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인터넷 설교 청취의 문제점과 대책
정말 해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죽은 목사의 설교동영상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출석하지 않고 유투브 동영상 설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교회가기는 싫고 신앙양심은 아직 남아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스스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 교회에 실망하고 목회자에게 식상한 사람들의 임시방편으로 등장한 영적 비극이다. 혜성같이 나타난 설교자가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사정없이 비난하고 비판하고 치는 공격적인 설교를 들으면서 보상심리로 속이 시원한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것처럼 느낀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에 상처 입은 성도들에게는 갑자기 뜨고 있는 한 개인의 경건성과 무소유의 청빙성이 예수님을 보는 것처럼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 시대는 영적 대혼란 시대이다. 밖으로는 이슬람의 팽창과 공격, 동성애같은 비윤리 비도덕 비성경적 범죄를 합법화하고 기독교를 비아냥거리는 자들이 있다. 안으로 교회 내부는 시기질투분쟁으로 얼룩져있고 수많은 성도들이 우왕좌왕 흔들리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영적 리더십이 결여되어 있어 백화점 윈도우 쇼핑 손님처럼 인터넷을 뒤지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앙떼들이 있다. 누구의 잘못이며 누구의 책임인가? 첫째는 영적 지도자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밖에는 없다. 그러나 분별없이 인터넷 설교에 도취된 성도들도 결코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냉철한 마음으로 이 시대의 영적 혼란을 점검하고 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할 것이다.
이 글은 순진한 양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거나 혹은 작은 부분이라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터넷 설교자들과 관계된 몇 가지를 살펴본 것이다. 미리 주의를 요하는 것은 6개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것이 동일한 위험과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각 각에 대한 평가를 참고하고 전체적으로 경계하여야할 것을 참고하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이단시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성도들에게 올바른 주의를 고취시킨다는 데 있다.
1.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
1) 김성로 목사-전직 체육교사였고 예수님 만나 은혜 받고 신학을 해서 춘천한마음침례교회 개척, 수도 목회 침신대학원 졸업 현) 한마음 침례교회 담임 목사, 한마음 선교회 대표, 기독교 한국침례회 해외선교회(FMB) 이사, 세계선교훈련원(WMTC) 객원교수,
2) 문제점-참으로 말이 많다. 저명한 P교수는 김성로 목사의 부활론을 참 잘 하는 것이라고 격려했고 어떤 이단연구자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정말 참 잘하는 것이고 문제가 없는 것인가? 혹자는 이단성이 있다고 까지 비판하였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소위 ‘부활교’ 라고 비난받는 김성로 목사 그의 주장은 십자가만 붙들고 십자가만 믿고 십자가만 전했을 때는 모든 것이 실패였는데, 부활을 붙들고 부활을 외치고 부활을 강조했을 때 모든 것이 잘 되었다. 성공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교인이라면, 누가 이 말을 들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면 십자가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보혈을 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고,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 십자가, 사도 바울이 평생을 목숨 다해 가르친 십자가, 모든 사도들과 수많은 주의 종들이 십자가 붙들고 박해받고 고난당하고 순교한, 그 십자가가 실패인가? 십자가 없는 부활을 생각할 수도 없는데 십자가의 필요성을 외면한 채 부활만을 강조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심각한 문제는 실패한 십자가를 버리고 부활만 붙들고 나가면 성공한다는 이 가르침을 대단한 신교리,새신학인 것처럼 몰려가는 수 백 명의 목회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안 되도 너무 안 되니 답답하고 죽을 지경이라 지푸라기라도 붙드는 심정으로 몰려갔을 줄 믿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요약만 하기로 하겠다.
(1) 부활이 십자가 보다 더 중요하다. “부활이 처음으로 십자가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십자가는 낮은 것이고 부활은 높은 것인가? 십자가와 부활은 등급이 있는가?
(2) 부활구원론-지상 십자가로 죄사함이 완성되지 않았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 단번에 영 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 죄를 완전히 사하셨다는 주장-과연 이것이 성경적인가?
(3) 십자가는 죽은 신앙, 십자가의 예수는 죽은 예수-과연 이것이 사실인가? 십자가를 강
조하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강조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강조하는 것이 곧 부활을 부 인하는 것인가?
(4) 십자가 복음이 아닌 부활의 복음만을 강조한다. -십자가 복음은 실패인가?
(5)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한다.-한마음교회처럼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인가? 십자가 예수만 믿어서 그런가?
(6) 십자가 복음을 붙들었을 때는 실패했는데, 부활복음을 붙들었을 때 성공했다면 십자가 의 도(십자가의 복음)가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했는데 거짓말인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분명히 상상할 수 없는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십자가는 실패인가?
3) 주의사항
필자는 평소 부활신학은 있는데 부활신앙의 삶이 없는 것을 개탄하는 사람이다.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부활신앙에 대한 열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바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활신앙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부활신앙(복음)이 십자가 복음, 십자가 신앙과 대치되거나 방해되고 충돌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손상시킨다면 이것은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과 같은 주의 사항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1) 십자가와 부활은 두 가지가 다 똑같이 중요하다. 성도들 가운데 아직 십자가가 믿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십자가는 믿는데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와 부활을 동등하게 믿는 자이다. 십자가와 부활 가운데 덜 귀하고 더 귀한 것이 있겠는가?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는 땅과 꽃의 관계와 같다. 식물의 씨 와 꽃의 관계와 같다. 땅이 없으면 꽃을 피울 수 없고, 씨를 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십자가 죽음의 씨뿌림이 없으면 부활의 꽃을 거두어들일 수 없다
(2) 우리의 죄사함은 십자가 보혈로 완성, 부활은 죄사함과 구원의 인치심,확증이다.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과 구원 얻는 것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한다. 롬4:25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라고 기록된 것은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이미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것을 확증(인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교리로 죄사함과 구원을 논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3) 십자가 보다 부활이 더 중요하고, 십자가만 붙들고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은 아주 잘 못된 것이다. 십자가가 아닌 부활을 자랑하고 강조해야한다면 성경에 사도 바울이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라고 십자가를 강조하였는데, 김성로 목사의 말대로라면 사도 바울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십자가는 우리의 최고의 자랑이요 기독교의 핵심이요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사함을 논할 때마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부활로 죄사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고전15:3-4). 십자가 없는 부활의 복음은 절뚝발이 복음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16;24-25).
(4) 부활의 복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영적 지도자 목사가 부활이라는 놀라운 신학을 이제야 발견했다면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안 믿고 죽은 예수를 믿는 자가 어디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불신자일 뿐이다. 우리는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믿는다. 천사들의 말처럼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 찾느냐고 책망한 것처럼 우리는 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마치 자기만 부활의 예수를 믿는 것처럼 부활만 강조하는 것은 바르다고 할 수 없다. 가령 혹자가 십자가를 강조하고 증거하고 자랑하고 십자가의 은혜만 말한다고 죽은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강조해서 그 십자가 신앙은 부활신앙 위에 있는 것이지 부활을 제쳐 두고 십자가의 죽은 예수님만 믿는 것이 아니다.
(5) 부활이 십자가 보다 더 위에 있고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활과 십자가는 동일한 가치가 있고 동일한 위치에 있다.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시키는 것은 무서운 죄이다. 성경은 죽어야 산다고 말씀 한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가르친다(마16:25).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섬길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의 죽음을 본받아 우리도 죽도록 충성하자. 우리가 죽어야 산다.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살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죽은 예수를 믿는 것인가? 부활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인가? 십자가는 죽음 희생 헌신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이다. 만약 십자가와 십자가의 희생적 헌신을 무시하고 부활만 강조한다면 누가 죽도록 충성하겠는가?
(6)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만 강조하는 교회는 이상한 교회이다. 십자가 보다 부활을 강조하고 부활을 더 믿는 신앙은 절뚝발이 신앙이다.
(7) 왜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은 강조하지 않는가? 우리에게 남은 소망은 다시 오실 주님이신데 말이다. 초대교회가 선포한 성경의 케르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탄생, 고난, 십자가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만왕의왕, 만주의 주, 하나님나라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부활만 강조한다는 자체가 성경적이 아니고 건전한 신학이 아니다.
(8) 김성로 목사의 신학과 신앙이 문제가 있다고 사료된다.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신학을 더 깊이 연구했으면 좋겠다.
(9)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무엇이 더 귀한가 헷갈리는 자에게 다음 성경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겠다. 십자가와 부활,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부활의 그리스도 사이에서 아직도 머뭇거리는 사람들이여, 십자가와 부활이 얼마나 명쾌하고 분명하고 선명한가를 확증하기 바란다. 십자가와 부활은 멀리 그리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아멘
2.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
1) 박보영 목사-박 목사는 모 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살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30대 후반에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했다. 이혼경력도 있다. 이후 의사면허증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 30억에 달하는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노숙자, 비행청소년들과 함께 살았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선 이러한 박목사를 ‘노숙자의 아버지', ‘가난한 자들의 성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엔 10주에 한번씩 1년에 다섯 번 교회 문을 닫고, 교인들에게 미자립교회에 출석해 헌금과 봉사를 하라는 선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선한목자교회집회)
내가 살지 못하는 정말 남다른(성자처럼) 삶을 사는 박보영 목사에 대해 폄하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 것처럼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도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보혈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학적,성경적,교리적 문제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 있다. 여러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그의 설교를 듣고 그의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 그의 사상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분별있는 청취가 필요하다. 박보영 목사의 설교에 대해 할 수 있는 대로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한다.
2) 문제점
(1) 그의 기도에 대해
“저는 오늘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상담을 하는데 이 상담하는 사람들에게 그 순간만은 제가 예수가 되게 해 주세요. 우리 예수님이 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이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들을 이룰 수 있는 종이 꼭 되게 해주세요. 그런 기도를 하고 사람들과의 상담시간을 제가 다 가져요. 반드시 그것을, 내가 예수가 되게 해달라구요.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풀어지게 해 달라고.”
(박보영 목사, 마가의 다락방 목요 철야, ).
‘하나님, 저 분에게 내가 예수님이 되게 해주세요. 믿고 올라왔잖아요."
(박보영 목사, 마가의 다락방 목요 철야, )
(2) 그의 설교문에 대해
다음 이야기는 어떤 아이가 박보영 목사에게 고백했다는 설교 중 내용이다.
그 아이가 천국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목사님과 예수님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래요. 자기를 보자마자 반가워서, 예수님도, ‘어, 너 왔구나!’ 목사님도 거기서 기다리다가, ‘아이고! 너 왔구나!’ 그러면서 둘이 부를 거 같은데, 자기는 아무래도 그때 실수를 할 것 같대요. 왜냐하면 예수님에게 가야 하는데, 목사님에게 달려갈 거 같대요."(박보영 목사, ‘아, 나는 가짜입니까!’ 인천 방주교회,어떤 교인은 박보영목사를 "우리 목사님도 인간 예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고 한다.
박목사는 전에는 설교자들이 개인적 체험들을 말하면 성경에 있는 이야기만 하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신비적 체험을 자주 강조한다. 기도하는 중 검은 옷 입은 자와 회색 옷을 입은 자를 봤는데, ‘검은 옷 입은 자-세상 사람들, 회색-예수님을 안다고 하며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진정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나는 정말 구원받았을까?’(설교 중 내용이다.
어떤 부자의 이야기를 하는데,심장마비로 진짜 죽었다가 26시간 만에 살아났다고 하였다. 천국에 가서 자기 생활의 영상을 보고 너무 놀라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하고 살아나서 재산을 나눠주기를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건강해지니 옛날로 돌아갔고 몇 년 더 살다가 죽었다고 하였다.
박보영 목사의 결정적인 문제는 구원론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구원이후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행함이어야 한다. 믿음과 행함에 대한 혼돈이 있어서는 안 된다.
評-죽은 사람이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시면서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21)고 하셨다. 그러므로 박보영목사의 죽었다가 살아난 자에 대한 이야기가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그의 설교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삶의 간증이었다. 박목사 처럼 가난하게 무소유로 사는 것이 아무나 보편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쉬운 것도 아니다. 인간적으로는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삶이 구원과 무슨 상관인가? 그의 구원론은 문제가 많다. 삶이 잘못된 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고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다. 인간이 구원을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았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영적 교만이다. 구원론에 대한 성경적 교훈에 대한 무지이다.
3) 주의사항
설교는 말씀에서 나와야 한다. 설교자의 사상, 삶,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에서 나와서는 안된다. 설교자의 경험이 설교의 근거가 아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경험의 세계에 나와서는 안 된다. 박목사의 대부분의 설교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여 설교하기 때문에 청중들은 설교자의 경건성, 청빈성에 감동을 받을지 몰라도 말씀을 통한 영혼의 감동은 받기는 어렵다. 설교는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가르치고 적용하는 것이다. 가난, 청빈, 무소유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거룩, 경건, 청빈, 무소유를 가르치지만 번영, 성장, 축복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모든 사람이 가난하게 살면 어떻게 될까? 사도 바울은 일을 해서 돈을 벌면서 복음전도를 했다. 자기 소유로 교회를 섬기고 자기 것을 바쳐서 복음선교를 하는 것이 옳다. 물론 박목사의 뜻은 자기 것을 많이 가지지 말라는 의미겠지만 아무도 소유하지 않고 항상 남의 것으로 일을 해야 하고 남에게 손을 내밀고 도와달라고 해서 되겠는가? 물질 소유에 있어서 목회자의 삶과 성도의 삶은 동일하지 않다.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 부자와 천국(구원)) 가운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은
물질 때문이 아니고 믿음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무소유로 사는 것이 구원의 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구원의 표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반드시 무소유,가난,청빈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믿음, 구원받은 믿음은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 가난이 아니라,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말한다.
박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예수님 대신 박목사를 더 사랑할 가능성이 많다. 예수님 대신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설교는 자신은 감추고 오직 그리스도만 드러내어야 한다. 박목사는 말씀 대신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한다. 그 설교를 자주 듣다 보면 사람의 이야기에 익숙해지게 된다. 따라서 성경 말씀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많다. 사람의 말이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오감을 가진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 신비한 것, 특별한 것에 쉽게 동요되고 빠지기 쉽다. 이것이 위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