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개혁주의 신앙의 구원관 (TULIP)
1. 인간의 완전타락 (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된 속죄 (Limited Atonement)
4. 무저항적 은혜 (I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궁극적 인내 (Perseverance of Saints)
첫째, 인간의 완전타락 (Total Depravity)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은 모두가 죄에 팔려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능력을 상실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며 죄의 노예 (bondage to sin)가 되어 하나님 없이 자기중심으로 살아간다. 옛날 기원 5세기에, Pelagius(펠라기우스)라는 사람은 인간은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니 이것은 성경을 곡해한 소치이며, 성경은 시편 14:1이나, 이사야 1:6, 롬 3:11이나, 엡 2:1-9에서 인간은 완전히 타락했음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효과적 부르심, effectual call>에 기인한다. 개혁주의 신앙은 인간의 완전타락을 믿으며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짐을 믿는다.
둘째,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는 지옥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 중에서 구원 얻을 자를 택해 주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무슨 선한 것이 있어서도 아니며, 우리가 무슨 공로를 세워서도 아니며, 오로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창세전에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예지론>에 의해 구원 얻도록, 즉 무조건 구원 얻을 백성을 <무조건 선택해 주셨다>고 믿는다.
이에 반해 어떤 이들은 가르치기를 "우리가 믿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예수 믿을 사람을 선택해 주었다"라고 하는데, 이런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synergism 협력구원설>이라고 하며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을 <arminian 아르미니안주의자>라고 부른다. Arminian 이라는 말은 17세기에 Holland의 Leyden(라이든)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Jacobus Arminius 라는 교수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조건부 선택, 즉 "예지예정론"을 주장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arminian 아르미니안주의자>라고 부른다.
로마서 8장이나 9장, 또한 에베소서 1:4에 보면 우리를 택해 주시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거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로마서 9장을 자세히 읽어 보라.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것을 미리 아시고 그것에 근거하여 우리를 택한 것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무조건선택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해 주신다고 개혁주의 신앙은 주장한다.
셋째, 제한된 속죄 (Limited Atonement)
개혁주의 신앙은 <제한된 속죄>를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만을 위함이라고 믿는다. 이 말은 요한복음 17:9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가 비옵는 것은 온 세상을 위함이 아니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입증된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살후 3:2에 말한다.
넷째, 무저항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개혁주의 신앙은 <무저항적 은혜>를 믿는다. 한 번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하여 <효과적인 부름>의 은혜를 주시면 인간은 반드시 구원 받고야 만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역사하시면서 구원할 자를 구원하신다. 그 방법은 그가 택한 자들에게 그가 정한 때에 <효과적 부르심>으로 이뤄진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 부르심, universal call>과 <효과적 부르심, effectual call>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방법을 통해서 전파되며 사람들은 모두 복음을 직접 간접으로 접하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 부르심, universal call"이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들어도 믿기를 거절하는데, 이유는 그들을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부르시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받을 자는 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불러주신다. <효과적인 부름>을 받으면 즉시 <믿음>과 <회개>가 생긴다. 그래서 <회심, conversion>의 단계를 거쳐 <칭의 justification>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무저항적 은혜>란 하나님이 <효과적 부름>으로 불러주시면 그 부름을 거절할 수 없이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대로 죄악으로 죽은 인생을 자기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다. 좋은 예를 사도 바울에게서 본다. 사울은 율법에 통달한 사람이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성도들을 핍박하고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불러 주시니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어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다.
다섯째, 성도의 궁극적 인내 (Perseverance of Saints)
개혁주의 신앙은 <성도의 궁극적인 인내>를 믿는다. 다시 말하면, <한번 구원을 얻으면 구원을 영원히 보존하고 결코 구원을 상실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빌립보 1:6 에는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주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라고 했고, 로마인서 8:38-39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한다.
또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에서 "온전케 한다"라는 말은 "끝까지 완성시켜 준다"는 말이다. 또한 성경원어인 헬라어의 문법으로 보아도 엡 2:8의 "우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나니"란 말에서 <너희가 구원을 얻었나니>라는 말은 원문인 헬라어에서 "sozo, 구원하다"라는 동사의 완료형 주격 복수 분사이다. 언제나 헬라어의 <완료형, Perfect tense)는 <과거에 일어난 어떤 동작의 결과가 영원토록 변하지 않음>을 말하다. 같은 이유로 요한일서 3:9에 나오는 말,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에서 <하나님께로서 났다>란 말 역시 헬라어에서 연구해 보면 <완료형 남성 복수 분사>로 쓰이고 있으므로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과거에 중생한 자는 죄를 상습적으로 짓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뚜렷해진다.
한 번 구원 얻은 자는 영원토록 구원을 잃지 않는다. 구원 얻었던 사람이 얼마 후 구원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임시생, temporary life?>이지 <영생, eternal life>이 아닐 것이다. <한번 구원 얻은 사람이 영원히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성경적 가르침은 그가 진정 회심했을 때를 말한다. 회심이 없는 <사이비 신자 (a nominal Christian)> 을 지칭함이 아니다. 많은 경우의 사람들이 열심히 입으로 신앙고백도 하고, 세례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지만 얼마 후에 교회를 떠나고, 신앙도 완전히 떠나고, 죄악의 길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죽는다. 이래도 <한 번 구원 받은 성도는 끝까지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교리가 성립하는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요한일서 2:19에 나와 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며, 진실로 회개하고 회심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믿는 척하는 사이비 신자"였을 뿐이라고 요한일서 2:19이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성도의 궁극적 인내>란, 진정 <효과적인 부름>으로 부르심을 입고, 회심하여 칭의(justification)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 크리스천, a spiritual Christian>을 말하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육적인 크리스천, a carnal Christian>을 말함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이비 신자>는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제 61문은 아주 정확하다.
이상 다섯 가지가 <개혁주의 신앙>의 구원관이다.
김명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