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5:1-3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 15:1-4절)
1. 의원병과 경건병
의원병이란 의사가 어떤 병을 치료하는데 그 질병은 치료가 되지만 치료 과정 중에 자기도 모르게 다른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6개월을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정작 이 환자는 이 병으로 고생한 것이 아니라 치료과정에서 포도상구균에 감염되어 더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의원병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염되는 질병이라면 기독교인들이 잘 감염되는 질병이 하나 있는데 이 병의 이름을 경건병이라고 부릅니다.
이 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자기의’라는 녀석입니다. ‘자기의’ 즉 ‘에고’는 원래 자기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입니다. 자기라는 개체가 타인 또는 외부에 의해 간섭을 받거나 공격을 받을 때 ‘자기의’는 즉시 보호막을 치고 외부의 도전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의’가 계속해서 외부와 단절되어 보호막 안에 거하게 되면 다른 에고와의 소통과 관계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문제가 치유되지 않으면 당연히 병으로 발전합니다.
경건병은 바로 우월감이 빚어내는 질병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이 병에 걸리면 매우 위험해지는데 왜냐하면 오히려 질병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자부심의 하나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경건병은 경건하다는 뜻의 헬라어 ‘유세베이아(eusebeia)’와 원인이라는 뜻의 '제닉(genic)'이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본인 스스로 거룩하다고 느끼는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경건병자들은 대개 자신이 일반인보다 매우 경건한 신앙인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행한다고 합니다. 특히 이 질병은 그리스도인만 짓는 죄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으로부터 꾸지람과 질책을 듣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경우, 대개 경건병 환자에 속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 병의 주요한 세 가지 특징으로는
첫째, 온갖 외양을 다 갖춘 말과 행동 속에 파묻혀 있어서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겉으로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고, 매우 지적이고 인격적이며 근엄한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둘째, 너무나 두꺼운 자기 의라는 껍질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치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술할 때 제일 난제는 수술 부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라고 의사들은 토로합니다. 경건병에도 여러 성질과 모양과 속성들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 질병인지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런데 막상 치료를 시작할라치면 극심한 저항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지어 치료자를 역으로 공격하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토록 점잖은 사람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투덜대고 씩씩거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해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극단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음을 증언합니다. 하나는 엄한 징계와 꾸지람을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처럼 비유의 방식을 통한 은혜와 설득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이중 후자의 방식을 통한 예수님의 치유장면을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2. 투덜대는 환자
오늘의 환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유대인들 중 특별히 경건한 삶을 살아간다고 스스로 대단히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그 율법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이들은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내팽개치고 오직 법조항을 들고 누가 그것을 어기는지만 지켜보다가 어기는 자가 발각되면 즉시 문책하고 벌을 내리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질책하고 꾸짖으며 회개하라고 단호히 명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특별히 우월감에 빠진 경건병 환자들을 또 마주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에게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금하고 있는 것들을 예수님이 태연하게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율법의 규정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이 절대로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 즉 세리들과 창녀들, 죄인들과 함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식사자리까지 같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그런 행동에 대해 오늘 투덜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장 2절에는 우리말로 ‘수군거리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원래 이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디에공귀존’이라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디아(늘, 항상)라는 단어와 공귀조(불평하다)는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끊임없이 불평하고 투덜대는 것을 말합니다.(He always complains.)
이들은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에 사로잡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먼저 부르시며 아끼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속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들이 오매불망 기다리고 소망해온 메시야가 이 땅에 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하였습니다.
경건병 환자들의 특징은 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한테도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따질 수 있는 근거가 자신의 신실한 신앙에 있다고 여깁니다.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매우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므로 옳지 못한 일에 대해 따질 권리가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58장 3절에 보면 이런 경건병 환자들의 모습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이렇게 따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럴듯하지요.
금식까지 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느냐고 따지고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태도가 경건병에 걸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은 매우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나아가 자기는 항상 올바르기 때문에 남도 항상 자신에게 올바르게 대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실수하고 허점을 보이면 즉시 따지고 추궁하는 병이 바로 경건병입니다.
3. 결론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경건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사람들의 단점과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능숙하게 행하였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나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둘째, 투덜거리는 것은 습관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습관은 행동수정으로 개선이 가능하지만 심한 질병은 수술을 해야 고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병은 반드시 수술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같은 병에 걸린 경건병 환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질병을 겪은 사람들끼리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방식을 통해 경건병에 걸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수술대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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