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a. 낙태
낙태는 기독교적 인간관이 유물론적 인간관으로 전환되면서 생명윤리 영역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폐해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1973년 미국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사건”과 “두 대 볼톤”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면서 헌법에는 새로운 인권 또는 자유, 곧 어느 때든지 여성이 낙태를 시행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낙태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대법원은 사적인 권리에 대하여 전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주에 있는 낙태규제법을 무효화시키는 초법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1977년에는 임산부가 요구하는 낙태시술에 납세자의 돈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의도로 입법 발의된 하이드 개정안의 상정이 의회의 실무자들에 의하여 번번이 저지당했다. 현대 미국사회에서는 일종의 정신분열적인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소아과 의사들이 신생아실에서 조산아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최대한의 소생치료와 지지치료를 실시하고 있는 동안 같은 병원 안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정상태아들 그리고 때로는 조산아 보다 더 큰 태아들을 정례적으로 죽이고 있었다.
낙태문제를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점이 되는 것은 태아도 인간인가의 여부다. 이 질문에 대하여 쉐퍼는 수정란이 형성된 시점부터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실하게 유지한다. 23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정자는 살아있고 난자를 수정시킬 수 있지만 또 다른 정자를 만들지 못한다. 정자와 동일하게 23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난자도 다른 난자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일단 정자와 난자가 합쳐져서 하나의 세포가 되면 그때부터 46개의 염색체를 지니게 되고 이 하나의 수정란 세포는 방해받지만 않으면 인간으로 자라나는데 필요한 DNA의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수정란 시점부터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쉐퍼의 입장이다.
쉐퍼는 낙태가 얼마나 잔인한 살해방식인가를 실감하도록 하기 위하여 몇 가지 낙태 방법을 소개한다.
(1) 소파수술(D & C dilation and curettage)은 임신 12-13주경에 시행하는 수술로서 자궁경부를 넓힌 다음 큐렛을 집어넣어 자궁내벽을 긁어 태아의 몸을 산산조각내고 자궁벽으로부터 떼어낸 태반과 함께 긁어낸다. 상당한 출혈이 동반된다.
(2) 흡인낙태법(suction abortion)은 자궁경부를 넓힌 다음 튜부를 집어넣어 자라고 있는 태아와 태반을 산산 조각낸 다음 통 속으로 빨아들인다.
(3) 염수낙태법(saline abortion, salting out)은 임신 16주 후에 시행하는 방법으로서 소금물을 양수에 주입하여 태아의 허파와 위장에 들어가게 한 뒤에 삼투압현상으로 태아의 피부를 태워 죽이는 방법이다.
(4) 자궁절개술(hysterotomy)은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방법들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제왕절개 수술과 똑같은 방식으로 태아를 꺼낸 뒤에 죽어 가도록 방치해 두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자궁절개술을 이용할 때만이 태아가 산 채로 나오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염수낙태법을 이용할 때도 태아가 산 채로 나오는 경우가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5) 호르몬제인 프로스타글란딘을 이용하여 낙태를 유도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호르몬은 낙태를 유도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다른 기능도 하지 않는 호르몬이다. 좌약 형태로 사용되는 이 약제가 임신 6개월 무렵에 사용될 경우에는 태아가 산 채로 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도 쉐퍼는 낙태관행이 끼치는 부작용들을 열거함으로써 경종을 울린다.
(1) 먼저 쉐퍼는 낙태가 끼치는 교육적 효과, 곧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의 효과를 지적한다. 쉐퍼는 1975년 서독 대법원이 12주 안의 태아 낙태를 용구한 사건에 대하여 “만일 3개월 이내에 있는 태아에 대한 낙태를 허용하면 3개월 이후에 며칠 더 태내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낙태를 허용해 주지 않는 것이 논리적인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요구 기각 이유를 타당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2) 낙태와 성도덕문란의 상호 악순환, 최근의 성도덕, 성적으로 관대한 생활습관, 가족의 붕괴 등이 낙태를 요구하며, 낙태가 허용되면 이런 관행들이 가속화된다.
(3) 낙태를 시행할 경우에 임산부에게는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부작용들이 뒤따른다. 낙태를 하고 난 이후에 임산부들은 낙태로 잃은 아이에 대하여 본능적인 모성애를 느끼며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낙태에는 의학적인 신체적 부작용이 뒤따른다. 낙태 후에는 자연유산율, 사생아, 성병, 매춘, 임질에서 오는 골반염증, 불임, 자궁 외 임신, 조산율 등의 증가가 뒤따른다.
(계속)
이상원(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