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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auto
 
작성일 : 19-06-20 05:00
기독교인이 사용하는 상투적인 말의 위험성(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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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345  

 하나님은 문을 닫으시지만 창문을 여신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을 이상한 곳에서 찾는다.

가끔 교회는 세상의 영향을 받아들이려는 잘못된 습관 때문인지, 하나님께만 속한 영역을 침해하려고 도모하려는 것 같이 보일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씩은 구원과 중생을 실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보다 조금 더 쉬운 표현으로 설명하는 다른 신자들 때문에 아연실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인내하며 바르게 교정하고 가르쳐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우리가 이 시리즈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상투적인 말의 가면을 벗기는 이유이다. 교회에는 실상 성경적으로 무장된 문지기가 그리 많지 않다.

오늘날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그러한 상투적인 표현들이 우리를 더욱 당혹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엉뚱한 출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그런 표현들이 깊숙히 침투되어 사용된 것을 고려하면, 여러분은 그것이 어떠한 유사 교리 혹은 출처 불명의 서적, 상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진리에 가까운 어떠한 것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보다도 그것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으로부터 나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영화의 대본 작가인 로저스와 햄머스타인(스코틀랜드의 과학자)은 “하나님이 문을 닫으실 때, 그분은 창문을 여신다”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물론 그들이 그 말을 했다고해서 그 말의 대중화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사상은 그들이 말하기 훨씬 전부터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헬렌 켈러’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도 인생의 문이 닫히고 열리는 것에 관하여 매우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어쨌든 그러한 생각이 사운드오브뮤직 에 의하여 대중화되어 이 말은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의 소원과 꿈이 이루어지도록 길을 찾아 주신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니 당신이 직장을 갖지 못하였거나, 배우자, 집, 그리고 어떠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면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은 문을 닫으시지만 창문을 여신다.

그것은 세상 일들이 비록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가 문을 닫으실 때에는, “여기야!”라고 하시며 우리들의 성공을 위해서 또 다른 길을 내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개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만족을 위하여 항상 다른 길을 찾아 주신다는 거짓된 희망은 본질적으로 지금 당장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루도록” 기대하게 만드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신자들이 궁극적으로 얻게 될 로마서 8:28이 약속하는 “영원한 축복에 대한 약속”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에게는, 그는 또한 그의 아들의 형상에 일치하도록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8-30)”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존 맥아더는 바울의 약속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확신과 위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말한 요점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공급하심과 그의 중보 사역을 통한 성령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모든 일이 합하여 우리의 최종적이고 영원하며 궁극적인 선을 이루게 하신다.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으로 선한 결과를 이룰 수가 없다.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당신은 주님께로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당신이 기도생활을 늘릴 때 당신은 보다 강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당신이 인내심을 가지게 할 것이고 당신을 완전하게 하고 자라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을 강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그들과 비슷한 시련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선한 것이 아니다. 이 구절에서 지배하고 있는 ‘선’은 참된 신자들이 가지게 될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영화이다. 우리들에게는, 가장 최상의 것, 그러한 최종적인 ‘선’이 보장되어 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문을 닫으시고 또한 창문을 여는지에 대하여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소원이나 계획, 그리고 욕구를 성취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오시고 또한 모든 일들을 통하여서 그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시적인 만족은 근본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한 길을 열어달라고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실 뿐 아니라 다른 방법을 내주시지 않으실 수 있는 권위가 그분께 있다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소원과 꿈을 이루실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우리 앞에 펼치시는 길에 초점을 맞추고 그 문이 축복에 이르게 하거나 시련에 이르게 하거나 상관없이 그의 주권적인 돌보심과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으로 그가 인도하시는 길을 기꺼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윗이 시편 37:23-25에서 선포한 확신을 본받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길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네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

발체: Grace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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