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행동주의형 지도자
교회사에 나타난 두번째 지도자 유형은 행동주의형이다.
자신의 신앙을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 실행에 옮기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던 지도자들을 말한다. 행동주의형 지도자들은 자기의 목숨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그것을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겼다 그런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주변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쳐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진취적으로 전진하도록 만들었다.
행동주의 지도자들에게 우유부단이란 있을 수 없었다. 예스(Yes)와 노(No)가 분명하였으며 공사를 구분하고 사리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판단력과 그것을 실행하는 실천력이 뛰어났던 지도자들이었다. 때문에 영향력만큼이나 그들의 주변에는 적들이 많았다.
기독교 박해나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인물들이다. 진젠돌프 백작(Count zinzendorf)은 “나는 오직 한 가지 열정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오직 그분이시다”고 외쳤다 이처럼 행동주의형 지도자들은 행동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당대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죽은 뒤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던 지도자들이다.
행동주의형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자기가 믿는 진리를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순교했던 초대교회 변증가 저스틴 마터, “80평생 나를 사랑하며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은 주님을 어떻게 배반하겠느냐”고 외치면서 화형의 이슬로 사라졌던 속사도 폴리갑, 자신의 조국 스코틀랜드의 교회 개혁을 부르짖었던 존 낙스, 독일 히틀러 정권에 아부하면서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던 독일 교회에 신선한 도전을 준 것은 물론 생명을 무릅쓰고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 옥중의 이슬로 사라진 디트리히트 본 훼퍼, 그리고 기울어 가는 조국의 교회와 민족에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도전을 주었던 주기철 목사와 같은 사람을 대표적인 인물로들 수 있다.
1. 스코틀랜드 행동파 지도자 존 낙스
존 낙스(1514-1572)는 행동주의 지도자형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개신교 신앙을 전파하였던 성 앤드류의 주교 조지 위스하트(1513-1546)가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한 뒤에 그 대신 성 앤드류 교회의 교사이자 설교자가 되었다. 그의 지도력은 확신 영성 그리고 개혁에 대한 의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지도력이 힘 있고 호소력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실제로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확신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존 낙스에게 타협은 곧 배교를 의미하였다. 그는 단한번의 예배는 백만의 적보다도 무섭다고 외치면서 스코틀랜드의 개혁을 몸으로 실천했던 행동주의 지도자였다.
더글라스(J. D. Douglas)가 지적한 것처럼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은 다음과 같은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영향력이 있었다.
첫째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하고 충분한 법칙이다.
둘째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셋째 목사는 단지 말씀의 교사, 말씀의 종, 그리고 말씀의 청지기이다.
넷째 목사 선택권은 교인이 갖고 있다. 많은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낙스는 교인들이 자신의 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직은 그들의 선을 위하여 임명된 것이며 자신을 목회자로 선택한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영적 성숙을 도모하며 그들의 삶을 부요하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1572년 11월 24일 에딘버러에서 낙스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했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 어느 누구에게 아첨하지도 어느 누구를 과찬하지도 않았던 그 사람이 누워있노라”
2. 몸으로 개혁을 외쳤던 울리히 쯔빙글리
암흑시대와 개혁시대가 맞물리던 격변의 시대에 태어나 몸으로 개혁을 외쳤던 울리히 쯔빙글리(1484-1513)는 전형적인 행동주의형 지도자였다. 칼빈이 지성을 통하여 루터가 황금의 입을 통하여 개혁의지를 피력한 것에 비하여 행동으로 자신의 개혁을 진행하여 나갔다.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의 원천은 타협할 줄 모르는 진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런 그의 확신 때문에 그는 루터파와 재 침례파 결국은 로마가톨릭과도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다. 그의 행동주의 지도력은 두 가지 전환점 성경연구(1919)와 흑사병의 위기(1520)를 거치면서 성숙되었다.
그 뒤 행동은 더욱 확신에 찼고 1522-1526년에는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고 67조항을 택하고 새로운 세례조례를 공포하였으며 신학교를 개혁하고 미사를 폐지하고 권징을 설정하였다.
쯔빙글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고 있었고 목회현장에서 말씀과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철저히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면죄부 행위구원 교권주의 성례주의 비성경적 전통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쯔빙글리는 옛 질서와의 단절 목회 예배 행정 권징 등을 본질적으로 재구성하였다.
3. 행동주의형의 대표자 본회퍼
루터교의 신학자이며 목사인 디트리히트 본 훼퍼(1906-1945)는 행동주의 지도자형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실 속에서 실천을 강조했던 그의 확신이 잘 표현된 책은 금세기에 들어서 가장 큰 도전을 주었던 저서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 )이었다.
당시 공개적으로 히틀러와 나찌의 반유대주의 정책에 반대하였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였지만 그의 확신은 죽음 앞에서도 굽힐 수 없었다. 본 훼퍼는 훌륭한 지도자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확신을 구현하여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20대에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본 훼퍼는 1928년부터 29년까지 그의 지성을 바르셀로나에서 목회 현장을 통해 시험할 수 있었다. 목회현장과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하여 본 훼퍼는 두 가지 즉 행동으로 구현되지 않는 신학은 생명이 없다는 사실과 독일의 유태인 학대 정권과 밀착된 독일의 거짓 교권을 히틀러 통치의 오용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본 훼퍼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이들도 본 훼퍼의 행동주의 리더십에 존경을 금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바로 행동화되지 않은 신앙은 의미가 없다는 그의 투철한 실천정신 때문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 역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