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그도 또한 우리를 부인하리라”(카케이노스 알네세타이, kavkεi,noj avrnh,sεtai; he also will deny, will not acknowledge)는 미래시상(future)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그리스도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지 않으면(배도하지 않으면) 주님은 결코 우리를 부인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무서운 경고의 말씀, “이 말씀은 미쁘도다!”
말세에는 배도하는 일,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영을 좇는 일, 주님을 부인하는 일이 있으리라고 예언하신 이 말씀은 참이요 신실하시니 믿고 전할 가치가 있는 말씀이다.
2:13, “비록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양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느니라.”
“비록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에이 아피스투멘, εiv avpistou/mεn ; if(although) faithless; 비록 우리는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주는 일양 미쁘시다”(에케이노스 피스토스 메네이, εvkεi/noj pisto.jmε,nεi ; He remains faithful; 그는 신실하시다)
13절의 “에이”(εiv ; if or although ; 만일, … 할지라도)는 ‘만일’이 아니라 ‘비록’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미쁨”, “신실한”(피스토스, pi,stoj ; faithful)은 신실한, 성실한, 믿을만한이란 뜻이다.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느니라”(알레사스다이 갈 헤아우톤우 두나타이; avrnh,sasqai ga.r ε`auto.n ouv du,natai ; for He can not deny Himself; 그는 자신을 부인할 수 없으시다). 주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시며, 거짓이 없으시며, 변개치 아니하시며, 약속을 지키신다(민 23:19; 삼상 15:29; 말 3:6; 딛 1:2; 히 6:18).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주님을 믿을 만하다.
우리 사람은 신실하지 못하고 믿을 만하지도 못하다. 사람은 처지와 형편 그리고 신앙의 정도에 따라서 더욱 신실하지 못하다. 나를 낳은 어머니는 나를 버릴 수 있고, 친구는 나를 배반할 수 있어도 그리고 나는 비록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항상 신실하셔서 일양 미쁘시다.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우리는 비록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주님만은 신실하시니 우리는 신실하신 우리 주님과 그의 말씀을 더욱 굳게 믿고 의지하여야 할 것이다.
디모데전서 4:9-10, “신실하도다 이 말씀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도 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며 분투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기 때문이니 그는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라.”
4:9, “실하도다 … 받을 만하도다”(피스토스 … 악시오스, pisto.j a;xioj; faithful … worthy)는 병행적이며 또한 회상적이다.
“신실하도다 이 말씀이여!”에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도다”(파세스 아포도케스 악시오스, pa,shj avpodoch,j a;xioj ; worthy of all acceptance)가 첨부되었다(딤전 1:5, 참조).
“갈”(ga,r ; because ; 왜냐하면)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유를 밝힌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신실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다. “이 말씀”은 앞 절(8절)을 가리킨다.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며 분투하는 것은” “이를 위하여”(에이스 투토, εivj tou/to; for this)는 8절의 내용인 경건의 연습에서 얻어지는 금생과 내생의 약속을 가리킨다.
“수고와 분투”(코피오멘 카이 아고니조메다, Kopiw/mεn kai. avgwnizo,mεqa ;labour and struggle)는 모두 현재 시상으로 바울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계속해서 수고하며 분투하는가를 나타낸다.
“수고”는 열심히 일함, 수고, 노동(work hard, toil, labour)은 농부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분투”는 운동선수가 경기에 온 힘을 다 쏟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그의 복음 사역의 수고를 농부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운동선수가 온 힘을 다 쏟아 경기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수고하며 분투하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영적 모든 면을 포함하나 특히 영적·신앙적인 면을 강조한다. 골로새서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둠이니”(호티 엘피카멘 에피 데오, because we have set(our) hope on God)는 우리의 소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두는 것(εvpi,; upon)을 강조한다 (롬 15:12; 사 11:10; 딤전 5:5, 6:17; 벧전 1:13). 바울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데오 존티, qεw, zw,nti; living God)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오, 생명을 부여하시는 자이시다(3:15 참조). “그는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의 구주시라” 이 말씀은 얼핏 보면 만인구 원설같이 보인다.
디모데전서 3: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미쁘다 이 말이여”(피스토스 호 로고스, pisto.j o` lo,goj ; the word in faithful; 말씀은 신실하시다)에서 신실하시다(pistovj)가 먼저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함을 강조한다.
디도서 3:8, “미쁘다 이 말이여”(피스토스 호 로고스, pisto.j o` lo,goj; 신실하시도다 이 말씀이여)에서도 신실하시도다가 문장 가장 앞에 나와서 말씀의 신실함을 강조한다. 요한계시록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본 절에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도다”(호이 로고이 피스토이 카이 알레디노이, oi, lo,goi pistoi. kai. avchqinoi;, there words (are) faithful and ture)도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과 참을 강조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였는데 믿음을 지켰다(텐 피스틴 테테레카; th.n pi,stin teth,rhka ; I have kept the faith)는 말씀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시작한 때로부터 계속하여 지금까지 신앙을 지켜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신앙의 지구성을 가리킨다. 믿음은 조석변(朝夕變)도 아니며, 작심삼일(作心三日)도 아니다. 우리는 마음과 몸, 뜻과 정성을 다 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하여 계속 성실·충성·신뢰·의지해야 한다.
조영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