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이제 책들을 소개한다. 서적의 이름다음에는 그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붙여 놓았으므로 그 책이 무엇을 다루고 있는 책인지 식별할수 있을 것이다.
I 성경:
성경을 바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모두 번역된 성경들이다. 성경원본은 없다. 성경원본은 글자가 희미해지기 전에 모두 수없이 복사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런 작업은 독일사람 Johannes Gutenberg (1400-1468)이 인쇄기를 발명하고 활판을 발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가 인쇄기를 발명하여 맨 처음 인쇄한 것은 성경이었다. 그 때까지는 손으로 몇 번이고 계속 복사했다. 그런 과정에서 필기상의 오류가 발생했다 (transcriptional errors). 그래서 신약의 5,000개의 사본에는 약 83,000개의 textual variants (본문 변형) 이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장8절이 가르쳐 주듯 특별하신 섭리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사본 전래 과정 (寫本傳來過程, textual transmission)에서 하나님이 감독하여서 인간 구원에 지장을 주지 않을 뿐 더러 성경에 잘 모를 곳 즉 어두운 곳은 성경의 다른 곳 즉 더욱 밝은 곳에 비춰서 해석하도록 하셨다.
성경이 정확무오 (inerrant and infallible) 하다는 말은 성경 원본 (autograph) 에 조금도 잘 못이 없다는 말이며 또한 신앙을 오도 (誤導, mislead) 할수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모두 번역문이다.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번역의 두 가지 원칙중. 하나는 직역하는 원칙이다. 직역의 장점은 원문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며 단점은 문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경은 KJV (흠정역, 1611)이다. 다른 하나의 번역방법은 의역(意譯)하는 일이다. 장점은 읽기는 문장이 매끄럽고 유려(流麗) 하지만 단점은 원문의 단어를 비슷한 단어로 대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정확한 의도가 가끔 희생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Bible in Today’s English, 혹은 English Bible 이나 Living Bible 과 같은 성경이다. The Message 라는 성경은 각별히 조심해야한다. 이 양극 (兩極)을 조정한 것이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다.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하여 International 이라는 말이 붙었다. 말하자면 절충안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애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성경이라고해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별 무리 없이 사용되고 있다.
성경은 원래가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Hebrew)로 신약성경은 헬라어(Greek)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성경은 세계 여러 나라말 (vernacular)로 번역되었다. 물론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중세시대에는 성경은 Latin어 (羅典語)로 된것만 신부들이나 수녀들이 사용했고, 일반 성도는 성경을 읽을 권리가 없었다. 성경은 그들의 말을 빌리면 성직자들이 전용물 (專用物, monoploy)였다. 그러므로 일반 성도는 성경에 무식하여 교회에 복종만 하면 구원은 보장 받았고, 교회, 즉 성직자들에게 불만을 말하거나 불복종하면 구원을 잃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혼상제 (冠婚喪祭)를 거부하였다. 결과는 교인들이 성경에 무식했고 미신처럼 기독교를 믿었다. 누구나 성경을 읽거나 성경을 개인이 소유하면 반역죄로 다스리며 화형에 처했다.
그런 와중(渦中)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대학의 교수였던 Jan Hus가 천주교의 교리에 반대하여 봉기했다. 그의 관심은 주로 천주교의 성례식이었다. 그 전에 Hus가 영국 Oxford 대학에 재학중 그의 은사였던 John Wycliffe가 천주교에 반대하여 성경은 자기 나라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영어로 성경 번역을 시도하다가 너무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 뇌졸중 (stroke)로 쓸어 져 죽었고, 죽은지 20년후에 다시 시체를 발굴케 하여 (exhumation) 시체를 난도질하고 불질러 영국 Thames강의 지류(支流)인 Swift강에 유해를 뿌렸다. 그의 제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Lollards라는 별병으로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성경을 무지몽매 (無知蒙昧)한 백성들에게 읽어 주었는데 이것이 Lollard운동이고 이에 가담한 회원들을 Lollard (롤라드) 라고 불리운다. Lollard 라는 말은 “방랑자” 라는 의미이다.
Wycliffe의 고상한 정신을 본받아 Wycliffe Bible Translators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 가 생겨나서 본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Hintington Beach에 있는데 세계 미개한 지역에 많은 언어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 부족말로 성경을 번역해 주고, 문자가 없는 부족 (部族)에게는 문자를 만들어서 그 문자를 가르치면서 쪽 복음을 번역해 주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데 Record라는 미국 성서 협회에서 나오는 기관지 (機關誌) 에 보면, 종종 부족들에게 위해를 당하여 순교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주의 명령 (행 1:8)을 그대로 준행하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중세에 사용하던 성경은 방금 언급한대로 라틴어로 된 성경인데 이것은 기원 5세기에 Jerome이라는 사람이 유대땅 Bethlehem에 있는 예수님 탄생교회 지하실에서 칠십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을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이다. 이 성경을 “벌게이트판 성경 (Vulgate Version) 이라고 불리운다. 지금도 그 예수 탄생교회 (Church of Nativity)의 앞뜰에는 사람의 키보다 3배나 높은 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천주교 사람들은 이 성경만을 인정할뿐, 다른 번역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른 번역판은 모두 불살라 버렸고 그런 성경을 소지한 사람은 지체없이 화형(火刑, burned at stake) 에 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해서 죽임을 당했는가 하는 것은 Foxe 라는 사람이 쓴 Christian Martyrs (기독교 순교자들) 이라는 책을 읽으면 알수 있다. 그러던 천주교가 근래에 와서 성경을 자기 나라말로 번역하도록 허락했다. 지금은 영어성경는 이른바 Douay Version 이라는 것을 쓰고 있고, 개신교와 합작한 Jerusalem Bible을 쓰기도 한다. 한국말 성경은 이른바 공동번역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개신교와 천주교가 공동으로 번역했다하여 공동번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 말 성경도 관주성경 같은 것은 19세기말에 서상윤(徐尙崙) 목사등이 중국어 성경을 보고 번역한 것이므로 난해 (難解)한 한문이 많이 섞여 있다. 오늘 사용되는 성경은 관주 성경, 오픈성경, 톰슨 성경, 엠마오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 종류가 많다. 어느 것이든 무방하다.
영문성경을 원하는 분이면, King James Version, 그리고 이를 개역한 Revised Standard Version, 다시 이를 개역한 American Standard Version, 그 후에 나온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최근에 나온 New International Version 등 어느 것이던 좋다.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 (NASV 라고 불리움) 의 장점은 John Knox (스콧트란드의 종교개혁가) 가 사용했던 Geneva Bible (1560)처럼 성경 절수가 항상 맨 왼편에 오도록 편집했다는 점이다. Geneva Bible 은 장로교가 탄생하는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 사용한 성경이다. 지금은 절판이지만 간혹 고서점 (古書店) 에서 발견되면 돈 아끼지 말고 사 두라. 이런 성경이나 고서적들은 희귀본 (稀貴本, rare books) 들이므로 나중에 큰 가치를 지닌다. 도서 수집 (圖書蒐集) 은 클래식 음악 감상과 같이 가장 고상한 취미이다. 고상한 취미를 갖는 것은 우리의 정신위생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성경은 한가지 만 쓰지 말고 여러 가지 다른 종류를 병행 (竝行)해 사용하라. 물론 주로 사용하는 성경은 한 가지로 정해 있지만 비교 연구를 위해서 여러 가지 다른 성경을 비치 (備置)해 두면 가령 어떤 성경구절의 뜻이 애매(曖昧)할 때 다른 성경의 번역과 비교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목사님들이나 신학자들은 많은 종류의 성경을 비치해 두고 비교 연구하며, 원어 성경(原語聖經, Bible in original languages) 을 사용한다. 구약은 E.J.Young의 text가 좋다. 원어 성경은 평신도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되겠지만 (원어를 모르니) 언어 능력이 있는 분들에게는 정확한 성경의 뜻을 알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요즘은 하도 단상에서 이상한 설교가 나오고 성경해석이 다양성을 띠게 되자 평신도들도 시간을 쪼개어 히브리어와 헬라어 같은 원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많은 것은 퍽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땀 흘리는 투자가 없으면 얻는 소득이 없다. 그러나 땀흘려 소득들 얻으면 그 희열김 (喜悅感)은 온 세상을 주고도 살수 없다. 히브리어가 어려우면 (셈어, Semitic language, 이기 때문에 문법이 어려움) 헬라어는 쉬우니 헬라어라고 배우면서 Interlinear Greek text 성경을 사서 공부하면 적어도 신약성경만은 잘 해득할 수 있고, 구약도 헬라어로 된 칠십인역을 읽으면 구약도 이해할수 있게 된다. 구약의 칩십인역은 프린스톤 신학교 교수로 지금은 은퇴한 분으로 필자의 Th.M.논문때 많은 참고 자료를 제공해 주신 Bruce M. Metzgr 박사의 Septuagint with Apocrypha가 그중 제일 좋다. Metzger 박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전 이른바 Reader’s Digest Bible 이라는 성경을 만들어서 물의를 이르켜 학계의 빈축을 산 일이 있지만 그의 학문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분이다. Reader’s Digest Bible 이라는 성경은 이를 그대로 Readers’ Digest라는 잡지사에서 자금을 대주어서 출판한 성경인데 내용은 성경에 한번 나온 구절은 모두 삭제하여 성경을 적은 부피로 축소한 성경이다. 처음에는 부피가 적으니 가지고 다니기 편리한 이류 하나만으로 인기가 있어 값도 비싼 편이 었으니 곧 인기를 잃어 지금은 망각의 세계로 파묻히고 만 성경이다.
가령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 구절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 는 말은 도모지 죄를 짖지 않는다는 단어가 아니고 직설법 현재형 능동태 3인칭 단수 인 poiei 이기 때문에 “상습적으로, 혹은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란 뜻임이 명확해 진다. 그러므로 부흥사들이 가끔 “예수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작은 죄라도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설교하는 것은 그릇된 가르침인 것이다. 믿는 성도도 죄를 짓지만 상습적으로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요한일서 3;9의 뜻이다.
그런데 영어 성경 중에 Scofield Reference Bible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신학교도 가 본적이 없고, 헬라어 히브리어도 공부한 적이 없는 변호사 출신의 Cyrus Ingerson Scofield 이라는 사람이 King James Version에다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여서 성경 페이지 마다 적어 넣은 성경인데 그 분의 신학이 이른바 “세대주의” 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성경해석의 원칙인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철학을 무시했을 뿐더러 성경에다 제 멋대로 해설을 붙인 것은 잘 못이다. 자녀들에게 성경을 권하거나 자신이 영어성경을 사용할 때 이 성경은 절대 금물이다.
또 한 가지 부연 (敷衍)할 것은 성경을 살 때는 영문이건 우리말 성경이건 반드시 관주 (cross reference)가 있는 것을 사라. 왜냐 하면, 성경은 각각 짝이 있다 (이사야 34:16) 성경구절을 연구할 때 그 관련되어 있는 성경의 다른 부분과 연과지어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요한일서 5:16을 보면,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그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가? 관주 성경을 가진 분은 “사망” 이라는 단어 오른편 어깨에 “ㅜ” 라는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 말은 그 위 난외의 주를 보면 마태복음 12장 말씀과 마가복음 3장29절 말씀을 보라고 했다. 따라서 마가복음 3장29절이나 마태복음 12장에 가서 보면 예수님이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냈다고 믿는 죄는 용서함이 없다고 했다. 마가복음 3:30은 이를 아주 명확히 말하고 있다. 고로 관주 성경이 좋다는 말이다.
김명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