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계, 변하지 않는 헌신
이 세 가지 중심 개념들(모든 권력은 상대적임, 공동 기업으로서의 사회, 그리고 영역주권)은 내가 믿기에 개혁파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그것들의 영향은 적어도 북서부 유럽과 북미 개신교 국가에서 강력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은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도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외부와 내부에서 여러 비평적 평가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정부로부터 너무 많은 책임있는 행동들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가? 기독교인들이 이 모든 원리들을 진심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카이퍼가 인정한 것처럼 너무 자발적인 선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 이것들은 그 “신 뒤르껭(neo-Durkheim)”적 야심, 즉, 차알스 테일러(Charles Taylor) 식으로 설명하자면, 모든 사회적 구조 속에서 너무 높은 기독교 윤리의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는 아닌가? 저는 이 시간에 이러한 질문들을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른 여러 환경들, 지구화의 위력을 지적하기를 원하는데 이것들은 제가 기술한 큰 개념들의 기능에 대하여 어떤 도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혁신학과 사상의 중심적인 정치개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지구화가 진행되는 세계 속에서 이런 개념들이 보다 더 깊은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시간에 저는, 권위, 사회성, 책임, 지구화, 개인주의화에 대한 전체 그림에 영향을 주는 두 가지 강력한 변화를 다루려고 합니다.
첫째, 지구화는 새로운 종류의 유토피아주의를 제공하고 세계적으로 권위의 기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토마스 프리드만(Thomas Friedman)이 설명했듯이 “평평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공간은 더 이상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지구화는 통신기술에 의존하고 사업에 기회를 주고 노동력을 대체하거나 퇴출시키고, 동일한 행동 규칙과 모든 문화에 있어서 국제적인 표준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지구화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독재적인 경제관을 가지는 권력들을 출현시키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적인 권력 기구들은 다민족성, 은행, 전체 경제 중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존하는 정치권력들에게 도전합니다. 우리는 지구화시키는 권력들을 결합시킬 수도 있고(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그들과 경쟁할 수도 있고(중국이 하듯이), 그것들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쿠바나 북한처럼).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지구화는 지역적/문화적 환경들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정의를 요구하지도 않고 심지어 법적인 표준들을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법의 규범을 유지하는 정부가 필요하고, 정의의 표준들을 계속 유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정한 권력 기구들로 이루어지는 지구화 속에서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에 권력들이 제멋대로 하고 국가를 뛰어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것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통제하고 지도하는 이런 힘들은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곳에서만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다 “언약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일상의 필요들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직면하면서 우리의 삶을 삽니다. 심지어 지구화라는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작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과제입니다. 개혁사상은 결코 유토피아적 꿈을 따라가지 않았고, 일상적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책임있는 행동은 이런 환경들을 무시하지 않고,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반응하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정의를 행함으로 큰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필요들을 이야기하고, 정치/사회적 책임들을 서로 긴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다루고자하는 두 번째 도전은 개인화입니다. 저는 여기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하게 창조된 모든 인간에 대해 성경이 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모든 참 교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독립적이고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주의가 해체시키는 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서구에서 사람들은 자기 성취의 유토피아적인 꿈을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공동체나 사회적 책임에 매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해체의 결과들을 보고 있습니다. 자율적 개인이라는 사상은 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율의 “뽑아버리는”(안토니 기든이 말했듯이) 효과는 사회적이고 도덕적 자본(즉 서로 돕는 능력과 사회성과 준비성)에 대해서 토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부터 시작하여 온갖 종류의 공동체를 항상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세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모든 삶에서 책임있는 행동의 실천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세계 모든 곳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구화의 배타적 힘을 자신들의 삶에서 느끼는 그룹들과 함께 자기 주위에서 도심에서 자원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