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아리스다고
골 4:10
바울의 전도 여행은 참으로 험하고 어려운 여정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를 해하려는 무리들의 번득이는 눈이 있었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 고 이를 갈며 바울을 찿는 무리들이 40명이나 된다고 했습니다(행22:21).
바울의 전도 행로는 생명을 건 사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 11:23-28에 다음과 같이 말씀 합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 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가는 곳에는 실로 환란과 궁핍과 고통만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행20:24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마음가짐을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복음증거 하려는 이 대단한 결의 뒤에는 어떤 힘이 있었습니까?
먼저는, 복음증거를 박해하던 자신을 직접 불러서 일꾼 삼으신 하나님의 부름과 사명에 대한 분명한 감격이 있었으며, 다음으로는, 자신을 돕던 동역 자들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가는 곳마다, 그가 겪는 환란에 묵묵히 동참하던, 바울의 말없는 동역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감옥에 갇혀 있는 이때에도, 바울과 같이 하고 있는 "아리스다고" 라 하는 바울의 동역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신도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는, 아무런 한일이나 역할이 없습니다.
또한 성경은, 그의 인적사항이나 그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행 20:4 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라고 기록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런 아무것도 한일도 없고, 출신성분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가 왜? 오늘 말씀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까요?
우리는 이 아리스다고의 평범함 속에서 아주 중요한 신앙원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울의 처지는 매우 곤고한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핍박과 그에 따른 고통, 그리고 더 나아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 박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전도여행을 염려하며 만류합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엄청난 박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마음은 전도의 뜨거운 열정으로 예루살렘을 들어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행 20:22-38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 비장하고 절실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말씀이 너희를 지키리라" 고 하며 만류하는 그들을 위해, 무릎꿇고 이들을 위하여,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떠나려 할 때, 모두가 크게 울며 "바울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한말을 생각 하며, 근심으로 전송 하였습니다.
사지로 내려가는 바울을 눈물로 전송하는 장면입니다.
평범한 목자와 성도의 관계란 바로, 이런 정도이겠지요!
다시 말해, 바울이 위험한 사지로 내려가는데 이 싯점에서 에베소 장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을 눈물로 배웅 하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사랑했고, 사지로 내려가는 바울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바울의 손을 붙들고
"사도 바울 선생님! 거기 가지 마십시오. 거기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있는 곳이고, 지금 그들은 선생님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 가시면 죽습니다." 라고 만류 하다가 그래도 바울이 가야만 한다고 결심하자, 눈물로 배웅하는 일이 그들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아리스다고"라 하는 평신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을 만류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사명이 막중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바울을 따라 나섭니다.
성경에 보면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바울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와 함께하는 아리스다고"라고 합니다.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복음전도자 사도 바울이, 그의 사역을 끝내 감당하고 위대한 복음사역을 완수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아리스다고와 같이 말없이 따르는 성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에베소의 여신 아데미를 섬기는 무리들이 분노하여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다가, 원형극장에 끌고 가서 많은 곤욕을 치루게 합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는 아리스다고의 앞날은, 순교자 바울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면, 그도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쫓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방인이었던 아리스다고".
"데살로니가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리스다고"
바울을 알지 못했더라면,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아리스다고의 마음은 늘, 구원의 감격으로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다, 많은 고난을 겪었고(행19:29)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아시아까지 함께, 갔으며(행20:4),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했다(행27:2)고 했고, 오늘 본문에 보니 드디어, 바울은 증거 하기를 "나와 함께 갇힌 자된 아리스다고" 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건 바울과 함께하며, 나도 내 생명 아끼지 않겠노라 결심하는 아리스다고의 믿음은, 그가 바울과 함께 하는, 그것만으로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똑같은 상급을 받을 자격이, 그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그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편지합니다.
"디모데야,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 나를 따르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딤후 4:9-10).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 로마감옥에 투옥되자, 그를 따르던 그의 제자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알랙산더"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입히고(딤후 4:14) 떠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의 배신으로 마음이, 더욱 곤고하고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순교해야 할 장소인 이곳, 로마에서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야 너는 어서 속히 내게 오라" 하고 긴급히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리스다고는 로마감옥에서 바울보다 먼저, 순교했다고 합니다.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아리스다고 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은 메어지는 듯 슬픔에 빠졌습니다.
아리스다고가 없는 바울의 현실은 너무 외로운 것입니다.
"나와 함께 가는 아리스다고"(행 20:4).
"나의 동역자 아리스다고"(몬 1:24).
"나와 함께 갇인 아리스다고"(골 4:10).
그가 지금 바울 곁에 없습니다.
곁에 사람이 없는 복음 전도자의 심정은, 너무 곤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에게 아리스다고가 필요합니다.
"함께 가는 아리스다고"
그 아리스다고는 특별한 일꾼이 아닙니다.
다만 말없이, 바울 곁에 함께하여 주며, 그를 돕던 사람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 전파의 원동력은 바로, 이 아리스다고 와 같은 일꾼들입니다.
"함께 가는 아리스다고"
그 아리스다고는 그의 주장이 없습니다.
자기주장이 없다는 것은, 주의 종을 돕는 일이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믿어주고 웃어주며, 함께 하여 힘이 되어주는 보필이 더 은혜스럽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은 시대입니다.
화려한 미사어구와 우렁찬 기도와 찬송은 많으나 정작, 일꾼은 적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전파와 영혼 구원의 사명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 사명을 나에게 주신,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조용히, 행동으로 주가 주신 사명에 순종하며, 따를 것입니다.
말없이 복음을 쫓고, 죽어져 가는 저 수 많은 영혼들을 자신의 가슴에 품고, 안타까워하며, 그런 이들의 구원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이, 우리에게는 정작, 시급한 일입니다.
그렇게 따르다 고통스러운 일 만나, 같이 그 괴로움 나누고, 슬픈 일 만나, 그 슬픈 일 같이 나누고, 외로울 때, 그 외로움 같이 나누며,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위하여, 빛은 안 나지만 생명을 내 던지는 아리스다고가 꼭, 필요 한 때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리스다고는 많은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늘 복음 전도자의 편에 있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유능한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과 함께 순교 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그렇게 훌륭한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전도자 사도바울이 늘,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서 24절에 말하기를 [나의 동역자 아리스다고] 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아리스다고]는 누구 입니까?
Dr. Daniel Ji :
YALA 선교회 이사장, Tyndale 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