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노회와 교회의 노력 신학생들의 성경 실력 향상은 신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신대원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많다. 근본적인 문제는 신대원에 들어오는 입시생들이 성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어떻게 이런 학생들을 노회에서 목사후보생으로 추천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청년이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당회장 목사에게 말하면, 그 청년은 노회 고시부를 통해 거의 자동적으로 목사후보생으로 추천된다. 면접을 해보면 인물 좋고 성품 좋아 보이고, 또 소명 받았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하나 빠졌다. 그것은 그 지망생이 성경을 얼마나 아는지를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얼마나 읽는지를 물어보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는 검증이 안 된다. 결국 그 학생이 성경을 얼마나 아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신대원 입시에 응시하게 되고, 점수가 되어서 합격하면 신학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모르는 교역자가 되는 첫 출발은 교회,노회 추천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고시부에서는 신대원 입학 지망생에게는 ‘소명’과 함께 ‘성경’을 테스트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테스트해야 하는데, 이런 구두시험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필기시험을 칠 필요가 있다. 그래서 100점 만점에 60점이 안 되면, 성경을 더 읽어서 다음에 오라고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시험 유형에 대해서는 신대원에 문의하면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신대원에 보내어야 신학 공부가 되고 또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인상,성격 좋다고 신학교에 보내는 것은 교회,노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회로 가기 전에 담임목사가 먼저 신대원 지망자를 테스트하고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에서 찬양, 봉사를 잘 한다고 해서 또는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신앙이 좋다고 목사후보생으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 지식은 거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청년들은 찬양만 하고 성경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도 목사후보생으로 추천받아 신대원 입시에 응한다는 것은 큰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개교회 담임목사가 첫 출발부터 바르게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목사가 되고 싶어서 신대원에 지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담임목사가 먼저 그에게 성경을 많이 읽도록 지도하고 또 간간이 물어보고 테스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을 때에 노회로 보내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IV. 본인 자신의 노력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본인 자신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주위에서 권해도 본인이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허사가 되고 만다. 따라서 본인이 성경을 많이 읽고 알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의지를 가진 신학생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신학교에서 아무리 가르쳐도 설교는 자기 방식대로 하고 만다. 신학교에서는 3년 내내 설교를 준비하려면 먼저 성경을 잘 알고 바로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전도사들은 막상 강단에 서면 세상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듣기 거북한 말들도 많이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선다는 개념이 없다. 필자가 신대원에 다닐 때에는 교회 전도사로서 한 번씩 강단에 설 때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떨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 엎드러져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가기 한두 시간 전에 나와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것이다. 설교를 잘했든 못했든 그런 마음으로 강단에 섰고, 그랬을 때에 성도들은 어린 전도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줄로 알았던 것이다. 이런 데서 영적 권위가 생긴다. 그런데 요즘 전도사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배 시작 10분 전에, 아니 1분 전에 나와서 기도도 없이 덜렁 강단에 선다. 그리고는 세상적인 이야기, 속된 말들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다. 심지어 새벽부터 경박하게 이런저런 광고를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니 속에 불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요즘 신학생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아예 생각 자체가 없다. 그래서 요즘 전도사들은 설교 준비를 한다고 하면, 아예 처음부터 인터넷을 뒤져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나 예화부터 찾는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다가 성경 본문은 슬쩍 묵상하는 수준으로 스쳐 지나치고 끝난다. 물론 전도사들 중에 착실하게 성경을 연구하고 모범적으로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때로는 위로가 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적다는 데 있다. 그러면 왜 요즘 신학생들과 전도사들이 성경을 모르고 성경을 외면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한국의 대교회 목사들이 나쁜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된다. 방송에 나오는 대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안 하고 세상 이야기 중심으로 하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교회가 잘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생들은 신학교의 영향보다도 그런 대교회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한국의 대교회 목사들이 모범을 못 보이는 것이 큰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기도를 많이 하는 목사들도 있는데, 그런 것은 본받지 않고 나쁜 것만 본받으려고 하니 문제이다. 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수고한 목사들도 있는데, 그런 것은 본받지 않고 영광만 받으려고 하니 문제이다. 어쨌든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따라서 이런 저런 영향을 말하기 이전에, 시대와 환경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 것은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자세가 없이 대형교회를 해보겠다거나 양적 부흥을 꿈꾼다는 것은 자기의 이기적 욕심이며,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 영광을 누리려는 거짓 선지자의 자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겠다는 진실한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은 어떠한 소명보다도 중요하다. 오늘날 입시 지원자들이 말하는 소명이라는 것은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주관적 생각이거나 잘못된 착각일 수도 있고, 환경적 섭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런 소명보다도 지금 현재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 때문에 신학교에 가려고 하는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참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바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자기 스스로 성경을 펴서 읽게 될 것이다. 성경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서 당연히 성경을 가까이하고 펴서 읽게 될 것이다. 단지 글자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기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알기 위해 읽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고 이해되기 시작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좋아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그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설교하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설교를 하게 되면 교인들이 은혜 받고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런 교역자는 사랑받게 되고, 점점 큰 교회에서 오라고 청빙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보기 힘들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하지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된다. 이것은 한두 개인만의 분노가 아니라 한국 교회 성도들 전체의 절규이다. 한국 사회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바로 서야 하며, 교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강단이 바로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역자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은혜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목사후보생 곧 신학생의 성경 교육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변종길 교수, 목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