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와 목회
경상남도 고성군 학림리란 곳은 옛날 풍속의 예의에 너무 완고한 곳이라 부부간에도 내외를 하는 곳이었다. 옛날 풍속에 남자만 거처하는 사랑방이 있어 이 남자가 자기 부인 방에 들어가야 할 일이 있어 들어 갈 때에는 뜰에서부터 기침을 하여 부인에게 들어갈 뜻을 알려 주면 그 부인은 주의하여 남자가 자기 방에 들어오기 전에 남자가 보이지 않는 다른 문을 열고 슬금 나갔다가 자기 남편이 방에 들어와서 볼 일을 다 보고 나가면 부인은 다시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고래의 풍속 그대로 지키는 동리였다.
또 한 가지 다른 남자와 서로 대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라 하여 남자가 길을 가다가 여자가 오면 옆으로 돌아서고, 여자는 남자의 뒤로 지나가는 법이었다. 그러나 여자가 길을 가다가 남자를 만나면 좀 머뭇머뭇하여 보아서 남자가 돌아서지 않으면 이 남자는 하인이라, 예의를 알지 못하는 하인은 내외의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대로 마주 보고 지나가 버린다.
이와 같이 아직도 옛날 고풍 예의를 지키는 곳에 처음으로 전도하러 나선 나 자신으로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고하니 이 동리에 있어서 전도인에게는 가옥도 빌려 주지 않기로 하며 동시에 수화(물과불)를 불통하고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하며 전도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일주일을 금식하는데 화요일 조반부터 안 먹기 시작하여 다음 화요일 아침에 냉수를 마시고 일주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여도 여전히 전도는 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생각하기를 말만 지혜있게 잘해서 듣는 자로 하여금 답변할 수 없도록 하여 말로써 이기기만 하면 그 사람들이 믿어 신자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에 생각하면 너무도 유치하였다. 가정에서 쫓겨 나오기까지 한 나로서는 전도가 되지 아니함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주님을 위하여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재산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왔거늘 왜 전도가 되지 않는가 하고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전도지로 옮길 때에 나를 한번만 더 전도인으로 써 주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전도회에 청원하였다. 전도회에서는 만2개년 내에 교회를 세우고는 다른 전도지로 이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도회에서 또 허락하여서 이번은 아주 불량자들이 많은 시골 시장인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리로 갔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참으로 기도의 재미를 맛보았으며 경험을 얻었다. 밤2시, 혹은 3시 늦으면 4시경에 일어나서 산에 올라가 숲속에 가서 기도하는데 처음에는 바람 소리, 나무 잎사귀 소리에 무슨 짐승이 나오는 것 같아서 무서운 중에서 기도도 잘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성령으로 은혜를 베푸시매 주님께서 저와 같이 계셔 주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이 믿어졌다(마28:20)
나는 바람 소리도, 나무 잎사귀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육신의 감각이란 것은 도무지 모르고 오직 주님과 이야기하기를 시작하면 그 시간이 혹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으로 괴로운 줄도 모르며 피곤한 줄도 모르고 기도할 수 있게 되어 그 기도하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의 시간이 되어졌다.
전에는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에도 사람들이 오고 나가는 것과 다른 사람의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렇게 기도에 재미를 본 나는 일절 외계로부터 오는 모든 것에 감각이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 향하여 기도하는 데만 집중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전도가 되고, 안됨을 나는 하등 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에도 신자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진실한 신자가 차차 많아졌다. 이는 꼭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 확실하였다.
그 후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을 두 학기 앞두고 앞으로 교회로 나가 섬김에 어찌하며, 또한 어찌 될까 함이 나에게는 일대 문제가 되었다. 보통으로 보아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갈 때에 2, 3년 간은 아무 염려가 없도록 설교 준비가 되어서 교회로 나가는 데, 나는 설교 하나 준비 없이 그대로인지라 할 수 없어 두 학기를 앞두고 새벽 기도는 물론이거니와 토요일이 되면 밤을 새워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에 조사로 갔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있어서 신학교를 졸업하고서 목사로 가지 않고 조사로 가는 일은 별로 없는 일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조사로 간 것만큼 그 교회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감이 없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2개월가량 지난 후에 그들이 자복하며 말하기를 “한조사님은 옛날의 한조사님이 아니고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도, 설교하는 것도 전과는 다르다 함이었다.
나 자신이 생각하여도 설교나 기도에 있어서 전과는 다름을 느끼는 바이었다. 그리하여 온 교회가 크게 은혜를 받아 교회가 부흥되는데 새벽기도회에 매일 출석하는 교인이 백여 명이 되어 새벽마다 은혜를 주시매, 형편상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인은 늘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느 교회에서든지 1년 중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회는 계속하였는데 주께서 성령으로 친히 일하심을 알게 하여 주셨다.
그 후 경상남도 마산교회 목사로 시무하였는데 내가 가기 전에 마산 교회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어떤 장로님이 사람을 내게 보내어 하는 말이 “우리 교회에서 공동 의회를 열어 가결이 되어 목사로 청하였으나 사실은 모든 청년들과 기타 유력한 직분 중에서는 환영하지 않으니 우리 교회로 오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은 우리 교회에 왔다가 만일 배척을 당하면 교역 첫 걸음이 되는 일인 것만큼 한목사의 앞길이 막힐까 합니다. 또 우리 노회에서도 마산교회 목사로서 시무하기로 가결되었다가 다시 재론을 일으켜 한목사는 아직도 경험이 없고 유치한 사람이니 마산교회 시무는 합당하지 않다하여 의론이 많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마산교회로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전지전능하신 주께서 어떻게 하여서라도 가지 못하게 하시고 만일 마산교회로 가는 것이 주님의 뜻 이오면 내가 그 교회에 가서 배척을 당하여 쫓겨나며 동시에 교역할 길이 막혀 세상 교회에서 버림을 당할지라도 이 희생을 달게 받겠나이다. 아버지여! 이 종의 희생을 돌아보시지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아멘’
이렇게 기도하고 나니 나는 대단히 시원하였다. 의외에도 나를 오지 말라고 사람을 비밀로 보내어 말하던 장로님이 친히 와서 자기 잘못을 자복하고 꼭 마산교회로 와야 될 것을 역설하며, 또 참인지 거짓인지는 모르나 노회에서 마산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하기로 결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뜻인 줄 알고 마산교회 목사로 갔었다. 의외에도 첫 시간부터 주께서 은혜를 주셨다. 두 달이 지나매 청년들이 자복하며 자기들이 목사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에 한조사 보다도 지금 한목사는 주님이 같이 하는 것을 잊지 않는 생활을 매일 매일 힘쓰고 있으며, 보다도 주님께서 같이하셔서 내 모든 일절을 주장하심을 알지 못하고, 한목사인 사람만을 보는 청년들의 하는 말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