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 성경적 반박 (2-6)
4. 창조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넷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창조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는 그 자체 안에 시간의 시작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역사적 실상은 모든 역사적 관찰과 진술을 피하며 성경 이야기들에서 순수한 전설(saga)의 형태로만 표현될 수 있다.
[바르트는 사가(saga)에 대해 설명하기를, “역사의 선(先)역사적 실상에 대한 직관적, 시적 묘사”라고 하였다.419) 그것은 신화 혹은 전설과 같은 개념이다.]
또한,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비록 바울에게는 그가 실제적 인물로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아담은 하나의 신화이다”라고 말한다.420)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도 “창조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하나의 신화적 개념이다”라고 말한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창조의 교리는 ‘옛날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의 기본적 묘사이다”라고 말한다.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앞에 과학적으로 매우 천진난만하게 표현된 고대의 세계 묘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자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식이 급속히 변화되는 것을 볼 때, 너무 조소하거나 자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겠지만, 의심할 것 없이 이 구절에서 성경 저자는 그가 살았던 시대에 기인하는 모든 제한성들을 노출하고 있다. 하늘과 바다는 그가 말하는 식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진술을 믿는다면, 우리는 매우 나쁜 양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축자영감(逐字靈感)의 관념이 그것을 피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저자는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신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흙과 진흙으로 그의 그릇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은 더욱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즉 하나님이 진흙으로 모양을 만드시고 사람이 흙 한줌으로 빚어지는 그릇같이 빚어진다는 표현들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람의 기원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줄 수 없다. 확실히, 하나의 설화로서 이것은 다른 어떤 창조 신화처럼 부적절하거나 의미 있을 뿐이다.) 또한,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모든 피조물의 미래가 보편적이라면,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같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면, 내가 오늘 바라보는 미래는 이전의 각각의 현재가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미래일 것이다. 현재의 나의 미래는 또한 쥴리어스 시저의 미래이었고 선사(先史)시대의 도마뱀의 미래이었고 약 10조년 전 최초의 물질과정의 미래이었다.
<성경적 반박>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내용이 아닌가. 창조를 부정하면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다음 몇 개의 기본적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골로새서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천지 창조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교리의 첫 번째 지식이다. 천지 창조를 믿지 못한다면 성경의 나머지 중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5.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한다.
다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씨 에취 다드(C. H. Dodd)는, “하나님을 가장 높은 이상적(理想的) 인격으로 생각하면서 비(非)이성적 진노의 격정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전혀 논리 일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사랑과 병행하는 하나님의 어떤 감정이나 섭리와 병행하는 어떤 행동 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저항하는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는 사랑의 활동의 정서적 상징이다. 정죄란 피조물이 자기가 택한 비존재(非存在)에로 내버려지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신성과 그 무조건적 성격과 명백히 모순된다. 그러므로 그 개념은 재해석되든지 혹은 기독교 사상에서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
<성경적 반박>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은 성경의 매우 기본적인 내용이다. 노아 시대의 하나님의 홍수 심판(창 6-8장)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불비 심판(창 19장)은 하나님의 진노의 속성의 충분한 증거다.
다섯 장으로 된 예레미야 애가서에는 '진노'라는 말이 14회나 나온다. 예레미야 애가 2:1-4,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 . . . 진노하신 날에 . . . 노하사 . . . 맹렬한 진노로 . . .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나훔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밝히 말한다: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 . .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 .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나 1:2-3, 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쳤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사도신경의 고백대로, 예수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한다.
여섯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곧 성육신(成肉身)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는,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온다는 개념은 지적으로 불합리하다. . . .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진리는 진리가 보통 판단되는 모든 규범들을 어긴다”고 말한다.430)
또,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할 때 그의 인격은 신화의 빛으로 관찰되며, 이것은 그가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 고난을,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한 위대한, 선재(先在)하신 천적(天的) 존재로 이해되는 헬라주의적 기독교 공동체들에서는 한층 더 분명하게 된다. 그러한 개념들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신화들에서 널리 퍼져 있었고, 그 후 역사적인 인물 예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신화적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인류를 구속(救贖)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온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은 영지주의적(Gnostic, 靈知主義的) 구속 교리의 일부분이며, 아무도 이 교리를 신화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주장은 역설적(逆說的)이 아니라 부조리한(non- sensical) 말이다”라고 말한다.
<성경적 반박>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본적 사실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육신하지 않은 예수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다른 예수에 불과하다.
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이다. 요한일서 4:2-3,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고백]하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고백]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이서 7, "이는 미혹하는[속이는] 자들이 많이 세상에 나왔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이것이 미혹하는[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