으로 보았다. 성도들은 “영적 형성”이란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변화에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은 곧 자신을 산제사로 드리는 거룩한 행위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칭의는 십자가의 공로를 근거로 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법적 선언이라는 것과, 이후로부터 우리는 평생토록 성화의 삶을 살다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 성화에 이른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발견하였다. 그러나 포스터는 죽음 이후에나 이루어질 영화가 이 땅에서 성화와 함께 이미 시작된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완전한 변화(성화)의 과정을 시작하시기 위하여 우리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신다. 그것은 현재에 시작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오히려 지금 당장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있으며 반드시 그리 하신다.” 포스터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얻는 새로운 질서의 개념은 요지부동한 중심적 사상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포스터의 주장과 정반대로 타락한 인간은 부패와 무능으로 인하여 어떤 노력으로도 그리스도를 그대로 본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최고의 거룩한 행위는 결코 반복될 성격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얻으며, 거룩하게 되고, 나아가서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신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예함으로써 그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그의 생명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인위적으로 흉내내며 닮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터의 견해를 선택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반펠라기안주의적 구원관을 수용한다는 것이요, 그것은 곧 종교개혁자들의 유산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