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수14:14)
“갈렙”이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낙 사람들이 있던 헤브론이라는 산지를 보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담대히 말했던 사람, 가나안 정탐 후 여호수아와 함께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라고 말했던 사람이라는 것 정도가 떠오르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의 역사에서 갈렙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 두 사건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사건을 통해 갈렙이라는 사람이 참 용맹하고 담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앙인으로서 우리 삶이 때로 비겁하고 겁쟁이 같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어떨까요? ‘용감한 갈렙’, ‘불굴의 갈렙’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요? 하지만 성경은 그에 대해서 평가할 때는 ‘용감한’이나 ‘담대한’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온전히 여호와를 좇은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그에 대한 이런 평가는 그가 처음 등장하는 가나안 정탐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고(민 14:24; 32:12; 신 1:36), 헤브론 산지를 요구하는 사건에서도 같은 평가가 나옵니다(수 14:14).
갈렙은 용감하거나 불굴의 의지를 가졌던 사람이라기 보다는 온전히 여호와를 좇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보였던 용기나 담대함은 사실 그가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기에 자연스럽게 드러났던 모습인 것입니다.
갈렙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이 둘은 출애굽 세대로서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이는 모세조차도 누리지 못했던 특권입니다. 가나안 정탐 후, 이 둘만이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갈렙이 더 전면에 나서서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민 13:31; 14:24). 하지만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의 후계자는, 갈렙이 아닌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훌륭하게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업을 완수해냅니다. 단지 군사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그는 멋지게 감당해냈습니다. 갈렙은 그저 헤브론 산지를 정복할 때 다시 한 번 언급될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갈렙은 성경의 이야기에서 그저 2인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우리도 대부분 ‘여호수아와 갈렙’을 기억하지 ‘갈렙과 여호수아’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아쉬울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성경의, 하나님의 평가에는 어떤 아쉬움도 없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던 자였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끝에서 어떤 평가를 듣기 원하십니까? 세상의 기준에서는 2인자 혹은 그보다도 더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하나님께는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던 자”로 평가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갈렙이 등장하는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12명의 정탐꾼들은 동일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땅이 좋은 땅인 것을 보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두려운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땅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했고, 나머지 10명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민 13:30-31). 소란은 계속되었고, 심지어 백성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였습니다(민 14:1-4). 그 때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민 14:8-9).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갈렙이 걱정했던 것은 그곳에 사는 거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백성들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고 그 땅을 주시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은 어차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서도 증명되었고 광야에서 보여주신 이적을 통해서 재차 확증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야할 적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 계신 여호와께 그들이 순종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즉, 그들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르고 있는가였습니다. 여호와와 다른 것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을 따르는 것이 언약의 백성인 그들에게 요구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갈렙은 그렇게 했습니다(민 32:11-12).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강력한 적군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40여년이 지난 후 헤브론 산지 앞에서도 그의 믿음은 동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고(수 14:9), 이제 그 약속에 기초해서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수 14:12)
그의 믿음은 여호와의 말씀에,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말씀을 하신 여호와에게 있었습니다. 처한 상황이 변했고 자기 자신도 사실 많이 변했겠지만, 그는 여전히 여호와를 온전히 좇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약속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다는 것은 그저 그렇게 고백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떤 감정적인 결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며 그에 따르는 매일의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따르겠다고 찬양하며 나를 써달라고 울부짖으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께서 부르시면 죽음도 각오하고 나아가겠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아내나 남편, 친구의 잘못은 죽어도 용서하지 못하겠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갈렙과 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영역에서 있는 영적 전쟁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에 따라 하루를, 한 시간을, 일 분을, 이 순간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입니다.
최종혁 목사: The Master’s Seminary (마스터스 신학 대학원)에서 M.Div와 Th.M(구약전공) 유평교회에서 학생회교사와 수요일 설교를 담당. 저서로는 강해서인 <야고보서>와 <성경해석: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숨겨놓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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