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역사적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초대 교회의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당시 창궐하던 이단을 배척하기 위한 교리 교육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교회가 확장되고 제도적으로 안정되자, 찬양대도 생겨나고 전문가의 창작시와 창작곡들이 생겨났다. 교회는 가는 데마다 열심히 찬송을 부르는데, 문제는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여러 전통과 가락으로 찬송가가 작사 작곡 연주되다 보니 성경적으로,신학적으로, 음악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직설적이거나 유치한 가사와 곡조와 창법으로 만든 찬송이 범람함으로 찬송가의 정통성 뿐 아니라 경건성에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이단들까지 끼어들어 교회를 혼란케 하였다. 그래서 주후 341년 열린 라오디게아총회에서는 오랜 논란 끝에 60개조의 라오디게아 총회 교회법을 제정했는데, 15번째 법에 이런 결정을 넣었다. “교회에서는 설교단에 올라가서 책을 가지고 노래하는 지정된 가수 이외에는 찬양을 해서는 안 된다.” 이를 통하여 자작 찬송을 금지시키고 성경에 있는 찬송(Canticle, 시편과 성경에 있는 찬송)만을 부르되 찬양대만이 단상에 올라가서 부를 수 있도록 함으로 찬송가의 세속화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쉽게 가르치기 위한 용도로 당시 로마천주교의 특권층만 부를 수 있던 찬송을 모든 회중이 부를 수 있도록 어렵지 않은 민요에 곡을 붙임으로서 찬송을 대중화시켰다. 칼빈은 제네바 시편가 서문에서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진실하고 거룩한 노래가 있어야겠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나게 함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노래가 있어야겠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진실하고 거룩한 노래,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상기시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칼빈이 생각한 찬송의 의미였다.
웨슬리는 찬송을 교리 교육과 신앙선포, 부르심에 대한 응답, 성화에 이르도록 많은 사람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당시 유행하던 곡조를 이용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유행하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영향으로 원곡에 장식음이나 경과음을 넣어서 곡조를 바꾸거나 고치는 것을 철저히 금지키셨다. 원래의 곡대로 정확하게 부를 때만 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하여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음악에 도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악보대로 정확히 부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많은 CCM사역자들은 루터의 예를 통하여 그가 불렀던 것도 당시 대중음악이었음을 지적하며 오늘날 CCM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도 그 곡이 지어진 당시에는 동시대의 음악을 사용했다. 그러나 당시의 대중음악은 오늘날처럼 철저한 시장논리에서 의해서 만들어지진 않았다. 물론 당시의 찬송가들이 모차르트나 비발디와 같은 유명 작곡가들의 곡들만이 아니라 당시 널리 불리던 민요를 사용한 것도 많지만 당시의 민요들은 나름대로 음악적이고 서정적인 특색과 깊이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 곡의 가락들은 감수성만을 자극하기 보다는 그 노래를 통하여 전달하고자하는 이야기에 집중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매체가 되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메기의 추억'이나 '오 수재너'도 1800년도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불린 가곡이었지만 그 음악의 독특함,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100년 뒤에도 애창 될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CCM이 있을까? 결코 없다.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100년 후에 오늘날 유행하는 노래들은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20년 전에 유행하던 CCM 중 오늘날까지 꾸준히 인기를 끄는 곡이 얼마나 될까? 20년 전의 대중음악과 오늘날 대중음악의 차이만큼 CCM 역시 그렇다.
결 론
최근의 CCM이 현대대중음악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려는 시도는 음악적인 차원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독교의 복음의 차원에서는 결국 복음을 유흥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트롯트나 디제잉, EDM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시도 자체가 상식적으로, 성경 신학적으로, 기독교 역사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CCM보다는 주께서 주신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것이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참고서적>
오소은, 누구나 알기 쉽게 쓴 21세기 찬송가 연구
마이클호튼, 개혁주의 예배론
김철웅, 추적, 마틴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존 맥아더, 참된 예배
폴스티븐존스, 예배 누구를 위해 손뼉치는가
에드먼드 클라우니, 교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