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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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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15 00:39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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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317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
 


김명도 교수
 
 
기독교를 믿는 성도들이 오해하는 교리가 성령이다. 어떤 분은 성령을 하나의 힘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성령은 힘이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 바로 그분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삼위 일체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령도 믿지 않고, 성자 예수도 우리가 믿는 바 성삼위 중 제 이위로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는 “우리 보다 먼저나신 피조물”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골로새 1:15절 말씀에 의거한다고 하지만, 성경은 항상 문맥을 따라 해석해야 한다. 골로새 1:16을 보면 저들이 피조물이라고 믿고 있는 그 예수는 바로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조물주 바로 그 분이시다. 그는 하나님 바로 그 분이시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나 종교는 구원이 없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은 종교나 교파와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WCC에는 문제가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다른 종교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주님이 “하나가 되라”고 기도한 것은 신앙이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지, 신앙체계가 전혀 다른 사람들, 이를테면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과연 창세기 1:26절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인데 왜 일인칭 복수인 “우리”란 말을 썼을까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기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입증한다. 또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내려가서”라고 하였다. 역시 하나님은 자신을 일인칭 복수로 나타냈다.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입증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결정적인 삼위일체의 교리의 입증은 요한복음 12장에서 요한이 이사야 6장 말씀을 인용한데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 6장은 이사야가 선지자로 안수 받는 장면이다. 이사야는 만군의 주 여호와를 만나 “화로다 나여 화로다 나여 입술이 부정한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를 뵈었음이라”라고 하였는데,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2장에서 그 때 이사야가 본 것은 주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입증은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했는데,  아버지, 아들 성령이 삼위일체인 것을 증명하는 것은 “이름으로”란 말이 단수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만일 삼위가 각각 다른 분이라면 복수로 되어 있을 것인데,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은 삼위가 모두 한분 하나님을 의미함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이 외에도 디도서 2:13에 보면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 대목도 볼 수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항상 계시며 각각 각위가 하시는 일이 독특하시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기 원하시는 분은 “아다나시우스 신경”을 참고하기 바란다. 모든 신경 중에서 <아다나시우스 신경, The Athanasian Creed>은 우리의 믿는 도리중에서도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인성 신성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초대교회의 우수한 개혁주의적 신조이다. 전문 44조로 좀 길지만 꼭 읽어 내용을 숙지해 두자.
 
대개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을 혼동하는 분들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을 언급한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읽어가면서 보면, 그 오순절이 자꾸만 반복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어떤 교파에서는 오순절은 지금도 반복되고 세상 끝날 까지 반복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Wayne Grudem 같은 학자 (필자보다 신학교 1년 후배) 도 지금도 예언이 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개혁주의의 거장이며 필자의 신학교 시절 은사이신 O Palmer Robertson 은 새로운 책을 써서 Grudem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 책의 이름은 "The Final Word" 우리 말로는 “현대의 방언과 예언 과연 성경적인가?” 라고 번역되었다.
 
또 이들은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란 구절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니, 오늘도 오순절에 있었던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어제와 오늘과 영원토록 불변하다는 말씀은 그의 속성(attributes 屬性)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의 사역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가령 노아의 홍수가 다시 반복하는가? 가령 십자가 사건이 다시 반복하는가? 아니다. 구약의 의식법이 다시 반복하는가?  이런 일은 하나님의 구속사(God's Redemptive History)에서 유일회적(唯一回的)인, 단회적(單回的)인 사건들이다.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할 능력이 없어졌거나, 하나님이 변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역이 변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끝난 지금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안 하시는 것뿐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상실되어서가 아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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