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는 [회원가입]을 하신 후에 내용들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회원가입 후, 하루 정도 기다리시면 정식회원으로 등록해 드리며 모든 내용을 다 보실 수 있습니다. 

사역의 특성상, 불가피한 절차임을 이해 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drcharleshong@gmail.com 으로 문의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20-12-18 04:3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18/20)
인쇄
 글쓴이 : 창암
조회 : 1,268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요엘 2:13]

옷을 찢는다든가 종교적 감정을 나타내는 다른 외적 표시들은 나타내기는 쉬운 반면 위선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회개는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훨씬 적게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아주 복잡하고 자세하게 규정된 의식들을 준수하려 듭니다. 이런 것들은 육을 기쁘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기독교는 사람을 너무 겸손하게 만들고 그 마음의 동기까지 철저히 조사하기 때문에 세상적인 인간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겉이 화려해 보이고 세상적이며 얄팍한 것을 선호합니다. 외적인 종교 의식을 준수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만족감을 줍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자만심을 부풀려 주며, 자기 의를 세워 줍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사망의 강을 건너 심판대 앞에 섰을 때는 종교 의식보다 더 실속 있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경건을 떠난 모든 신앙 생활은 완전히 헛된 것입니다. 진지한 마음 없이 드리는 모든 종류의 예배는 하나의 속임수로 천국의 위엄을 조롱하는 뻔뻔스러운 짓입니다.
마음을 찢는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으로 진지하고 엄숙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은밀히 체험하는 슬픔입니다. 단순히 어떤 의식을 지키는 형식 속에서가 아니라 성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역사하시며 그 영혼을 움직이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체험되는 슬픔입니다. 단순히 말로 설명되거나 믿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모든 자녀들이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주 예민하고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굉장히 겸손케 만들며 죄를 완전히 추방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를 낮추지 않는 교만한 영들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자비로운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달콤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자들에게만 속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차별적입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마음을 찢으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적인 마음은 대리석만큼이나 단단하니 어떻게 그 마음을 찢어야 할까요? 그 마음을 갈보리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죽어가던 구주의 음성에 바위들이 단번에 터졌는데 주님의 그 음성은 지금도 여전히 강력합니다.
오 복되신 성령이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죽어가시며 부르짖은 그 부르짖음 소리를 듣게 해주소서. 그러면 애통할 때 그 옷을 찢었던 사람들처럼 우리의 마음도 찢어질 것입니다.


 
 

일반형 뉴스형 사진형 Total 7,994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89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2/21) 창암 01-12 1404
4893 중생 (5) gopeace 01-12 1496
489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1/21) 창암 01-11 1088
4891 중생 (4) gopeace 01-11 1408
489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9/21) 창암 01-09 982
4889 중생 (3) gopeace 01-09 1081
488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8/21) 창암 01-08 896
4887 중생 (2) gopeace 01-08 1124
488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7/2021) 창암 01-07 983
4885 중생 (1) gopeace 01-07 1322
488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6/21) 창암 01-06 941
4883 이병규 목사의 신학사상 (2) gopeace 01-06 1064
488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5/21) 창암 01-05 1629
4881 이병규 목사의 신학사상 (1) gopeace 01-05 1109
488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4/21) 창암 01-04 1717
4879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 (5) gopeace 01-04 1318
487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1) 창암 01-02 1737
4877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 (4) gopeace 01-02 1295
487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1/21) 창암 01-01 1905
4875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 (3) gopeace 01-01 1366
487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31/20) gopeace 12-31 976
4873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 (2) gopeace 12-31 1190
487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30/20) 창암 12-30 1141
4871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 (1) gopeace 12-30 1788
487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9/20) 창암 12-29 1825
4869 성경의 권위 (8) gopeace 12-29 1209
486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8/20) 창암 12-28 1038
4867 성경의 권위 (7) gopeace 12-28 1109
486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6/20) 창암 12-26 2180
4865 성경의 권위 (6) gopeace 12-26 1854
486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5/20) 창암 12-25 1070
4863 성경의 권위 (5) gopeace 12-25 1848
486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4/20) 창암 12-24 1924
4861 성경의 권위 (4) gopeace 12-24 1434
4860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3/20) 창암 12-23 1214
4859 성경의 권위 (3) gopeace 12-23 1213
485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2/20) 창암 12-22 1902
4857 성경의 권위 (2) gopeace 12-22 1693
4856 성경의 권위 (1) gopeace 12-21 1422
4855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21/20) 창암 12-21 1130
4854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19/20) 창암 12-19 1040
4853 양화진 (3) gopeace 12-19 1198
4852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18/20) 창암 12-18 1269
4851 양화진 (2) gopeace 12-18 1433
4850 양화진 (1) gopeace 12-17 1314
4849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17/20) 창암 12-17 1708
4848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16/20) 창암 12-16 1090
4847 개혁신학과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 (5) gopeace 12-16 1561
4846 스펄젼과 함께하는 아침묵상(12/15/20) 창암 12-15 875
4845 개혁신학과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 (4) gopeace 12-15 168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