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원 론(救援論)
김명도 교수
오늘 강의의 주제는 기독교의 구원론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얻었는가 하는 말입니다.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물에서 건져냄을 받듯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구출 받은 것을 말할텐데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까? 구원론을 논함에 있어서 이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을 건져내면 그 분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누군가가 건져내 주지 않으면 그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담> 이라고 불리우는 인류 시조의 자손들이고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죄를 지은 탓에 그의 후손들인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 되었다고 로마서 5:12절 이하에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댓가는 죽음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신부에게 가서 죄를 사죄 받는 것은 터무니없는 거짓입니다. 죄를 용서 받으려면 하나님에게 직접 나아가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용서 받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10).죄의 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신부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권한이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죄인이기에 죄인이 죄인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없다는 이치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에게 가서 고해 성사 (告解聖事, Penance) 를 하여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신부가 하라는 대로 벌을 받으면 그것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치지만 그렇게 해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기 때문에 죄지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내가 죽을 대신 죽어주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딤 2:5이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어린애도 죄를 타고 납니다. 시편 51편5절에 보면, 다윗은 모태에서 죄악 중에 잉태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악 중에 태어납니다. <사람은 날 때에 본래 선하게 태어나는데 환경 때문에 악해 진다> 라고 가르치는 공자의 성선설 (性善說) 은 거짓입니다. 성경 시편 51편 5절이나 시편 58편 3절 등이 사람은 나면서 죄악 중에 태어난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던데 죄의 댓가는 죽음이라고 또한 성경 로마서 6:23절에서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죽게 되었고, 죽는다는 말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죽음이란 절대로 우리의 본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영혼과 육신으로 되어 있는데 이 둘은 죽어서도 존재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신자이건 불신자 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영원불멸입니다.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단지 그 영혼이 어디서 어떻게 영원을 보내는가 하는 문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단지 일시적으로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작용을 말할 뿐입니다. 주님이 재림하게 되면 다시 영혼과 육신이 연합하여 영원히 영과 육의 인간으로 영원히 삽니다. 영원히 사는 곳은 신자와 불신자가 다릅니다. 신자는 하니님과 같이 살게 되고 불신자는 지옥에서 의식상태에서 영원히 고통가운데 살게 됩니다. 신자는 천국에서 영원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의 인간의 육은 지금의 우리의 육신과 같은 썩을 육신이 아니고 시들지 않고, 썩지 않는 영화로운 몸입니다. 그래서 그 영화로운 몸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3:9절이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물론 이것은 구원 얻은 성도에 한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명목으로만 출입하는 <사이비신자>는 이에서 제외됩니다.
또 한편 아직도 죄악 중에 있어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죽을 때 영혼이 몸을 떠나는 현상은 신자와 같지만 그 후에 몸과 영이 아울러 영원토록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엄연한 사실을 꼭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기독교계는 <사이비신자 (似而非信者, quasi-Christians) 들이 대다수 입니다. 그래서 눅 18:8에서 주님은 <인자가 다시 오는 날 이 세상에서 “성경적” 믿음을 보겠는가?> 하고 묻습니다. 사실 오늘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한국에도 성경적인 믿음은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대개가 형식주의 이며 믿는 도리를 모르면서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사회 각계에서 일어나는 부정행위에 <신자> 들이 불신자 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