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를 얻으면, 다음에는 양자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불러 주시고 중생시키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다음에는 양자로 삼아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마귀의 자녀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해 지는 것입니다. 골로새 1:14에 보면 이제 <우리는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나라로 옯겨 졌다> 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1:12에 보면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로마서 8:15-17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이니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양자의 개념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부를 “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과 우리 서도가 하나님을 ”아버지“ 라고 부르는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양자로서가 아닌 성 삼위일체의 제2위로서 부르시는 말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원수이던 우리가 하나님에게 입양되어 영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 뿐입니다. 본문 로마서 8장에서 “아바” 란 말은 아람어 (Aramaic) 이지만 가장 친근감 있게 부르는 어법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집에 입양되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후사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를 눈동자처럼 사랑해 주시고 우리의 출입을 영원까지 지켜 주시는 분이시다 (시편 121편).
양자에게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가끔 징계가 있다. 그래서 히브리 12장 8절 이하에 <사랑의 징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 고 하였습니다. <징계가 비록 그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아도 이로 인하여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사람은 가끔 하나님의 <사랑의 매> 를 맞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욥기 5:18에 보면,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도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사랑의 징계를 하십니다 시편 119: 71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했고, 또한 시편 50:15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가끔 어려움도 주시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시험은 주지 않는다고 고린도전서 10:13 절에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1:2-4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가끔 어려운 시련을 주신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말씀 들입니다.
양자가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그냥 내어 버리지 않고, 눈동자처럼 사랑하여 길러 주십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부르심에서 중생, 칭의, 양자 등은 모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성화는 독특하게 오래 지속하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어린애가 충생하면 자라듯, 믿는 성도도 처음 예수를 믿고 중생하여 회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장하여야 하는데 그 성장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성장과정이 빨라서 믿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신앙이 많이 성장한 것을 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