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하나님 나라의 요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생각할 때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의 여러 요소들을 고루 다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나
라에 대한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무리 없이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네 가지를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1) 왕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 ‘나라’란 왕이 다스리는 ‘왕국(kingdom)’을
뜻한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대표를 뽑아서 나라를 다스리게 하는 제도가 ‘민주공화국’
이라면 왕이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나라가 곧 ‘왕국’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왕 되신 ‘하나님’ 또는 ‘예수님’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늘 왕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볼 수 있다. 천국에 대한
비유 중에서 “천국은 ···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2), “천국은 마치 ··· 집주인과 같으니”(마 20:1) 또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 13:2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마 13:44; 골 2:3 참조) 등이 모두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 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 ‘예수를 전파하다’와 거의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사실(행 8:12, 20:25, 28:23, 31 등)에서 이러한 면을 볼 수 있다.
2) 백성
하나님 나라에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 만약 백성이 없으면 그 나라는 텅 빈 나
라가 될 것이요, 신하와 백성이 없이 혼자서는 왕 노릇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에
백성이 있을 바에야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옛날엔 그 나라에 아기가 태어나면 왕이 기뻐하
였다. 잠언 14:28에 보면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라고 했다. 이 이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많아지면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곧 성도들이며 이는 출생함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거듭남으로, 즉 회개하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요 1:12,13, 3:3,5).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 방법은 전도를 통해 되는 것이고 말씀 전파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뜻하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쓰여질 수
있음은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증거하고 있다. 구약에서 중요한 구절은 출애굽기 19:6로서
여기서 ‘제사장 나라(mameleketh kohanim)’는 분명히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을 가리킨다.11) 신약에서는 예수의 비유 중에서 “천국은 마치 ··· 겨자씨 한 알 같으
니”(마 13:31)라고 한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뜻한 것이라면 이는 아무래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증가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마 13:38 참조), 또한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마 21:43)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요소들 중 ‘백성’의 요소가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12)
3) 땅(영토)
그 다음으로 우리가 고려할 요소는 ‘영토(territory)’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장소적
또는 공간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 나라에 영토(공간, 처소)가 없다면 왕과
백성들이 거할 처소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신앙은 공중에 뜨게 되며 우리가
바라는 소망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고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다(요
14:2). 그리고 베드로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하였다(벧후
3:13). 게할더스 보스와 조지 엘든 래드, 헤르만 리덜보스 등이 하나님 나라의 ‘주권’ 또는 ‘통치’
를 강조한 것은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으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약점은 하나님 나라의 장소
적 측면을 많이 약화시키고 말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의 근거로 신약의 basileiva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malkuth, mamelakah 또는 mamelakuth는 장소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며 사실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든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가리킴에는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이 중요한 구절을 예외로 취급 하고서(예를 들면 G. Vos, The Kingdom and the Church, 21), 구약에서의 malkuth 또는 mamelakah의 주된 개념은 ‘주권’ 또는 ‘통치’라고 한 것은 편파적이다.
물론 이 두 구절에서 ‘나라’는 ‘백성’보다는 넓은 개념이다. ‘나라’는 여러 요소들을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 여러 요소들 가운데서 여기서는 아무래도 ‘백성’의 요소가 좀 더 부각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외에 ‘세상 나라’에 대해서 ‘백성’ 개념이 부각된 예로는 마 12:25, 24:7; 눅 11:17 등이 있다.
이런 부작용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 한국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내세 천국 사상도 상당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내세의 소망을 확실히 붙들고서 어려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았으며, 그 중에 어떤 성도들은 일제하의 모진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 11:4에서는 malkuth가 영토적 측면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으며, 에 5:3,6, 7:2은 분명히 영토로서의 나라를 가리킨다. 민 32:33의 mamelakah도 분명히 영토로서의 나라를 가리킨다. 또한 삼상 15:28에서의mamelakuth도 영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Gesenius의 사전에는 tWkl]m'의 영토적 의미가 별로 나타나지 않으나, F. Brown, S. R. Driver, Ch. A. Briggs가 편집한 Hebrew and English Lexicon(Oxford, 1952, s.v.)에는 tWkl]m'가 영토를 나타내는 많은 성경 구절이 제시되어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장소적 측면은 종말에 이루어질 ‘미래 천국’(새 하늘과 새 땅)과 지금 성도의 영혼이 안식하고 있는 ‘낙원’ 곧 ‘내세 천국’(눅 23:43; 빌 1:23; 계 14:13 참조)에서는 분명하지만, 현재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세 천국’에서는 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 이 사실이 많은 학자들로 하여금 ‘영토’ 대신에 ‘주권’이나 ‘통치’라는 개념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도록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의 ‘현세 천국’에서 어떤 고정된 ‘장소’를 지정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현세 천국’이 전부 다가 아니며 우리는 현재 이 순간에도 성도들의 영혼이 쉬고 있는 ‘낙원’과 의(義)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전혀 장소 없이 공중에 떠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쨌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으며, 이 세상의 자녀들과 섞여 살고 있다(마 13:24-30 참조). 하나님 나라가 장소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마 7:21, 19:24, 21:31; 행 14:22)15)라든지 “하나님 나라를 빼앗긴다”(마 21:43)16)는 표현에서 알 수 있으며, 또한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마신다”(마 26:29; 눅 22:30)는 표현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나아가서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 설명에서도 알 수 있는데, 예수님은 여기서 ‘밭은 세상’이라고 하시고(마 13:38), 이어서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41절)라고 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장
소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17) 뿐만 아니라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18)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장소성을 분명히 말하고 있
다.19)
4) 주권(지배, 통치 또는 원리)
어쩌면 이 표현은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상태, 또는 축복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 할지라도 이 표현에서 하나님 나라의 장소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이 현재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또한 완전한 구원과 축복의 장소인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 이다. 오히려 이 후자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앞의 표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2. 참조: 22:13, 25:30)는 표현에서는 장소적 의미가 분명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 21:43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문맥에서 볼 때, ‘포도원’으로 비유된 장소적 의미임이 분명하다. 세상 나라에 대한 말에서 살펴보면, 헤롯왕이 자기 딸에게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겠노라”(마 6:23)에서 basileiva란 말이 일반적으로 영토적 의미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 국가 건설 후 다른 각도에서 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기독교 신학계에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D. E. Holwerda, Jesus and Israel. one Covenant or Two? (Grand Rapids: Eerdmans, 1995), 85-112를 보라.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유대주의적 또는 천년왕국적 입장에서 나온 것과 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어느 한편으로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낙원)와 미래에 종국적으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다 고려하고자 함이요, 또한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총괄적인 이해, 다차원적 이해를 모색하고자 함이다.
한 나라를 유지하고 다스리는 데에는 주권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주권이 있으며 통치
와 지배 원리가 있다 이 통치 원리는 곧 .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요체는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으며, 또한 산상보훈에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생활 원리가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
한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곳, 곧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주권이 회복되는 영역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게할더스 보스와 조지 엘든 래드, 헤르만 리덜보
스 등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 또는 주권 개념은 현재의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현재
의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눅 17:20,21). 왜냐하면 현재의 하나님 나라는 완전하지 못하고 또 가시적인 장
소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하나님 나라는 ‘유동적(流動的)’이며
‘비장소적(非場所的)’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 하
나님의 주권이 실현된 곳이 곧 현재의 하나님 나라이다(마 12:28).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곧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역사로 사단의 권세가 물러가면 그곳에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가 서로 싸우고 있
는 전투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표현인 이 세상의 교
회는 곧 ‘전투적 교회(ecclesia militans)’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주권(통치, 원리)적 요소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다”(막
9:1)든지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또는 “너희는 먼
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최소한 위 네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하나
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나타나는 곳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항상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의 그 곳에서 어느 측면을 말하고자 하느냐에 따
라 어떤 요소는 부각되고 다른 요소들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에는 영토적 요소가 분명히 드러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 통치
적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원
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할 때
‘현재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재 저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
라’(소위 ‘낙원’)와 ‘미래의 하나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도 동시에 생각해야 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대해 말할 때에는 늘 위 네 가지 요소의 가능
성을 생각하고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
이 나타날 때, 그 ‘나라’라는 단어가 위의 네 가지 요소 중 어느 것을 주로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둘 이상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으로, 포
괄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