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본문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에 대하여 10절 말씀을 보면,'소돔의 관원'과 '고모라의 백성'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과 음란의 상징입니다.
당시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의 타락상을 이사야는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힐책하고 있는 것은 그 백성들의 신앙생활이 내적 경건은 결여된 채 외적 의식에만 집착하고 있는 '위선'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13절 말씀에는 '헛된 제물은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이 위선적인 그들의 신앙생활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의 제사, 또는 예배와의 관계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제사
1) 제사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에덴에서 축출 당한 인간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제사'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최초의 제사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창 4:4의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에서 보듯이, 제사는 제물과 함께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는 드리지 않고 제물만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비인격화하는 것이며,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은 대속의 제물을 가지고 제단 앞에 가야하고, 그 제단에서 제물을 드림으로써 사죄의 은총과 함께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인간들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을 만나기 위하여 제사 드리러 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만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히 9:26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는 이 일을 단번에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십자가의 대속물로 바치셨던 것입니다.
2) 제사를 거절하시는 하나님
1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와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제물을 많이 받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들이, 그들의 마음은 없이 제물만 드리는 가증스러움 때문에 그 제물들에 대하여 거부하시고 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은 주간마다 지키는 안식일과 새 달마다 지키는 월삭과 해마다 지키는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참가하는 일인데 특히 성회로 모이는 때는 유월절 중의 일곱째 날과 장막절의 여덟째 날이었습니다(출 12:1-28 ; 43-49 ; 23:15-22 ; 23:33- 43 ; 23:36 ; 민 29:35 ; 느 8:18).
이러한 일상생활의 예배 행위가 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를 거부하시며 13절과 같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철저한 회개와 믿음이 없는 예배는 허구입니다.
시 51:17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의 도덕적 삶과 제사
1) 인간의 삶과 제사
12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 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나님과 인간과의 정상적인 관계는 '예배'의 관계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시는 은혜 속에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예배는 요 4:23절 말씀과 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승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은 이미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일상생활 자체가 예배로 되어야 합니다(롬 12:1).
그것이 곧 영적 예배입니다.
삶이 곧 예배가 되는 삶 !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적 생명이 성결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리는 외적 행위는 내적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아직 육적인 사악함으로 가득한데 외형적으로 거룩함을 아무리 아름답게 분칠화장을 하여도 심령을 감찰하시는(히 4:12)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럽고 어리석은 짓임을 지금이라도 속히 깨닫고 돌아서야만 합니다.
2) 삶의 도덕성과 제사
13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제사를 거절하시는 현저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성회와 더불어 악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회'와 '악'의 '공존'을 의미한다기보다 성회 자체가 악에게 지배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악이 선함을 제압하고 악이 종교 지도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을 때, 백성들의 도덕적 상황 역시 악의 지배하에 있게 됩니다. 15절-17절의 내용과 같이, 그들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고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무력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학대하며 그들의 삶에서 악업과 악행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 삶 자체가 도덕적으로 악한 자들이 모여 드리는 성회, 그것은 '악인들의 모임'이지 결코 '성회'는 아닙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예배는 일치되어야 합니다(마 5:24).
오늘날,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순진한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위협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은 큰 죄악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성경말씀을 오로지 자신을 합리화하는 말씀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함으로 스스로를 죄악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야말로 양심을 바로 써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설교자는 본인이 외치는 그 말씀이 먼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임을 왜 알지못하고, 성도들에게만 들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입니다.
무지몽매한 심령들입니다.
성경전체를 보면,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범죄 하였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백성들이 있기 때문에 길이 참으시나, 하나님의 백성들마저 범죄 하면 단호히 징벌하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헤롯에게 불려온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한 미가 5:2절 말씀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판단이 아닌 이성적 판단으로 메시야의 탄생을 믿지 않았던 것 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의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말씀은, 성전 안에, 하나님은 없고 범죄한 인간들만이 우글거리는 그런 예배는 아무리 웅장하고 그 숫자가 많으며, 화려할 지라도 받지 않으실 것을 경고하시는 말씀임을 다시금 깨닫기를 바랍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실상은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경배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실상은 물질이었으며, 이러저러한 명예나 직책 따위는 아니었습니까?
나는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인격으로 미움, 다툼, 시기, 무정함, 위선 등으로 다른 이들과 마찰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그 겉모습은 거룩함과 온화한 미소로 본심을 가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러분 귀를 기울여 들어보세요. 얼마전 기독교 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조사를 했습니다(2020년 1월). 그랬더니 성인 10명중 7명이 목사와 기독교인들을 못 믿겠다고 응답을 했습니다.
이얼마나 부끄러운 일 입니까?
거룩하게 성경책을 옆에 끼고 있으나,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욕심많은 자기 중심적인 삶이 세상사람들에게는 위선으로, 불신으로 보여지고 있고, 이러한 나의 모습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선적 삶에서 떠나 온전히 하나님께 속해 있기를 열망하며 항상 부패성과 싸우며 착하고 진실함을 위해 자신을 쳐 복종케 하는 일에 힘써야 비로서 성도요, 주의 일꾼이라 당당히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근일에 세계는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으로 각 나라들이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 인류적 재난의 사건들을 영적인 눈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오죽 교회와 성도들이 타락을 했으면, 하나님께서는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방법으로 잠시 교회문까지 걸어 잠그도록 하시겠는지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를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알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범죄에 무디어져 있으면서, 22절의 ‘은과 포도주’였던 예루살렘의 방백들 즉, 교회 지도자들은 찌꺼기가 끼었고, 물이 섞였으니 속히 회개함으로 25절 말씀과 같이 ‘잿물로 씻고,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순수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새롭게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시 35:13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왔도다.’
Dr. Daniel ji 목사: YALA 선교회, Tyndale International University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