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왜 필요한가?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30%가 될 것이라고 한다. ‘혼밥’, ‘혼영’, ‘혼행’이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1인 가구를 위한 ‘솔로 이코노미’도 이미 기업들의 중요한 판매 전략이 되었다. 편의점에 1인 좌석이 마련되고, 심지어 1+1 상품 구매 시 나머지를 보관해 주는 서비스도 나왔다. 어느새 ‘개인화’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렸다. 이제 혼자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다 보니 타락 이후 인간이 결코 끊지 못하는 ‘자기중심성’이 사회 문화적으로 옹호 받는 우리 시대의 젊은 청년들에게 신앙의 개인화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많은 청년들이 교회 공예배에 참석하지만 옆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다. 함께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구원을 얻은 신자의 믿음생활에 싱글라이프는 있을 수 없다. 구원 얻는 참 믿음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한 몸인 언약 공동체를 주셨으며(창 2:24), 타락 이후에는 택하신 언약 백성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로 불러 구원하신다. 성령은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아들이 구속하신 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부활, 승천하신 성자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을 신자에게 주신다. 그 가시적 방편이 보이는 교회(지역교회)이다. 신자가 모여 함께 예배드리며, 교회 공동체와 맺는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신자 개개인을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하도록 성장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가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는 결코 참다운 경건을 이룰 수 없다. 혼자 하나님을 찾는 것만으로 안 된다. 키스 매튜즈의 지적대로 ‘외로운 방랑자’가 될 뿐이다.
이런 사회 문화적 환경 속에서 소그룹모임은 지역교회에서 공예배와 더불어 신자가 공동체적 관계를 깊이 맺는 중요한 수단이다. 더구나 공예배의 공동체성이 약화된 현대 교회에서 소그룹 모임은 신앙의 공동체성을 고백하며 누릴 수 있는 복된 자리다.
소그룹,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자가 서울중앙교회 청년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조 모임은 다양한 관심사를 따라 사진, 통일, 성경공부 등 제각기 하고 있었다. 조원들의 참여를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지나치게 많은 나이 차이, 훈련된 리더의 부족, 조원들의 무관심, 리더들을 향한 교회의 지나친 봉사 요구, 게다가 취업이나 결혼과 같이 개인적 삶의 짐조차 버거운 현실에서 청년들이 자체 소그룹 모임으로 따로 모여 무언가에 힘을 쏟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청년 소그룹이 어려운 더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가 모여야 할 분명한 목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부가 무엇을 위해 모이는지 분명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다보니 조원들 간의 다양한 요구만 쏟아진다. 리더에게 이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
소그룹모임은 대체로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에 자신과 언약 공동체(가정, 교회)를 비추어 함께 살피는 것이다.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히 살펴 깨달은 후 자신의 삶(‘컨텍스트’)을 그것에 맞추도록 소그룹원이 서로 격려하며 돕는다. 말씀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대체로 커리큘럼에 따른 주제별, 본문별 교재를 사용하며 때로는 공예배 본문이나 청년부 강론과 연계하기도 한다.
이 경우 모임이 텍스트 이해 자체에만 몰입하면 신앙 지식과 삶이 괴리 될 수 있고, 학습 방식에 쉽게 지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이와 달리 개인적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고 격려하는 소그룹은 리더나 소그룹원 모두가 사전에 ‘학습’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개인적 소통이 깊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로만 모임이 채워지면 개인적 정서는 어루만져줄 수 있을지라도 소그룹원을 결코 장성한 신앙으로 자라게 하지는 못한다. ‘예수님의 이야기’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텍스트’ 중심이든 ‘컨텍스트’ 중심이든 소그룹 모임은 반드시 예수님의 이야기가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도록 피차 돌아보아야 한다. 나눔 속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이 있어야 한다(딤후 3:16). 청년이든 장년이든 소그룹은 교회 치리회의 권면의 실질적 첫 관문이다. 소그룹으로 모여 서로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함으로써(히 10:24) 우리는 신자의 표지를 견고히 세울 수 있다. 16세기 제네바 교회가 공예배를 통해 교회의 표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컨시스토리(consistory)를 통해 신자의 표지(신앙고백, 삶의 모범, 성례 참여)를 굳건히 했듯이 현대 교회의 소그룹은 치리회의 지도 아래 개개인을 경건한 신자로 훈련하고 세우는 주요한 방편이다.
이를 위해 소그룹은 먼저, 조원 간의 갈등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때로 청년들은 ‘다름’을 인정한다는 미명 아래 다름을 용납하기를 배우기보다 피하고 만다. 대적하여 소그룹이 나눠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갈등을 회피하는 것은 공동체를 끼리 끼리로 묶을 위험이 크다. 근래 대인관계의 갈등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않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성인이라고 그들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혜롭게 조언하며 이끌어야 한다.
더 나아가 소그룹 모임에서 교회의 신앙고백이 분명히 가르쳐지고 견고하게 지켜져야 한다. 서울의 경우 주변을 둘러보면 청년부원들이 모여 술을 즐기는 일도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지도해야 한다. 성(sex)과 결혼, 직장 생활 등 일상의 모습 속에서 경건하지 않는 세속적 가치관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눈다면 소그룹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소그룹 모임에서 허용되는 것이 사실상 그 공동체의 고백이다. 신앙고백과 삶이 괴리 된 공동체는 건강한 언약 공동체로 서기 어렵다.
신형석 목사 (서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