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는 교리를 신봉한다?
(반론)
개혁주의는 교리를 신봉한다. 교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개혁주의는 교리를 성경보다 우위에 둔다. 개혁주의는 교리를 성경처럼 여긴다.
(답변)
저는 반론에 대해 이렇게 답변을 하겠습니다. 개혁주의는 교리를 신봉하지 않습니다. 개혁주의는 교리를 성경 위에 두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을 신앙과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습니다. 교리는 성경을 알기 위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교리를 다만 중요하게 생각 할 뿐입니다.
교리란 무엇입니까? 신구약 66권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 해 놓은 것입니다. 교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무엇인지를 인간의 수준에서 알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교리는 성경을 믿고 아는 바탕이 됩니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더, 바르게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① 실천적 필요성
교리는 다음과 같이 실천적인 면에서 신자에게 필요합니다.
"교리를 가르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대로 된 교리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잘 가르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 복된 삶을 삽니다. 교리를 배워야 사람이 됩니다. 교리가 비로소 사람을 만듭니다."1)
교리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줍니다. 교리를 알아야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리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교리가 보배로운 이유는 신자가 알아야 할 진리를 가르쳐 그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위대한 은혜의 교리를 굳게 믿고 붙잡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없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높이고, 인간의 영광과 사랑과 권세의 무가치함을 드러내고,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과 주권적 은혜를 깨닫게 하는 교리는 진리를 경험한 신자의 영혼에 참으로 보배롭다. …… 교리의 능력을 실제로 경험하면 자연스레 계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2)
교리는 성경을 알게 합니다. 교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해 줍니다. 진리에 단단히 뿌리 내리게 해 줍니다. 교리를 알아야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계속 잔소리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괴롭히기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자녀가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로운 것이고 무엇이 해로운 것인지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는 부모의 잔소리가 듣기 싫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옥죄는 사슬과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철이 들고 어른이 되면 그 잔소리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잔소리의 의미와 이유를 비로소 깨닫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부모의 잔소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는 성도가 바른 신앙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성도의 믿음이 굳건해지도록 해 줍니다. 무엇이 바른 신앙인지 알려주어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보호 해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는 어떠한 존재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끌어 줍니다. 교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저 부모의 잔소리처럼 느껴집니다. 듣기 싫은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교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게 되면 교리가 결코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② 교회적 필요성
또한 교리는 교회적인 면에서도 필요합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의 신앙고백서이다. ……
신앙고백이 없이 그리스도를 믿거나, 공식화된 신조없이 성경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하나의 신화이다. 침례교도들, 오순절파 신자들 그리고 자유사상가적 자유주의자들도 그들이 인정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그들 나름대로의 신조적 공식과 신앙고백적 진술을 소유하고 있다. 성경은 그것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어떤 지침(clue)이 없이는 신자 개인과 교회에게 의미있는 안내를 제공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책이다. 신조와 신앙고백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신조와 신앙고백의 목적은 신앙고백이 다른 자들을 정죄하거나 잘라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을 연합시키며 강건케 하는 데 있다."3)
성경은 우리가 한 손으로 쥘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머리에 다 담을 수 없는 실로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성도와 다른 자들에게 최대한 알게 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잘 정리한 교리가 필요합니다. 교리는 교회의 성도들이 같은 신앙을 고백하게 하며 그 공통된 고백을 바탕으로 연합하게 해 줍니다. 동일한 고백은 같은 지식에서 나옵니다. 지식 없이는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지식은 바로 성경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 때에, 성경을 바르게 알고 그 내용을 똑같이 받아들일 때에 동일한 고백과 연합을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고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하나됨은 연합이 아니라 협력이나 조력에 불과합니다. 오직 동일한 고백이 있을 때에만 참된 연합이 가능하고,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단단하게 묶을 수 있습니다.
"1) 교회의 일치가 불가능하다.
개교회의 경우조차도 신조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부임해오는 다양한 목사들의 신학적인 입장에 의해서 교회는 몇 번이고 그 토대를 바꾸게 될 것이며, 세우면 무너지고 세우면 무너지는 상태가 반복될 것이다. 긴 역사를 통해서 진리에 기초한 일관된 그의 형성은 어렵게 될 것이다.
2) 복음의 순수성 확보가 불가능하다.
교회에는 다양한 잘못된 복음이해와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 교사도 들어오게 된다. 그 때 교회는 신앙의 기준으로서의 신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오류를 인식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
3) 외부 사람들에게도 무책임한 결과가 된다.
그 교회가 어떠한 가르침 위에 서 있는지를 공적으로 분명하게 표명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교회가 어떠한지를 책임있는 형태로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그 교회에 가입하려고 할 때도 그러한 공적인 신앙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그 교회에 안심하고 자신이나 아이들을 맡길 수가 없다."4)
교리는 이단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를 지켜주는 방패이고, 그들을 물리치는 검입니다.
적용
교리에 대한 숱한 반론에도 개혁주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개혁주의는 여전히 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교리를 꼭 알아야 합니다. 교리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성경에 담긴 신앙의 내용과 도리를 정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믿는 신앙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신앙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는 성경을 잘 정리 해 놓은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교리가 중요한 이유를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신자 개인과 관련하여 교리를 통해 첫째, 성경의 정수를 짧은 시간 안에 가장 명확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신앙의 규범 및 요체를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이단을 대적하고 그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탄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리는 반드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의 삶은 바른 지식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가 지탄을 받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이정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게 성도다운 모습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느낌과 경험을 쫓아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강도사님 중에 그분은 한 교회의 소년부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몇 해 전부터 아이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으로 교리교육을 시작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배우기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교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강도사님이 가르치는 방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른들 수준에서 어렵게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차 싶어 둘째 해부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아이들이 (편차가 있긴 했지만)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잘 집중하며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교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교사가 잘 설명하고 가르치면 아이들도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다만 가르치는데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아이들도 이해하는데 어른이 이해를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가르쳐야 합니다. 이왕이면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한 번만 가르치고 말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이해하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때문에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 모두 그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다 배울 때까지, 그리고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기까지 말입니다. 그때까지 견디지 못하니 교리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올바른 신앙생활,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이정표가 되는 성경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을 아는 지식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잘 정리 해 놨습니다. 그것은 곧 교리입니다. 교리는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중심과 원리를 잘 요약해 놓은 신앙의 참고서입니다. 교리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하며,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는 법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신앙생활을 온전히 하고, 은혜 안에 거하며 믿는 바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교리를 잘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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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황희상 저,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서울:지평서원, 2013), p33.
주2) 옥타비우스 윈슬로우 저, 조계광 역,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보배로운 선물』(서울:지평서원, 2012), p221.
주3) 존 헤세링크 저, 최덕성 역, 『개혁주의 전통』(서울:본문과 현장사이, 2003), p35-36.
주4) 마키다 요시카즈 저, 이종전 역, 『개혁파 신앙이란 무엇인가?』(인천:아벨서원, 2010), p65-66.
주5) 이에 대해 다음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희상 저, 『지금 시작하는 교리교육』(서울:지평서원, 2013), p5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