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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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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8 00:26
양화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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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433  

개항지인 인천에는 1883년에 이미 외국인 매장지가 설정되어 있었다. 허드가 부임하기 전에 서울에서 2건의 외국인의 장례가 있었는데, 이때는 인천까지 운구하여 매장하였다. 그러나 7월은 가장 무더운 날씨인데 당시 사정을 고려해 본다면 인천항 해안 언덕까지 운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공사 허드는 조선국 교섭통상사무 독판 민종묵(閔種黙)에게 ‘외국인 장지 획정요청’ 공문을 작성하여 알렌을 통역으로 대동하여 직접 통상사무아문을 방문하였다. 헤론의 죽음이 임박하여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속한 처리를 요망하고 기대했으나 헤론이 임종했던 7월 26일까지 장지가 결정되지 못했다. 장례식은 27일 주일 오후 5시 30분에 동료선교사들의 주제 하에 거행되었다. 주한 선교사들은 서울 가까이 묘지로 쓸만한 장소를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조정에서 지정해 준 곳은 한강 건너편 야산 기슭 모래밭이어서 묘지로는 적절치 못했다. 이런 시간을 다투는 우여곡절 끝에 28일 아침 양화진이 외국인 묘역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헤론은 양화진에 묻혔다. 헤론은 양화진에 묻힌 첫 서양인이 되었고 그의 죽임이 외국인 묘지 획정의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1893년 10월에는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러시아 등 5개국 공사가 공동명의로 조선 정부에 양화진을 ‘외인 묘지’로 공식 승인해 주도록 요청하였고 이 요청이 승인되었다. 1904-5년에는 양화진 외인묘지의 확장을 요청하였고 1905년에 인준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구미 각국 영사관과 외국인들의 대표가 묘지기를 두고 관리해 왔다. 그런데 1913년 7월 1일자로 조선총독부가 마련한 토지대장에는 이곳 양화진은 ‘경성구미인묘지회’(京城 歐美人墓地會) 소유로 등록되어 있다. 

 

1942년 5월 22일 조선총독부는 한국내의 모든 외국인의 재산을 ‘적산’(敵産)으로 압류하였음으로 양화진의 외인묘지도 동일한 운명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다가 미 군정하인 1946년 10월 1일자로 다시 ‘경성구미인묘지회’ 소유로 등기되었다. 그러다가 1985년 6월 17일자로 재단법인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사업회(이사장 한경직)로 그 소유권이 넘어오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때부터 실제적인 묘지조성이 이루어졌고, 이곳에 한국 기독교선교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동시에 ‘경성 구미인 묘지’는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으로 개칭되었다. 

 

이전까지 이곳은 잊혀진 역사의 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가 그 백년의 역사를 보내면서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했고, 양화진은 한국교회의 역사를 간직한 기억의 땅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986년 출간된 전택부장로의 「이 땅에 묻히리라」(홍성사)나 정연희권사의 소설 「양화진」(홍성사, 1986, 1992)이 숨겨진 역사의 땅을 기억의 땅으로 소생시키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는 107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이중 38개의 십자가는 각 나라와 시대 교파별 배경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또 타블렛(Tablet) 형태의 비석 속에 세겨진 69개의 십자가는 여러 문양으로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지만 종족과 방언가 민족은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 하나라는 우주적인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양화진에는 헤론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언더우드, 아펜젤러, 베델, 헐버트, 벙커, 베어드, 무어, 윌리엄 홀 등 숫한 이국의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따라 이국의 나라로 들어왔고, 과로와 풍토병, 학질이나 이질로 혹은 사고사로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죽어서까지 이 땅을 떠나지 않고 한 줌의 흙으로 남아 있다.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돌아보면 유난히 우리의 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헐버트가 묻힌 곳도 그 하나이다. 우선 헐버트의 묘비명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호머 헐버트(Homer B. Helbert), 1863년 1월-1949년 8월. 비전의 사람이자 한국의 친구.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보다는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그리고 아래의 글귀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일천팔백육십삼년 일월 이십육일 미국에서 탄생, 일천구백사십구년 팔월 오일 서울에서 별세.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단기 사천이백팔십이년 팔월 삼십일일, 헐벗박사 장의위원회 새움.” 

 

헐버트가 어떤 분이었기에 “한국의 친구”라고 했을까? 그는 유니온신학교 재학 당시 조정의 초청을 받고 1886년 6월 내한했다. 처음에는 관립 소학교 교사로 있었으나 육영공원이 설립되자 그해 8월부터 외국어교사가 되었다. 1894년 육영공원이 폐교하게 되자 그는 북장로교 선교부 소속 선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는 1903년 우리나라 YMCA 창설의 주역으로서 초대 회장이 되기도 했고,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를 발간하기도 했으며, 배일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로 국운이 기울 때 고종은 헐버트를 밀사로 미국에 보내 고종황제의 친서를 전달하고 미국의 도움을 청하고자 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의 비밀조약 가츠라테프트 조약을 맺어 일본의 조선 침략을 묵인해 주려했으므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지는 못했으나 헐버트는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의 운명을 슬퍼했다. 그는 「전환기의 한국」(The Passing of Korea)을 써서 한국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실로 그는 격변기 한국에서 한국인의 처지를 함께 괴로워했던 한국의 친구였다. 그러했기에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소망했던 것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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