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하나님의 주권이 중심을 차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함께 일하는 봉사자로 정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직업과 소명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모두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노력하는 종입니다. 지위와 위계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그분의 법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동등합니다. 이 기본적인 개념은 엄청난 사회적, 정치적 결과들을 야기합니다. 그것은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세우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사회는 왕이나 권력자의 손에 있는 어떤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사회는 레스 퍼블리카(공동의 기업)이고 백성은 공동생활자 혹은 공동노동자들입니다. 몸과 몸의 지체의 개념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 철학자들이 사회를 계약으로 보았을 때, 칼빈주의자들은 사회를 언약으로 보려고 하였습니다. 1603년에 칼빈주의 학자였던 존 알튀시우스가 표현하였듯이, 언약 백성들은 서로를 공동의 삶을 함께 하는 파트너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토마스 홉스가 ‘레비아단’에서 명시하였듯이 영국 계약사상가들은 인간을 서로를 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에 계약과 강한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 계약을 통하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합니다. 하지만 알튀시우스는 다른 그림을 제공하였습니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한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섬김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가치 없다고 보아서는 안 되고, 우리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해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합니다(Politica, 22-23). 이와 같은 개념들은 이타주의와 아가페에 기초한 “시민적 사회”라고 우리가 부르는 것의 가장 강력한 지주를 제공합니다. 진정한 시민적 사회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에 기초하며,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공적인 권력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 시민사회의 유형은 약한 자들을 돌보고 언약적 관점에서 사회를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의 사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셋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회적 책임과 사회에 기여하는 서로 다른 공헌들의 가치를 분별하도록 도와줍니다. 비록 사회는 공동의 기업이지만 서로 다른 책임들로 엮여져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들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와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적절하고 규범적이고 진정성을 가집니다. 즉, 그것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 걸맞는 규범적 행동을 요구합니다. 사회에서 권위는 여러 가지로 구분됩니다: 부모의 권위, 교회 지도자의 권위, 학교 이사회의 권위, 사역자들의 권위, 시의회의 권위, 등등. 이 권위는 공동의 책임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영역 주권”이라는 개념을 고안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서로 다른 권위들은 자신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유한 영역과 한계를 가집니다. 따라서 사회에서 하나의 권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위가 존재하며 그것들은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모든 권위는 (그것이 가정이든, 국가든, 교회이든 학교이든) 서로에게 어떤 독립성을 가집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에게 권위를 주는 것은 국가가 아닙니다. 시장에서 결정권을 교회나 대학이 행사할 수 없습니다. 최종 결론은, 모든 권세가 자신의 주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며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풍성한 사회적/연합적 삶에 많은 여유를 제공합니다. “영역주권”의 개념은 기독교 학교와 교회의 자유와, 교회나 국가에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하여 고안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개인적/사회적 책임과 자유를 강조하는 핵심 개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영역주권의 개념은 책임의 실천을 확립하고 이 실천들과 연결된 규범적 원리들을 드러냅니다.
책임있는 교육가, 교사, 목사, 간호사, 기업가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이와 같은 실천들에 속한 규범적 원리에 대응하는 가운데서 가르쳐져야 합니다. 기업가는 경제를 다루어야 하지만 윤리적이고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원리들도 다루어야 합니다. 정의로운 기업가를 만드는 것은 모든 규범적 원리들에 대한 책임있는 대응입니다. 영역들은 책임있는 인간의 행동들을 요청하는 실천들을 확립하는 구조적 환경입니다. 그것들은 우리들이 분화된 사회 속에서 가지는 여러 가지 책임들을 보게 하고 실천에 상응하는 규범적 원리들에 일치하도록 그것들을 격려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