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권위
김명도 교수
I. 서 론
사람이 태어나서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마치 온 세상이 자기를 위하여 있는 것처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어서 어떤 기회에 혹 문서 전도나 방송 전도를 받든지 혹은 친구나 친척을 따라서 가까운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점점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어 새사람 되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교회에 한번 두 번 나오게 될 때 처음에는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성경말씀을 생각한다. 그 이상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자 일 년쯤 교회에 잘 출석하게 되면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말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체계 있게 알게 되는데 즉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으로 죄의 값은 사망이니 나는 필연코 죽을 수밖에 없는(영혼과 육신 둘 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나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내가 마땅히 내 죄 값으로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을 내 대신 받으시고 피 흘려 돌아가시므로 내 죄를 대신 짊어져 주셨는데 그 예수님의 피를 믿는 마음을 보시고(신앙) 예수님의 의(義)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셔서(Imputation of Christ's Righteousness)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함 받고 의로움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며 구원받게 된다”는 지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성경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고 성경은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시기 전 성경 봉독 할 때만 잠시 펴서 볼뿐 그 외는 성경을 볼 시간도 없고 또 성경은 너무 어려워서 몇 번 읽어도 그 뜻을 정확히 알기가 어려워 그냥 접어 두고 주로 주일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만 성경을 공부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이다. 또 부흥회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기 쉽다. 이 어려운 세상, 불신의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한 주일에 한번 혹은 두 번 목사님의 설교만 가지고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부족하다. 성경은 꾸준히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 성경은 기도하시면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으시면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옛날 리챠드 로테(Richard Rothe) 라는 독일의 신학자는 성경말씀은 세인(世人)이 알 수 없는 <성령의 언어>로 기록이 되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기도 했다. 이것은 아돌프 다이스만(Adolf Deissmann) 이라는 19세기 말의 독일 Marburg시의 목사님이 끈질기게 연구한 결과 “성경에 기록된 언어는 성령의 특별한 언어도 아니고 암어(暗語)도 아니며 신약성서의 언어 는 기원 1세기에 헬라문명권(文明圈)을 휩쓸던 당시의 평민들이 일상 쓰던 말” 임이 판명되었다. 성경학자들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단어들과 문법이 희랍 고전 문헌에 나오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억측을 자아내어 심지어 교단에서 싸움까지 한 역사를 특히 18세기에서 다이스만의 해결이 나오는 19세기 말엽까지의 성경언어학에서 읽어본다. 오늘날에도 희랍에서는 평민들이 쓰는 말 (Koine 성경의 단어와 대부분 동일)과 신문 잡지에서 쓰는 말이 현저하게 달라서 희랍 정부는 언어를 통일하는데 고심하고 있는 실정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경은 우리가 도무지 알지 못할 내용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교황이나 신부들의 전용물도 아니다. 누구든지 모두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또 읽을 의무가 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믿는 성도들이 하루도 쉬어서는 안 되는 생명줄이다.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은 성경을 읽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 처음 출석하는 성도는 처음엔 어색하기 만하던 교회의 풍속에 차차 익숙해지고 내 생명을 구원해 주신 주님에게 일편단심으로 죽도록 충성하며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 인생의 풍파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신앙이 생긴다. 그런데 신앙이 이렇게 자라나면 (누구나 택함을 받은 자라면 신앙은 자라나게 마련이다. 어떤 이는 좀 빨리, 어떤 이는 좀 더디지만) 그 다음에 그 성도가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의 구원의 도리가 기록된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체계적으로 알고 싶어서 여기저기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성경지식을 넓히고 성경을 연구할 곳을 찾아 성경학교나 신학교에도 가며 또 성경 공부 반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바로 알고 바로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마음은 참으로 귀하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려면 한이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전부 다 이해할 능력도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터이라 우리 믿는 성도들의 성화의 과정(聖化의 過程)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과 같이 성경도 일생을 두고 공부해도 깊은 샘에서 싱싱하게 솟아나는 샘물처럼 무궁한 은혜 속에 깨닫는 성경의 깊은 진리는 한이 없어서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감사하여 감격할 뿐이다. 평생을 두고 공부해도 성경을 못다 배우지만(성경말씀을 모두 암송한다고 성경을 통달한 것은 아니다.) 날마다 꿀 송이보다 더 단 이 성경말씀을(시편 19:10, 시편 119:103)을 연구하고 상고할 때 성경을 어제보다 더 많이 더 정확히 알게 되고 어제 받지 못했던 새로운 은혜를 받게 된다.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 성경 66권이 서로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으며 성경 각 책의 주제는 무엇이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 (救贖史 God's Redemptive History)를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또 성경이 기록된 후의 사본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사본들이 옳게 원본을 보존해왔나? 하는 문제등 알고 싶은 일이 많을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질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오늘에 사는 지성인들은 퍽 이론적이어서 따지기를 좋아하지만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제한되어 있어서 무한한 하나님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사람의 이론으로 따질 것과 따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가령 일기를 예보하는 기상 관상대 에서 과학지식과 기계를 동원해서 다음날 날씨가 어떠할 것과 바람의 속도와 강우량들을 대략 예고하며 알 수 있으나 가령 우리가 살고 있는 대기권(大氣圈)에는 늘 변하지 않는 원소들은 용량(用量)의 일정한 비율이 있는데 즉 질소(N2)가 78.084 퍼센트, 산소(O2)가 20.946 퍼센트, 아르곤(Ar)이 0.934 퍼센트, 이산화탄소(CO2)가 0.033 퍼센트, 네온(Ne)이 18.10 퍼센트, 헬리움(He)이 5.24 퍼센트, 크립톤(Kr)이 1.14 퍼센트, 제논(Xe)이 0.057 퍼센트, 수소(H2)가 0.5 퍼센트, 메탄(CH4)이 2.0 퍼센트, 산화질소(N2O)가 0.5 퍼센트(이상자료는 대영백과사전 제2권 702페이지에서 얻은 것임) 이런 비율로 고정되어 있어서 사람과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이 살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과학자들의 이론으로 알 수가 없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도라고 왜 이런 비율인지 여부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조물주의 신기한 능력과 설계에 감탄할 따름이다.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임에 틀림이 없을까?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앞으로 찾아보겠지만 한 가지 똑똑히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한낱 유명한 문학작품이나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서적과 같은 가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위해서 자기생명을 죽이면서까지 그 작품을 사랑할 정신병자가 없는 것처럼 성경이 그런 가치밖에 안된다면 그 성경말씀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죽을 사람이 세상에 한 사람인들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사(敎會史)를 읽어보거나 세속적인 문헌 가령 유명한 기본 (Edward Gibbon)의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같은 책(특히 제1권)에 보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위하여 웃으며 찬미 (시편) 를 부르며 죽어갔으니 이는 성경은 무언가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아니, 이것이 분명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사람들이 진리가 아닌 것을 위하여 귀한 자기의 생명을 쉽게 버릴 수 있을까? 성경이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증거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주님의 부활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넉넉히 알 수 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돌아가신 후 유대인들의 핍박이 무서워서 출입을 삼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나가서 담대히 전도하기 시작했고 죽음도 마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으며 확실히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증명하는 좋은 증거가 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를 확실히 아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일이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차라리 마음에 맞는 문학작품을 읽거나 윤리 교과서를 읽는 편이 더욱 우리에게 유익을 줄지 모르겠다. 반면에 성경이 정말 조금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다면 그때는 이 세상에 성경책만큼 귀한 것이 없을 것이고 아끼고 사랑하며 배우고 이 성경말씀대로 살 마음이 울어 나올 것이다. “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39) 이 성경말씀은 내가 영원히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분명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실히 알 때 잠시도 성경말씀을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이고 사랑하며 연구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며 거룩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여러 문제들 성경의 성질, 성경의 전래(傳來), 성경의 권위, 그리고 우리들의 할일 이런 순서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