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은 칭찬을 들으며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를 보라. 이들은 칭찬을 받으며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다(행 6:3-5). 바나바도 그러하고(행 11:24),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도 그러했다(행13:52).
2. 성령 충만은 어느 특정한 직무를 담당할 때도 하나님이 내리신다. 누가복음 1:15-17에 보면, 세례 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9:17 이나 사도행전 22:12-15에 보면, 다메섹에 들어가서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는 사울은 앞으로 사도로서 성령이 충만했다.
3. 성령 충만은 사도나 선지자 같은 항구직(恒久職)을 맡은 사람을 따로 성별하여 세울 때가 아니더라도, 임시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도록 일을 맡길 때 주어진 사실들이 있다. 세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선지가가 아니고 제사장이었지만, 그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했다고 누가복음 1:5-8에 말한다. 바울도 전도할 때 성령이 충만했고, 베드로도 산헤드린에서 증언할 때 성령이 충만했고, 에베소 5:18에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는데, 성령 충만은 모든 성도가 받는 것이며,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받는 은혜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이다.
엡 5:18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하면 성령 충만의 분명한 뜻을 알 수 있다. 몇 가지로 살펴보자.
1,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형은 신약 성경에서 모두 현재 명령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성령에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헬라어에서 현재 명령은 항상 동작이 반복되는 것을 말하고, 정과거(定過去 aorist form)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령 예를 들면, 요한복음 2장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독을 채워라” (2:7) 하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 주님은 정과거형 동사(定過去動詞形)를 사용하여 말했다. 그러므로 물을 채우는 것이 한 번만 하라는 것이지 자꾸 채우라는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요한일서 3:9에서도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에서 “죄를 짓는다”는 말은 현재 동사이므로<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임이 분명하다. 정확한 뜻은 원어에서 온다.
2.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복수형이다. 원문에서 보면, 그 동사는 “plerousthe en pneumati”이다. 그러므로 복수 수동태 현재 명령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 의미는 자명하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며,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서 어느 특정한 부류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님을 알자.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기독교 지도자 중에는 성령의 충만은 어느 특정한 교파나 교회에 출석하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속이는 자들이 있으니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사이비 지도자들을 조심하라. 말세의 특징은 “속임수”이다. A great deception is in vogue. Beware. (편집자 주: 가장 큰 속임은 성행하는 것 속에 있다. 조심하라.)
3. “성령 충만하라”는 말은 수동태이다. 그러니까 성령이 너의 마음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기쁨으로 그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절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다. 엡5:18에서 술 취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서 취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가만히 있으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 저절로 부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술 취하는 사람은 술을 먹어야 취하듯, 우리도 성령을 충만함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원의 서정에서 중생, 믿음, 회개, 칭의, 양자 등은 모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한 순간에 하시는 사역이지만, 성화는 하나님과 성도가 같이 해 나가는 일이다. 성도는 가만히 앉아서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