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저항하라
청년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도 순종하고 싶다’고 말이다.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런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순종할 수 있냐고 말한다. 자기 생각인 것 같은데 하나님의 뜻이니 순종하라고 하면 어떻게 순종하겠냐는 것이다. 교회는 일하는 것에 대해 임금을 쳐 주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헌신을 강요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무조건 순종해야 하냐고 말한다.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런 세속적인 일을 줄이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한다고 할 때 순종해야 하냐고 물어온다. 권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도무지 힘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 올 때에 우리는 순종하기 힘들다.
청년들은 겸손히 청원해야 한다. 자신의 형편에서 지금 할 수 없는 일은 겸손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믿음이 없냐, 왜 헌신하지 않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 억지로 교회 일을 맡고, 불평하면서 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협하면서 일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직장인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헌신을 강요할 때 무조건 다 들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겸손히 말하고, 요구사항도 청원해야 한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일하고 순종해야 한다.
청년들은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할 때가 있다. 권위자들이 행하는 불의와 불법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말이다. 혁명을 일으키라는 말이 아니다. 혁명은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겸손히 건의할 수 있지만 혁명을 꾀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불법이 저질러질 때, 교회가 이단사설을 전할 때 단호하게 저항하고 불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섬김과 교회 섬김이 충돌하고 대립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중세교회를 향한 종교개혁자들의 저항이 바로 그러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교회를 박차고 떠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쫓겨났지만 말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 배교한 교회, 배교한 직분자로부터는 단호하게 떠나야 한다.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 5:16).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한 말씀이다. 우리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를 살고 있다.
청년이 순종하는 모습은 비굴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하나님께서 권위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늘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고 품으셨는데 말이다. 인정하고 순종하고 인내하고 저항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다양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청년들의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교회가 세워질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우리 가정과 사회마저 아름답게 세우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
< 발체: 개혁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