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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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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5 00:25
성경의 권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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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gopeace
조회 : 1,847  

그러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의 사본의 수는 얼마나 되며, 서로 다른 오류는 얼마나 될까?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의 공격의 대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서 손으로 복사해 내려오는 가운데 잘못이 없다고 보장 못하며 만일 잘못이 있는 것을 시인한다면 원본은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도중에 변질되었으니 믿을 수가 없지 않나?  라는 식의 논조다.  지금 신약성경은 학자들 간에 약간 견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약 20,000개의 성경사본이 있다. 이들은 대개 fragments (단편들) 인데, (codex 는 5,000 개). 어떤 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지 얼마 안 되는 기원 후 50년에 복사된 사본도 있다. 좋은 예는 마가복음 6:52-53 이다 (이를 고고학자들은은 7Q5 라 한다). 기원 125년에 복사된 요한복음 18:31,32,37,38 도 있다.
 
이 20,000개의 사본 중에서 5,000개는 헬라어로 기록된 사본들이고 나머지 15,000개는 라전어(Latin), 수리아말 (Syriac) 로 또는 애급어(Coptic), 기타 언어로 된 것들이다.  이 20,000개의 사본 중에는 신약성경이 전부 들어 있는 것도 있고 (5000개의 codices) 또는 일부만 들어있는 것들도 있다.  기원1세기부터 시작해서 매 세기 것이 모두 존재한다. 성경사본은 지금도 열심히 고고학 팀들이 찾고 있다,  새로운 성경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 라도 새로운 사본이 발견되면 그 사본을 줌심으로 새로 성경을 번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 들은 겨우 글자 몇자 혹은 몇 구절 뿐이다. 그보다도 성경이 새로 번역되는 주요한 이유는 번역하는 사람들이 신학 사상 때문이다.
 
가령 The Message 라는 성경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번역된 성경으로 Regent College (Vancouver, Canada 소재)에서 영성신학을 강의하다가 은퇴한 Eugene Peterson 이라는 학자가 번역한 것인데 영문판 마태복음 6:10 을 읽어 보라,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러 지다‘ 라는 구절을 “As above, so below" 라는 말로 엉뚱하게 번역했다. 이는 그가  Monism (단일론) 사상에 물들어 잇음을 입증해 준다. Cyrus Ingerson Scofield 는 1909년에 Scofield Reference Bible 을 만들었다.  오늘 미국이나 한국에서 세대주의를 가르치는 목사들은 모두 옛날 이 성경을 가지고 신학 공부한 분들이다.  시 성경의 특징은 성경의 페이지 마다 Scofield 자신의 의견으로 설명한 성경 구절의 의미를 많이 수록해 두었다는 점이다.  이 성경을 보는 사람은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 이고 어느 것이 그의 주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성경을 새로 번역하애 내 놓는다.  성경선택에 주의해야 한다.
 
사람들은 성경보다 세상의 문헌을 더욱더 연구할 듯 하지만 성경학자만이 아니라 세상의 학자들도 이 성경의 사본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앞서 말씀드린바 있는 20,000개의 사본 중에는 상호간에 상치되는 점들의 수가 물론 학자 간에 약간 차이가 지만 .800,000군데나 된다 (supra Bruce, op.cit. 참고).  이것을 변형 (變形, variants) 이라고 한다. 신약개론을 강의할 때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같은 책, 같은 장, 같은 절인데 거기에 사용된 문자나 단어나 문법이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이런 곳이 많다.  서기관들이 복사할 때 실수 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롬 5:1 이다.  “화평을 누리자” 인가 아니면 “화평을 누리도다” 인가 사본에 따라서 다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런 사소한 차이가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는데는 지장이 안된다는 것이다 (신앙고백서 1;8).
 
그런데 800,000군데 다른 것들 중에서 795,000군데는 글자가 잘못된 것들이다.  글자를 틀리게 썼다든지 글자를 빠뜨렸다든지 하는 따위이다.  이런 것들은 내용을 알아보는데 별 지장을 주지 아니한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두개의 사본에 똑 같은 곳에서 똑 같은 실수를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셨기에 항상 다른 사본과 비교해서 그 내용을 거의 완전하게 알 수가 있다.  나머지 5,000개는 단순히 글자문제가 아닌 내용이 빠져있거나 서기관들이 기입해 넣은 대목들이다.  가령 예를 들면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밤에 천사가 베드로를 석방시켜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말 성경은 문제가 안되지만 어떤 사본에는 베드로가 옥에서 나와서 거리로 향해 가는 계단이 7개가 있다고 기록한 예가 그런 것이다.  이런 것은 서기관들이 삽입한 것으로 사본연구가는 다른 여러 사본과 연구 대조해 볼 때 진본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사본 연구가들은 사본마다 번호를 부여한다.  또는 사본을 발견한 사람이나 발견된 지명을 붙인다. Beza(종교개혁당시의 신학자) 사본 또는 Koridethi 사본 등은 전자의 경우이고 시내사본, 에부라임 사본 같은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사본 자체에 번호나 이름을 붙인 다음에는, 각 페이지마다 또 번호를 붙인다.  각줄 마다 번호를 붙이고 각 단어마다 번호를 붙인다.  이렇게 해서 내용만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본마다 글자와 글자를 대조한다.  이중에서 99퍼센트는 확인할 수가 있는데 나머지 1퍼센트는 교리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한군데 빠져서 없으면 성경 다른 책에 있게 마련임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마가복음 15장의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 장면은 빠진 것이 많이 있다.  지진이 나고 무덤이 열리고... 한  그 부분 즉 다른 복음서에 나타난 기사에는 빠졌다.  이것은 비록 마가복음서에는 빠져있지만 다른 성경 부분에서 읽어볼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성경 66권은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알 수 없는 것이며, 그러기에 성경은 성경 안에서 해석하고 그 뜻을 찾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성경을 5년 내지 6년 되면 새로 복사하고 낡은 성경은 항아리에 넣어서 깊이 묻어버리거나 또는 불태워 버렸는데 그 이유는 성경이 오래 되어 글씨가 희미하게 되면 성경을  교회에서 정확히 읽지 못할 우려가 있고 이 성경은 그 당시는 주로 암기에 의존했으니 만큼 잘못된 성경을 읽으면 기억에 큰 죄를 짓는 결과가 되며, 또 성경을 묻거나 불태우는 이유는 그것이 만일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주워 가지고 어떤 기회에 잘못 복사함에서 오는 폐단을 방지하여 말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 었다.
 
이와 같이 주로 성경을 암기하여 배우던 당시에는 성경사본을 읽을 때 곧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손쉽게 구별할 수가 있었다.  오늘날 영문성경은 고사하고 우리 나라 성경도 개역판 성경에 익숙해 있는 사람에게 새 번역판 성경을 읽어주면 곧 그 성경말씀은 자기가 잘 아는 개역판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임을 아는 것과 같이 옛날 사람들도 잘못된 사본을 즉시 분간해 낼 수 있었다.  이리하여 성경은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번 복사되어 왔건만 순수하게 보존되어 내려왔으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후세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계획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들을 때까지 이 말씀은 계속 순수하게 유지되어 나갈 것이다.
 
또한 요한 1서 4:1-3까지에 기록된 것과 같이 민간에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거짓복음에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는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해야만 했다. 거짓선지자는 오늘 우리 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에도 사도들의 가르침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원 140년대에 교회를 혼란하게 했던 일이 있었으니 즉 마르시온(Marcion)이라고 하는 영지주의에 빠진 사람이 소아시아로부터 로마에 와서 구약의 무서운 하나님과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은 너무나 대조가 되며 따라서 유대인적인 것은 받아드릴 수가 없다하여 자기 자신의 독특한 정경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가르쳤는데 그가 만든 정경이란 누가복음은 누가가 이방인인고로 가장 유대인의 색채가 적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고(예수님의 탄생기록은 제외하고), 바울서신 중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 등 목회서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10개의 서신만을 받아드렸다.  누가복음이라 해도 구약이 언급된 곳은 모두 삭제해 버렸다.  그에게는 사도 바울만이 참다운 사도로 보였고 다른 모든 사도들은 정경에 넣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잘못된 신앙 즉 예수는 갑자기 사람들 가운데서 인간성을 닮은 듯이 나타났던 하나의 초자연적인 인물이었다고 하는 생각에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의 기사,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기사는 모두 생략했으며 예수는 사람으로 보일 뿐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므로 예수님의 족보도 삭제했다.
 
이와 같은 마르시온이라고 하는 사람의 잘못된 성경 해석관에 대하여 기원180년경에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Polycarp) 이라고 하는 사람의 제자였던 이레네우스(Irenaeus)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구름같이 몰려드는 마르시온학파의 잘못을 고쳐주기 위하여 이단을 반대하여 (Against Heresies) 란 책을 써서 그 책의 제3권에서 마르시온을 반박하며 네개의 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베드로전서, 요한일서 및 계시록 등이 하나님의 말씀에 틀림이 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초대교회 때는 말씀을 훼방하는 일이 많았지만 말씀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 속에 보존되어 왔으니 앞서 말씀드린 신약의 헬라어 사본 말고도 여러 교부(敎父)들의 증언들이 많은 도움을 주는데 이 증언들의 수가 헬라어의 성경사본의 수만큼이나 많다.  사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여러 가지 사본을 비교하여 연구하여 원본은 없어졌지만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찾아 성경말씀을 후대에 순수하게 보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오랜 시일에 걸쳐서 성경이 복사되어 왔어도 우리는 원본과 거의 같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성경의 권위를 다음 장에서 생각해 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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