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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9 22:33
무엇이 설교 표절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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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287  

Sermon의 라틴어 어원 sermo, 혹은 sermonis는 고대 로마의 웅변가들의 웅변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단순히 ‘연설’(speech)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성경이 결코 단순한 책일 수 없듯이 설교도 단순한 연설이 아니다. 설교는 예배의 자리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요, 회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금의 교회는 설교 표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재정 문제, 목사의 윤리성 문제와 아울러 설교 표절까지 문제가 되어 내홍을 앓고 있는 교회가 한둘이 아니다.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 교회 홈페이지 활성화 같은 현대 문화의 특성상 상황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어떤 목사는 아예 카페를 만들어 수천 편의 설교를 올려놓고 누구든지 가입비를 내고 회원이 되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요즘같이 지적 재산권 문제가 첨예하게 되어 있는 시대에 그런 무분별한 설교 장사가 가능한지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에 본고는 무엇이 설교 표절인지를 규정하고 그 해악과 해결책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무엇이 설교 표절인가?

미국의 유명 대학들은 글쓰기에 있어 표절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가져다 쓴 정보나 데이터.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임을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것. 인용부호를 하지 않은 어구. 출처를 밝히지 않은 구조나 구성 전략.”

예일대학: “인용부호 없이 원전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정보의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 원전을 조금 바꿨으나 거의 흡사한 경우.”

프린스턴 대학: “다른 사람의 언어나 생각, 또는 다른 사람의 고유한 것에 대해 각주나 인용부호 등을 붙이지 않고 그대로 옮기는 경우. 몇 가지 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원 저자가 쓴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여 바꿔 쓰면서 각주를 달지 않은 것.”

스탠포드대학: “합당한 자료의 출처나 작가를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작업을 도용하는 것.”(2)

이상에서 보듯 각 대학들의 공통적인 규정은 출처를 밝혀야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일반적인 글쓰기와 설교는 다르다. 글쓰기에서는 남의 것을 인용할 때는 아이디어든 문장이든 출처만 밝히면 된다.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거의 없이 인용으로 점철되는 글이라도 학위를 받는 데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나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설교에서는 출처를 밝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설교 중에 ‘이것은 어느 주석에서 따왔습니다,’ ‘이것은 어느 목사님 설교집에 있는 내용입니다.’를 연발한다면 과연 교인들이 은혜 받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설교 표절 문제를 다룰 때는 다음과 같이 일반 글쓰기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1) 의도적인가?: 설교자가 처음부터 베끼기를 하겠다고 작심하고 시작했는가 아니면 설교자가 다른 사람의 자료로부터 받은 영향을 무의식중에 표출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도성 여부가 중요하다. 우리 주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건서적들, 주석들, 강해서적들이 나돈다. 그 자료들을 접하다 보면 거기에 나오는 아이디어들, 영감들, 힘 있는 문구들이 끊임없이 목사 자신의 사고 속에 축적된다. 그런 자료들이 설교를 통해 흘러나온다면 그런 것을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런 자료들은 이미 깊은 묵상을 통해 목사 자신의 피와 살로 체화된 것이라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목사의 사고와 영성, 삶과 인격이라는 필터를 거쳐 선포되는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의 설교자가 강단에 서기까지는 자신의 고뇌어린 몸부림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외부적 영향들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영향들 중에는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예화들 중에는 돌고 돌아서 전해지기 때문에 무엇이 오리지널인지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제가 어떤 책에서 보니까,” 라든지 “누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등의 단순한 포괄적 표현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 설교자의 윤리적 책임은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베끼기로 작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대지를 가져오든 내용을 통째로 가져오든 출처를 밝히지도 않고 남의 설교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도용이다. 일반 글쓰기와는 달리 설교에 있어서는 출처를 밝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대리인으로 강단에 선 설교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없이 다른 사람의 말만을 들고 선다면 그것은 설교자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처사이기 때문이다.

(2) 반복적인가?: 또 한 가지 표절의 척도는 그런 행위가 단회적인가 반복적인가? 그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행위였는가 아니면 습관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매주 서너 차례씩 설교해야 하는 과중한 부담 속에서 때로는 초읽기에 몰려 불가피하게 남의 설교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출처를 밝히기만 한다면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설교 가운데서 강한 성령의 감화를 받으며 현재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청중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확신이 든다면 그 설교를 사용하는 것도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자신의 설교를 재탕하는 재탕설교도 경우에 따라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교회사에 영성이 출중한 목사 가운데서 자신의 설교를 백 번 넘게 재탕한 사람도 있었다. 관건은 남의 설교를 사용하든 자신의 설교를 재탕하든 그 메시지가 하나님이 회중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적실한 말씀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경우의 표절의 가납 여부는 전적으로 설교자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상습적으로 남의 설교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작금에 설교 표절로 인해 내홍을 앓는 교회들도 대부분 목사의 장기간에 걸친 설교 도용 때문이다. 그런 경우는 100% 출처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목회 윤리적으로나 말씀의 종으로 세움 받은 사명의 차원에서나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표절행위에는 아편보다 더한 중독성이 있다. 설교자 자신을 위해서나 회중을 위해서나 그런 행위는 근절되어야한다.

(3) 위선적인가?: 설교 표절 중에 가장 교묘한 것은 남의 설교를 기술적으로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남의 설교를 이곳저곳에서 끌어와서 편집하거나 짜깁기해서 자신의 것처럼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설교자는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경향까지 있다. 짜깁기를 하더라도 자신의 관점이나 방향이 있어야 하고 또 자신이 일정 부분 노력도 했으므로 그렇게 짜 맞춘 설교를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러나 본문에 대한 깊은 묵상이나 자신의 고유한 창의적인 내용이 없이 남의 것을 편집한 것에 불과한 설교는 기술적인 표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남의 예화를 편집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남의 예화에 나오는 이름과 일시를 살짝 바꾸어 사용하거나, 남의 체험을 마치 자신의 체험인양 둔갑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며 저질스러운 변조 행위이다. 그런 비양심적인 행위를 동원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위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다음은 이상과 같은 설교 표절 행위의 해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한진환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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