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방편 (means of justification)이다
이신칭의 교리도 의신득구 교리와 같이 칼빈주의의 중심 교리들 중에 하나이다. 믿음은 구원의 방편·수단·필수 조건인 것같이, 칭의에 있어서도 믿음은 칭의의 방편·수단·필수 조건이다.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방편이므로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는 도구(instrument)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대요리문답 73문):
“믿음이 죄인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는 것은 믿음에 항상 따르는 어떤 은혜나 그 열매인 선행(善行)때문이 아니요, 또는 믿음의 은혜나 혹은 다른 무슨 행위가 그의 의로 돌려져서도 아니요, 오직 믿음이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 오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롬 1:17, 3:28, 30; 4:5, 11, 13; 5:1; 9:30; 갈 2:16; 3:2, 11; 빌 3:9). 마틴 루터(Martin Luther)와 종교개혁자들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한 바울 서신들을 통하여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의 교리를 견고히 수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전가 받음으로 신자들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그러므로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 믿음이 없이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어떻게 전가 받는가? 믿음으로, 믿음을 통하여(by and through faith)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사람을 하나님은 의롭다라고 법정적 선언을 하신다.
천하에 어느 사람도 인간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롬 3:20).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라는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범죄한 인간, 죄의 성질이 있는 몸에서 나오는 행위란 만물의 때만도 못하고 걸레만도 못하다고 하였다(렘 17:9).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음으로 의인이 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6. 신앙은 전적으로 의지함 (신뢰; trust)이다
시편 37:5, “너희 가는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고 또한 그를 의지하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베드로전서 5:7, “너의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저가 너희를 돌보심이아.”
마태복음 6:31,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신앙”(피스튜오, pisteu,w ; to trust)은 의지한다, 신뢰한다, 신임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크리머(Cremer)는 “신앙의 근본적 개념은 견고하게 의지하는 것”(a firmly relying trust)이라고 하였다.7) 신앙은 내 자신의 전(全) 인격이 하나님을 의지함·신뢰함·신임함이다. 믿는다는 단어는 신앙적으로 의지함과 신뢰를 강조한다. 의지함과 신뢰는 의심과 불신의 정반대이다. 참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참 신앙은 하나님께 내 자신을 항복하고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참 신앙은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사람은 성질상 거짓되고, 부패되고, 무능하기 때문에 믿을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신뢰해야 한다. 신앙은 의지함, 신뢰함이다. 이는 마치 자신을 치료하리라고 확신하는 환자가 의사(doctor)를 신뢰하고 의지하여 전적으로 자신을 맡김과 같다.
참 신앙은 단순한 신뢰가 아니라, 인격적 신뢰이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약속들을 의지함이다. 참 신앙은 의지함, 신뢰함 없이는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밝을 때에 찬미하며, 어두울 때에 기도하며, 어려운 일 당할 때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기를!
7. 신앙은 확신 (assurance = conviction)이다
확신은 의심 없이 믿는 신념이다. 의심은 불신앙이다(약 1:6). 확신은 바로 깨달은 진리에 대한 내적 확신(inner conviction)이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의 근본 진리들을 추호도 의심 없이 그대로 믿는다. 그것이 정통신앙이다.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므로 죄사함 받고 구원영생을 얻었다고 의식적으로 확실히 인정하는 신념이므로 이로 인하여 마음이 안정감을 얻게 된다. 이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이다. 아브라함·이삭·야곱·모세·여호수아·다니엘과 그의 3친구 등은 모두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100퍼센트 확신을 가졌다. 우리도 우리가 믿는 신앙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신상을 세우고 거기에 절하게 하였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을 내렸다(단 3:1-6).
다니엘 3:16-18,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신앙의 궐개이다. 이에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고, 사드락·메삭·아벳느고를 결박하여 불구덩이에 집어 던졌으나 머리털 하나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단 3:19-21, 27). 메대왕 다리오는 전국에 조서를 내려 누구든지 왕 이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니엘서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으므로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다. 우리도 앞서간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의 신앙을 본 받아야 하겠다.
조영엽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