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1세기 사도시대의 교회를 가장 성경적인 기독교회로 간주하고 이를 가장 이상적인 교회로 인식하고 있다. (이 점에는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교회의 제도와 관련해서 볼 때 더욱 그렇다. 사도시대의 교회가 어떤 제도를 가졌는지 교회 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지침이나 모범이 없다. 사도 시대의 교회는 이제 성립된 교회로서 제도면에서 조직화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래서 초기 사도적 ‘교회상’으로부터의 이탈을 흔히 교회의 속화 혹은 타락이라고 간주해 왔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4세기 이후 교회관, 교회구조에는 많은 변화가 수반된다.
특히 평신도와 교직자간의 구별이 뚜렷해지기 시작하였고, 교회는 이 두 계층으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점차 교직자들은 교권을 행사하게 된다. 수도생활이나 금욕이 박해 하의 순교에 해당하는 영광스러운 일로 인식되고 수도승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 시대는 평신도와 교직자 간의 구별이 뚜렷해졌을 뿐만 아니라 교직자들 간에도 계층화가 나타났다.
이 계층화는 신분상의 계층화만이 아니라 수입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어 고위 성직자들이 거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고 구두수선공보다 못한 급료로 살아갔다. 가난한 성직자들은 가죽 제조업, 직조, 제조업, 버터와 치즈 행상을 하기도 했다.
로마교회의 수위권이 인정되면서 로마감독이 교황권을 주장하게 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세로 접어들면서(590), 교황권의 세속권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게 되고 교회는 절대권력으로 군림하여 소위 황제교황주의(Caesar-papim)가 대두한다.
중세교회의 문제는 3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교리와 신학의 변질이다.
오도된 교리와 인간중심의 신학, 공로사상, 거짓된 경건과 신비주의는 이 시대의 변질된 신학의 교회관의 일면이다.
둘째, 교회 제도나 구조에 있어서의 비신학적 혹은 비윤리적 성격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성직자들을 윤리적이지 못한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겸직제도’(pluralism)나 ‘부재직임제’(absenteeism), 성직자들의 취첩을 묵인하게 해 주었던 세금제도(Concubinage fee)등이 그것이다.
셋째, 부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었다.
물질적 부요(富饒)에는 영적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데, 교회 지도자들이 부에 탐닉하엿다는 말은 교회가 세속적 가치관을 다스릴 통제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교횡 보니페이스 8세(Boniface VIII, 1294-1303)의 교황 관저에는, 공식기록에 따르면, 48개의 루비, 72개의 사파이어, 45개의 에머랄드, 66개의 커다란 진주들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부루스 셜리,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277) 돈 만드는 천재로 알려진 요한 22세 (1316-1334)는 각종의 징세제도를 창안하여 교회 질서를 극도로 문란 시켰고,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다.
넷째, 교회가 세속 권력을 탐닉했다는 점이다.
영적 공동체인 교회가 권력 지향적 계급체계로 변모되었고, 교회 지도자는 세속권력을 추구했다. 교황은 교회의 수장으로만이 아니라 세속까지도 다스리는 교황이었다.
종교개혁 직전의 교황이었던 알렉산터 6세(1492-1503)는 교회의 관행과 규율을 무시하고 극도의 타락과 방종한 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황이 되기 전에도 몇 사람의 정부와 3남 1녀를 두고 있었으나, 교황이 된 후에 7명의 자녀를 더 얻었다. 1447-1517년 어간의 교황 중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 말 콘스탄츠교구의 경우 매년 약 1,500명의 사생아가 출산했다. 스코틀랜드의 성(性) MaTaggart는 ‘사제의 아들’(son of the priest)이란 뜻이고, MacNabb이라는 성은 ‘수도원장의 아들’(son of the abbot)이란 뜻에서 기원했다.
이런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카톨릭 측에서도 인정했다. 즉 교황 아드리아누스 6세(Adrianus VI, 1522-1523)는 신성로마제국의 뉘른베르크국회(1522-23)에 파견한 교황사절 프란체스코 치에레가띠 추기경에게 보낸 훈령에서 “루터 이단으로 교회가 받는 어려움의 책임은 성직자들, 특히 교황청과 그 성직자들에게 있다.”고 시인했다. 이 훈령에서는 “교회 안에는 가증할만한 폐습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병폐들은 교황을 포함하여 성직자들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각자는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파로이코이’(헬), 곧 ‘나그네(들)’라고 불렀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나그네와 행인 같은....”에서 처음 사용된 이 말은 기독교인들의 살므이 방식과 현실 세계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용어였다. 고대 헬라세계에서 사용된 파로이코스는 법적인 용어었다. 즉 시민권이 없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는데, 이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pregrinus였다. 영어의 필그림(pilgrim)은 여기서 기원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적인 세계에서 이질성(heterogeneity)을 인식하고 이 세상의 가치와는 구별된 삶을 지향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구원사적인(salvation-historical)중요성을 지니는 구별된 방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4세기를 거쳐 가면서 나그네 공동체가 4세기 이후 안주 공동체로 변모되면서 교회관의 변질이 나타나고 교회가 속화되고 타락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듯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 땅의 가치와 이 세상의 조류를 따르다 보니 교회의 본질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중세교회의 문제는 결국 교회지도자,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의 문제였다. 우리가 교회가 부패했다고 말할 때, 이 말을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교회지도자가 부패했다는 말이고, 좀 더 정직하게 말하면 성직자들이 부패했다는 말이다.
결국 중세교회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볼 때 성직교육의 부제와 성직자의 양산이었다. 이것이 중세교회가 부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인적 요인이었다. 전 독일에 수도사들과 수녀들의 숫자는 무려 1백 50만 명에 달했다. 어떤 지역은 인구 30명당 1명의 성직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이들을 성직자로 구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직자의 과대 배출은 성직자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을 저하시켰고, 이들을 상호 경쟁적으로 만들었을 뿐 만 아니라, 성직자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또 성직자의 양산은 성직자들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중세교회의 근원적인 문제는 결국 지도자, 곧 성직자들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도나 조직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제도나 조직도 그 제도와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기에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중세말기에 나온 유명한 경구가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라는 말이었다.
이상규 고신대 교수(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