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칼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Deus ad nos)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pro nobis)이시다. 하나님은 뜻하신 즉 이루시고 이루신 즉 의로우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능력을 주신다. 곧 저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두려움이며 짐이나, 우리에게는 그를 아는 것이 즐거움이며 자유이며 능력이다. 저들의 짐은 굴레이나, 우리가 지는 그리스도의 멍에는 자유이며 진리이며 사모할 것이다. 성경은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친다. 오직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만나며 대화하며, 그의 상 주심과 징계하심에 순종한다. 칼빈이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삼위 하나님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음으로, 그가 우리가 모르는 뜻에서조차 자신에게 충실하실 때, 그것이 곧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믿음으로, 우리는 그의 신실하심을 찬양한다. 우리는 칼빈을 통하여서 성경의 진리를 함께 나누기를 원하며, 내 속에서 고백되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칼빈의 신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혹은 칼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Quo Vadis, Calvine)? 그로 돌아감이나 그를 극복함이나 그로 돌아감으로 극복하기를 말한다면, 그가 말한 바는 무엇인가? 칼빈신학의 중심 주제로 Calvin’s Calvinism이라고 명명된 예정론과 섭리론이 주로 논해졌다.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나, 루터란들과 카톨릭 신학자들과 더불어서 일부 언약신학자들이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으로 비판해 왔듯이, 그가 엄격한 하나님의 의지만을 신학의 주제로 삼아서 성경을 편협하게 해석한 것은 아니었다. 칼빈 신학의 중심으로 전체 축자 영감 성경론,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인의 삶, 성령론, 교회론 등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나, 필자는 다음과 같이 칼빈 신학의 요체를 잠정적이나마 총체적으로 정리해 본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영으로 중생한 성도가 그의 중보로 그의 의를 전가 받아서 영감된 말씀을 성령으로 조명되어 감화 받은 심령 가운데 믿음으로 받아서 부요한 신지식에 이르고 또한 전체 구원 과정을 통하여서 처음 언약 가운데 약속 하시고 후속 언약들 가운데 예표하시며 새 언약 가운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부활의 권능을 보이신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의 오직 그리고 전적인 은혜와 그로 말미암은 성도의 교회와 사회의 삶.’ 이는 필자의 관점에서 칼빈의 기독론적·삼위일체론적 성경 이해를 푼 것에 다름 아니다.
칼빈의 신학을 반추함으로써 우리가 가야할 혹은 돌아 가야할 목적지가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중심적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이 주변에 칼빈 읽기의 달콤함(suavitas)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입술로(ore)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말씀의 객관성을 드러내는 가르침임을 믿음으로. 그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신학을 수놓아야 할 원리로서 칼빈이 개진한 진정한 Sola scriptura로부터 나온 진리라는 신뢰로. 개혁 신학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계속 개혁되어 져야 함(theologia reformata est semper reformanda)을 믿음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으로. 온전히 믿기만 하면 가장 부요한 지식에 이르며, 성경적 고백은 그 자체가 이미 큰 체계임을 확신함으로. 그와 함께 우리는 모두 미래를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나그네임을 깨달음으로. 우리가 모두 십자가지기임을 고백함으로, 오직 이로써 감사함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