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신앙과 행위와의 관계(Relationship of faith with works)
신앙은 믿음의 행위(an act of believing)를 수반한다. 신앙을 나무의 뿌리(root)로 비유한다면 행위는 나무의 열매(fruit)라고 하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알 것이라고 하셨다(마 7:16-20).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앙과 행위는 나무의 뿌리와 열매와도 같다. 신앙에 근거한 행위는 구원받은 자의 증거요, 열매이다. 신앙은 복음을 선포하며 행위는 증거하면서 신앙과 행위는 천국노정을 나란히 같이 걷는다.
행위가 없는 신앙만을 중요시 한다든지 아니면 신앙이 없는 행위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신앙과 행위는 어느 한편을 중요시하고 다른 한편은 경시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믿음은 홀로 있지 않고 행위와 함께 계속역사한다. 이것이 바른 신앙생활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야고보서는 신앙과 교리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행위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 이유는 야고보서는 신앙을 제외하거나 부정하고 행위만을 독립적으로 강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신앙에 근거한 행위를 강조하여 가르친다.
즉 다시 말하면 참으로 믿는 자는 필히 행함이 따른다는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서는 믿음이 행함과 같이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느니라고 하였다(약 2:22).
야고보서 2:14,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사도 바울은 불경건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뜻에서 신앙의 독립성을 말한 것이지, 신앙이 행위와 무관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행함으로 그 기본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벧전 2:1-2; 빌 2:12)는 진리를 가르친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왜곡하여 행함은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행자지(自行自之)하는 것은 위선이요 방종이요 죄다. 물론 구원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 것은 사실이다. 진리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행치 않는 것은 양심을 바로 사용하지 않는 죄이다. 믿음과 행함을 별도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믿음은 있으나 행함이 없다는 말은 모순이다. 사람이 참으로 신앙을 소유하였다면 그 신앙에 버금가는 행함이 수반되어야 마땅하다.
야고보서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니라.”
죽은 나무는 생명이 없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죽은 사람은 골격과 외형은 있어도 그 사람 속에 생명이 없다. 이와 같이 죽은 믿음은 그 자체 안에 생명이 없으므로 신앙의 열매를 산출하지 못한다. 신앙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니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따라서 행함이 없는 것이 문제지만 그 보다 믿음 자체가 죽은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26).
믿음과 행함이 겸하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다. 사도 야고보는 “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 20)고 웅변하였다. 사도 바울도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미메타이 무 기네스데; mimhtai, mou gi,nesqe)고 하였다.
1. 신앙과 내세의 소망과의 관계 (Relationship of faith withfuture hope)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다.”
베드로전서 1:21,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느니라.”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실상이란 헬라어 휘포스타시스(u`po,stasij)로서 실상·실재(substance, reality)이다. 신앙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어떤 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미 이루어진것으로 확신하고 믿고 행함이다. “신앙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등기(title deed)와 같다”.10)
죄 많은 세상에서 근심·걱정·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몸,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왔다 가는 몸, 죽어 썩을 몸이 이 세상에서 바라는 최상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살전 1:3) 기독신자들의 몸의 구속이다(롬 8:23). 이 연약한 몸·불완전한 몸·죄의 몸·썩을 몸·욕된 몸이 강한 몸·온전한 몸·거룩한 몸·썩지 않을 몸·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소망이다.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이미 얻은 것으로 확신하는 신념이다. 이것이 곧 바라는 것들의 실상·실재(휘포스타시스, u`po,stasij; substance = reality)이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Faith is an evidence orproof of things not seen). 증거란 에렝코스(e;legcoj)로서 증거(proof =evidence)이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확신하는 증거(convincing evidence)이다. 지금 우리는 신령하신 하나님, 영물들인 천사들, 영원히 거할 처소, 앞서간 믿음의 형제자매들 등을 보지 못한다. 죄로 인하여 무능하여진 인간의 육안(physical eye)으로는 신령한 세계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없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눈에는 아무 증거 없어도)을 바라며(롬 8:25)보는 것과 꼭 같이 확신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믿음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들을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앞으로 얻을 것들을 이미 얻은 것으로 확신하는 신앙이다. 이 믿음이 인내를 생산하고 소망을 성취한다. 소망 속에는 믿음의 확신이 들어 있다. 믿음은 미래의 바라는 행복상들을 신뢰하게 하며보증한다. 인간의 체험이나 경험으로는 내세의 것들(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세의 소망 속에는 믿음의 확신이포함되어 있다(살전 1:3; 벧전 1:21).
히브리서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증거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소망 중에 믿었다(롬 4:20, 21). 아브라함의 신앙의 비결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은 지키시리라는 그의 확신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낳음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한 아들을 허락하여 주시리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다(롬 4:17, 19). 그리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되었다.
끝
조영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