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했다. 자신을 원수에게서 안전하게 지켜주셨고, 자신을 백향목 왕궁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단을 통해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윗의 뜻과 전혀 달랐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백향목 집을 지으라고 하신 적이 없으시다.
오히려 하나님은 장막이나 성막에 거하셨다.
하나님을 위하여 짓는다는 소위 '성전'은 과연 하나님을 위한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은 화려하고 멋진 '성전'이 따로 필요가 없으시다.
이방신들이나 화려한 신전이 필요하다. 이방신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로 신 인척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가지고 교회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을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부인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은 자체가 충분히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을 위하여' 큰 건물, 편리한 현대식 건물, 화려하고 멋진 건물이 '성전'으로 필요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핑계하여 사람의 욕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하신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고 감사할까?
1) 과거에 날 위하여 하신 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삼하 7:8, 9)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2) 미래에 날 위해 하실 일.
[9]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10]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11]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12]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삼하 7:9-12)
과거에 날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신 하나님, 아니, 나의 삶의 모든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한다면, 미래의 나의 삶도 반드시 인도하실 것을 믿을 수 있다. 나의 미래를 돌보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며 감사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3) 많은 교회들이 소위 '성전'이라는 건물을 '하나님을 위하여' 짓겠다고 난리들이다.
왜 하필 그 '신도시'일까? 왜 하필 그 신도시에 '성전'을 세우는 것을 하나님이 그다지도 기뻐하실까?
그냥 사람의 필요때문에, 교세를 확장하고 싶어서, 목회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목회자의 야망을 위해서 건물을 짓겠다고 말하면 솔직하다고 인정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말만 붙이지 않아도 이처럼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삶에 행하신 일에 대해서 찬양하고, 나의 삶에 앞으로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찬양하고, 아픔과 고난이 많은 성도들의 삶이지만, 그 아픔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도들이 깨닫고 찬양하도록 도우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을 누려가는 신앙공동체가 되어가고 싶다.
[칼럼] 윤 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