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시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있고, 상징적으로 해석할 구절이 있다. 일률적으로 모든 성경구절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가령 요한복음 2:19-20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문자 그대로 46년간 걸려서 지은 성전을 사흘 만에 주님이 재건하신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뒤에 계속해서 읽어보면 주님은 그의 몸을 가르켜 하신 말씀임이 들어난다.
몸이 죽어도 삼일 만에 부활한다는 뜻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의 <1260일이니 42달이나 한때와 두 때 반> 이니 하는 말은 모두 상징적이며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의 경우는 단 9:27절과 반드시 병행해서 해석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20장1-7절 사이에 6 번 나오는 <천년> 이라는 말은 문자적인가 아니면 상징적인가? 문자적이라면 성경이 기록된지 벌써 1,000년이 넘었으니 문자적이 아님을 금시 알 수 있다. 상징적이다. 우리는 이 숫자가 상징적인 것을 한다. <말세> 란 히브리 1:1이나 베드로전서 1:5이나 1:20등을 통해서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이 말세임을 안다. 그러므로 계시록 20장의 천년은 <문자적 천년>이 아니고<주님 재림 때까지 전 기간을 통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성경 해석 시에 가장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혹은 임의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가령 마가복음 3:29에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금세와 내세에 영영 구원이 없다“는 말에서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목사들, 특히 부흥사들 중에서 이 구절을 오해하는 분들이 예상외로 많다. 심지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방언 못하는 죄라고 가르치는 목사도 있다.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이다. 문제의 성경구절에서 앞뒤의 문맥 (context)을 읽어보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일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본인이 하신 것이 아니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사탄의 이름중 하나) 의 힘을 빌려서 행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때 주님께서 29절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 해석을 믿기 어려우면 성경 마가복음 3장29절 그 다음절인 30절을 보면 의미가 의심의 여지없이 아주 분명해 진다.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저가 더러운 귀신이 들였다 함이라“ 라고 스스로 설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이와같이 문맥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라. 성경에 지금 내가 연구하는 구절이 왜 기록되었는지 앞뒤를 읽으면서 문맥을 잡아라.
이와 같이 성경은 항상 문맥을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영어로는 “A text without a context is a pretext” 라고 한다. “문맥을 보지 않고 해석하면 궤변이 된다” 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설교자가 문맥을 무시하고 스스로 억지로 풀다가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 내는가 우리들 주위에서 사이비 목사들을 보라, 주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너희중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 라도 실족케 하면 큰 연자 돌을 목에 달고 깊은 물에 빠져 죽은 편이 낫다” 고 마태복음 18장6절에 엄하게 경고하신다. 바른 성경해석으로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한다.
앞서 성경해석 원칙은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종교개혁의 성경해석 방법이다. 어떤 성경구절을 해석할 때 우선 역사적인 배경을 공부해야 한다. 어떤 시대적, 정치적, 종교적 배경 속에서 이 성경구절이 기록되었는가를 본다. 이것을 알려면 Halley의 성경핸드북도 좋고 Hendrickson 이 쓴 성경 개관 Bible Survey 도 좋고 성경의 배경을 다룬 참고서들을 읽어보면 좋고 만일 그럴 재정적 여유가 없으면 그 성경구절이 들어 있는 성경 앞뒤를 계속해서 주의 깊게 읽어본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 책의 처음부터 읽는다.
가령 마가복음은 어떤 문화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기록되었는가? 하박국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기록되었는가? 학개서는? 등을 연구한다. 마가는 로마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는데 예수님의 섬기는 종 됨을 기록하면서 가장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안다. 학개서는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서 성전 수축을 등한히 하고 개인의 가옥 수리만 열중인 유대백성에게 하나님은 학개 선지를 통해서 성전 수축을 명하는 배경이고 하박국은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는 잘 되어 가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선지자 하박국이 <결국은 아무리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해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 한다> 는 내용을 알아 두어야 한다.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면 다음은 골치 아픈(?) 문법적인 면을 해석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반 평신도로서는 어렵다. 이유는 원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원어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래서 신학생들은 코피를 쏟아가며 매일 그 어려운 헬라어와 히브리어, 라틴어를 공부한다. 그러나 일반 성도도 열심만 있다면 집에서 능히 헬라어를 자습할 수 있다. Princeton 신학교 신약학 교수였던 J. Gresham Machen 박사가 쓴 신약헬라어 입문 같은 문법책을 사서 스스로 매일 아침 조금씩 헬라어를 터득해 갈 수 있다. 구약의 히브리어도 공부해야 하지만 히브리어는 그 언어의 체계가 헬라어와는 전혀 다른 어족(語族) 인 <셈어족, Semitic Language> 에 속하여 일반 평신도가 공부하기는 심히 어려울 것이고 헬라어만 공부해 두어도 구약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해 둔 칠십인역(七十人譯)이라는 책이 있으니 그 LXX (칠십인 역 성경을 나타내는 기호) 를 헬라어로 읽으면 헬라어만 알아도 신학 공부를 엉터리로 마친 웬만한 목사 보다 더 성경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