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복음주의라는 기치를 내건 교회들의 기원은 한 세기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명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고 부르는 ‘실용주의’는 어떤 생각이나 정책의 유용성·효율성·실제성을 중시하는 경험론적 철학 사상을 가리킵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실용주의 철학 자체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래의 실용주의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곳이 교회라는데 의문과 의분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용주의에서 말하는 진리란 곧 유용한 효과와 결과를 산출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실용주의에서는 절대적인 선이나 진리 같은 개념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의 최종적인 경험과 판단이 선악을 판가름 하는 준거가 됩니다.
실용주의 교회의 현실과 고민
실용주의는 마치 거짓 형제가 갈라디아 교회에서 행했던 것처럼 가만히 교회에 들어왔지만, 교회에 끼친 폐해는 너무나 치명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참담한 결과를 실용주의에 물들어 가는 교회들의 어떤 공통적인 모습에서 확연히 보게 됩니다.
첫째,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교회는 겉으로는 신앙을 말하지만 철저하게 세상적인 방식에 의해 유지됩니다. 효과와 효율에 따라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세상의 기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전도와 성장이라는 명분아래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세상의 방법론(사회학, 심리학, 통계학 등)을 무차별 적용합니다.
둘째, 실용주의 교회는 신학과 교리를 무시하거나 배척합니다. 특히 정통교회가 추구해 온 역사적인 신앙고백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신학과 교리를 경시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강조하는 이를 배타적이고 편협한 신앙인으로 단죄합니다.
셋째, 연합과 일치 운동에 적극 동참합니다. 하지만 신학과 교리의 일치를 강조하기 보다는 공동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초교파적 연합을 추구합니다.
넷째, 객관적인 신앙보다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합니다. 예배 시에도 말씀에 따른 찬양보다 사람의 정서와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또한 방언, 간증, 환상, 영성 운동 같은 주관적인 신앙 경험을 선호합니다.
다섯째, 철저한 성경 강해와 교리 설교보다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이야기식 설교가 강단을 주름잡습니다. 성경에 대한 정밀한 해석은 사라지고, 본문과 상관없는 기복적이고, 심리적이고, 낙관적이고, 상식적인 교훈이 설교인 양 둔갑합니다.
여섯째, 경건의 능력보다 경건의 모양을 유지하는 일에 치중합니다. 생명력 있게 전달되는 말씀이 없고, 진리를 향한 뜨거운 갈망이 없이도 신앙적인 교제와 모임이 가능하며, ‘그래도 교회다’라고 주장합니다.
일곱째, 세상과 교회의 경계선이 모호합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할 교회의 존재와 성도의 삶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이 교회와 성도들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교회에 파고든 실용주의는 교회의 교회됨을 유린하고 파괴시키는 주범입니다. 그러나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실용주의의 참상을 정직하게 증거해야 할 목회자와 교회 직분자들이 오히려 ‘실용주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세상에 실용적이었으나 하나님 앞에 실패한 인생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는 실패하였을지라도 진리 안에서만은 참 실용적인 성공된 인생으로 사시겠습니까? 말씀 안에서 진지한 성찰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