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결혼식”에 관하여
신랑 신부가 과감하게 키스하고, 축가는 요란하다. 그 정도는 눈 감아 줄만하다. 주례자가 없다. 신랑 신부가 알아서 입장하고 둘만의 언약을 맺는다. 서약도 없고 공포도 없다. 심지어 결혼식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냥 시청(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만 하고 산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다.
평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을 멋지게 연출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평범한 것을 거부당하는 시대에 비범한 결혼식으로 자신과 많은 사람의 기억에 각인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만하다. 결혼식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소중한 행사요, 집안의 잔치이니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은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성도에게 결혼식은 두 사람만의 잔치가 아니다. 교회의 일이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시간이다. 사람 앞에서 행하는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거룩한 예식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생각이나 세상풍조에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성경과 신앙고백, 교회질서에 따라 행해야 한다.
원리가 분명함에도 급변하는 세상 풍조의 변화를 따라 성도의 결혼풍토도 바뀌고 있다. 신앙고백, 교회법, 교회의 오랜 전통은 무시되고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다. 원칙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생기고 있다. 성도의 결혼식이 세상 사람들의 결혼식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이럴 때 교회는 현실이 원리에서 벗어남을 분명히 지적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성경과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24장 결혼과 이혼)의 관점에서 볼 때, 결혼식은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매우 중요한 예식입니다. 요즈음 세상의 결혼식 문화가 바뀌면서 그 영향이 이미 교회 안에도 깊숙이 들어와 성도의 자녀가 세상의 풍조를 따라 결혼식을 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혼식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에 대한 바른 지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1. 주례자가 없는 결혼식을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까?
2. 교회의 정회원(세례 받은 자, 특히 항존 직원)의 자녀가 목회자(목사)가 아닌 일반인을 주례자로 세우는 것은 가합니까?
3. 결혼 서약과 결혼 공포가 없는 결혼이 성경적으로 합당합니까?
4. 혼인신고만 하는 경우, 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지침을 총회에서 연구하여 내려주시기를 청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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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 노회가 거의 자구 하나 다르지 않게 안건을 올린 것을 보면 이러한 현실에 대해 깊이 안타깝게 여긴 몇몇 분들이 다른 노회에도 같은 안건을 올려 줄 것을 부탁한 것 같다.
본론
결혼의 중요성
청원에도 언급되었듯이 결혼은 신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제정하신 제도이며,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이를 잘 이해한 장로교회는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면서 다른 고백서에 없는 결혼을 다룬다. 제24장이다.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라는 제목이다. 교회를 다루는 제25장보다 먼저 나온다. 제24장 제2항에서는 결혼의 제정목적이 교회의 확장에 있음을 명시한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 다루는 결혼식
결혼의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한 기독교회는 오래전부터 결혼식에 관하여 분명한 기준을 세웠다. 이에 우리가 표준문서로 여기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은 특이하게도 결혼식을 다룬다.
결혼식이 예배인가? 아니다. 그런데 왜 예배모범에서 결혼식을 다루는가? 결혼식이 예배는 아니지만 예배에 준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배모범은 결혼을 예식(Solemnization)으로 본다. 그러면서 그 시작을 이렇게 한다.
결혼은 비록 성례가 아니요 하나님의 교회에만 고유한 것도 아니며 인류 전체에 보편적이며 모든 사회의 공적인 관심이지만 결혼은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며 그들 안에 하나님의 복이 임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훈과 지도와 권고가 특별하게 요구된다. 우리는 결혼은 합법적인 말씀 사역자에 의해 엄숙히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하며, 목사는 그들에게 적절하게 조언해야 하고, 그들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한다.
위 내용대로 결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아무나 주례할 수 없다. 합법적인 말씀 사역자에 의해 엄숙히 진행되어야 한다. 목사가 주례하며, 주례 가운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절히 조언하고 기도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영향을 받은 장로교 헌법은 역시 동일한 내용을 다룬다.
고신헌법도 마찬가지이니,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거의 그대로 복창하고 있다. 헌법적 규칙 제6조는 결혼식을 다루고, 그 하위 내용으로 결혼예식의 중요성, 주례, 결혼의 대상, 부모의 승낙, 결혼의 예고, 증거의 확보, 결혼증서의 발급, 결혼명부의 기록 등을 다룬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예배모범이 아닌 헌법적 규칙에서 다루는데,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의 원형을 최대한 잘 보존하고 있는 합동과 합신 헌법은 결혼예식을 예배모범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다음 개정 때는 예배모범에 넣는 것이 좋겠다.)
주례 없는 결혼, 목사가 아닌 일반인을 주례로 세우는 일, 서약, 공포, 심지어 예식 자체를 거부하는 일은 왜 일어날까?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필요 없다고 생각할까? 그 순서가 있는 이유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순서가 특별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주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주례 없는 결혼식은 있을 수 없다. 목사의 주례가 일반인의 주례와 다르다면 일반인을 주례자로 세우지 않을 것이다. 결혼예식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이를 생략하고 국가의 혼인신고만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례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이나 교단 헌법을 읽거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교인으로서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안 해도 괜찮다고 본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교회와 목사를 통해 진행되는 결혼예식의 경건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목사의 주례를 들어보면 성경 말씀은 온데 간데 없고 예화만 가득하다. 하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웃기기 위한 말만 가득하다. 목사의 주례가 자꾸만 세상의 주례를 따라가려고 한다. 그러한 주례를 많이 듣다보면 굳이 목사가 주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런 주례라면 일반인 중에서도 더 감동적이고 웃긴 주례자를 찾게 된다. 목사의 주례는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비록 사람이 보기에 의미 없어 보여도 의미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시대 풍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젊은이들에게 목사의 주례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시간임을 분명히 가르치고 시행해야 한다.
또한 공포가 없는 결혼식이 나타나는 이유는 교회가 결혼을 허락하고 관장한다는 개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목사의 성혼 선포가 곧 두 사람의 혼약(婚約)이 맺어졌음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선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자에게 결혼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교회의 일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신자의 결혼을 총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자의 결혼은 교회가 관할해야 한다. 교회가 신자의 결혼이 성립되었음을 선포할 책임이 있다. 목사는 개인으로가 아니라 당회장으로서 결혼을 선포한다. 당회는 결혼명부를 비치하므로 성도의 결혼을 관장한다(참조. 헌법 교회정치 제124조).
< 발체: 개혁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