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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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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18 22:17
기독론이 무너지면 기독신앙은 폐허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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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081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의 방파선에 심리학, 사회학, 인간관계, 처세술, 상업주의, 종교다원주의, WCC 혼합주의 거센 파도가 무차별하게 세차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 교리의 역사성과 진실을 왜곡시키는 비성경적, 반성경적 악한 사상들과 이단들과 사탄들이 집격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1. 성자 예수님은 성경대로, 역사적으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의 성육신은 “선재하신 메시야께서 인간성 안에 들어오신 사건이며 또한 초역사적인 분이 역사 속에 오신 놀라운 사건”이다(게하르더스 보스).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신 성자께서 성령에 의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입고 우리들 가운데 임하셨다. 남자의 씨가 아닌 성령으로 탄생하셨으므로 비록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으나 죄는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히 7:26).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는 성육신의 교리에 대하여 칼빈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이는 말씀이 육신으로 ‘변했다거나’ ‘섞여서 혼합되었음’ 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육신은 ‘가장 위대한 신비’였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성으로만 계셨다. 그러나 ‘때가 차매’(갈 4:4) 동일한 말씀의 위격 가운데서 그 신성이 마리아의 태로부터 성령으로 조성된 인성과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양성은 각각 고유한 속성(proprietas)을 유지한 채로 오직 위격 안에만 있으며 오직 위격을 통하여서만 교통한다(기독교 강요, 2.14.1).”고 역설하였다. 또한 칼빈은 “영원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 말씀이 위격적 연합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 라고 밝힘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unio hypostatica)을 통해서만 양성의 교통이 있음을 명백하게 주장함으로써 이후 그의 후예들에 의해서 전개된 개혁주의 속성교통론의 교리적 기초를 확고하게 수립하였다(문병호,『기독교 강요』, 기독신문 지상강좌 참조).

성육신 사건은 성령의 초자연적 방식과 마리아의 육신을 입고 잉태하시는 자연적 현상과의 조화의 역사이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우리와 똑같은 완전한 사람이시다. 우리가 영과 육을 가지고 있듯이 주님도 역시 영과 육을 가지고 계시는 사람이시다. 완전한 양성을 가지신 성자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그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고 혼합되지 않고 분리 되지 않고 온전하게 공존한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한 위격(one person)만 갖는다. 양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결코 두 인격이나 두 자아를 가지신 분이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한 인격 안에서 신성의 무한성과 인성의 유한성을 동시에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성육신 교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또한 점도 흠도 없으신 대속의 희생양이 되신다는 것을 밝혀 준다. 영원하신 성자께서 성령의 잉태로 전혀 죄가 없이 태어나셨으므로 그는 신성과 인성을 한 인격 속에 가지신 분으로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신다.

2. 성자 예수님은 성경대로, 역사적으로 십자가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단어는 “수난”(suffering)이다. 그 수난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으심은 복음의 핵심이다. “거룩하시고 무죄하신 분이 날마다 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신 것, 거룩하신 분이 죄로 저주받은 세상에서 사신 것” 등 주님의 생애 자체가 고난이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은 수난의 극치였다. 그는 영혼과 육신 모두가 수난을 당하셨다. 클라우스너는 “십자가의 처형은 사람들이 인간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 중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사형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십자가 죽으심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현장이다.

반면 십자가는 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표지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신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롱에네겟은 “십자가의 저주는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신 교환적 저주가 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필립 휴스는 “최고의 하늘로부터 그는 갈보리와 무덤에로 내려오신 것이다. 이전에는 그보다 부요한 이가 없었지만 그가 이제 가장 가난한 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부요하게 해 주시고 풍성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칼빈은 “우리를 위한 생명의 질료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구속의 값을 치르셨다. 그가 죽으심은 죽음에 삼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정복하기 위함이셨다(벧전3:22).”라고 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사망의 권세를 물리쳐서 죽기를 두려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 주셨다(히 2:14~15). 이것이 그분의 죽음이 맺은 ‘처음 열매’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의 의의 전가를 받아서 죄를 죽이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포함한다(롬 6:4~5; 갈 2:19; 6:14; 골 3:3). ‘이중적 축복’이 여기에 있으니, ‘우리를 결박했던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며 우리의 육을 죽이는 것이다’(『기독교 강요』, 2.16.7).

3. 성자 예수님은 성경대로, 역사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인류 최대의 뉴스이다. 마운스의 말처럼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다. 바울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신앙은 헛것이며 사도의 증언도 거짓이며 신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되며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고전15:14-19). 그리스도는 분명코 시공간 내에서 죽으셨고 시공간 안에 다시 부활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역사적 사건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수많은 대적과 도전이 있다.

칼빈은 우리의 믿음이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죄가 말소되고 죽음이 말살되었으며, 그의 부활에 의해서 의가 회복되며 생명이 소생했다’(롬 4:25; 빌 3:10~11; 벧전 1:21).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부활을,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죽음을 묵상해야 한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지 교훈에 머물게 되고 죽음이 없다면 부활은 허탄한 사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고전 15:17; 롬 8:34). 둘째, 부활의 권능으로 우리는 ‘중생하여 의에 이른다’. 그리하여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된다(롬 6:4; 골 3:3).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도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기독교 강요,2.16.13).

고린도 사람들이 십자가의 도뿐만 아니라 부활의 진리를 어리석게 보았듯이, 오늘날 현대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하며 부활의 교리를 냉소하고 있다. 21세기 과학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십자가 도를 미련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부활의 진리를 우습게 여기고 외면해 버리고 있다. 사탄은 기독교 역사 2000년 이래 가장 교활한 방법으로 부활의 진리를 손상시키고 있다. 거짓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 사건을 외면한 채, 기절설, 시체 도난설, 무덤 오인설, 환상설, 환각설, 신화설 등으로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고 기독교 중심 신앙 교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확실로 증거하는 수많은 예가 있다. 빈무덤, 부활을 목도한 수많은 증인들, 초대교회 탄생, 사도들의 변화, 초대교회의 중심 메시지 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중요성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분의 신성을 확증시켜 준다(롬1:4).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의롭다하심을 확인해 준다(롬4:25),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을 약속해 주고 보증해 준다(고전15:20).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이 살아갈 소망과 능력과 승리의 근원이 된다(고후1:10).

4. 예수님은 성경대로, 역사적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의 승천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다. 현존의 구름 가운데 가시적으로 실현된 하늘로 올리움이다. 그리스도의 거처가 지상에서 천상으로 옮겨진 사건이다. 이것은 칼빈의 언급처럼 “공간적 거리(spatial distance)”의 이동임에 틀림없다. 주님의 승천은 그분의 삶, 죽음 및 부활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제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목격자와 증인들이 보증된 역사적 사건이다. 승천하신 곳은 “하늘(heaven)”이다.

이 하늘은 흔히 알고 있는 저 높은 하늘, 대기권, 성층권 밖에 있는 하늘이 아니다. 벌콥의 논증처럼 주님께서 가신 하늘은 비록 우리가 그곳이 어디인지 그곳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규정할 수 없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그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사실 그가 성육신하시기 전에 계셨던 곳으로 다시 가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그 영화를 다시 취하시고 가신 것이다(요17:5). 단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성육신하시기 전에 성자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가지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성자께서는 신성과 더불어 부활체의 몸인 인성을 함께 가지시고 하늘에 오르신 것이다(벌콥). 승천하신 주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영광의 주가 되신다(빌2:10-11, 딤전3:16).

승천하신 주님께서 그의 신성으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 함께 거하신다. 또한 성령을 보내셔서 보혜사가 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교회를 보양하시고, 기도의 영이 되시며, 선교의 영이 되신다. 주님의 신성과 성령으로 지상의 성도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계심이 보여주는 3가지 은혜를 밝히고 있다.

첫째, 주께서 승천하심으로 아담 이후 닫힌 문을 여셨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늘 성소에 계신다. 그분이 화목주로서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보좌에 가까이 갈 길을 얻었다(히 7:25; 9:11~12; 롬 8:34). 셋째,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성령을 내려주셔서 우리를 성결하게 하시고 각종 은사를 주셔서 성도의 삶을 살게 하신다. 그리하여서 종국적으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심을 완성하신다’(『기독교 강요』, 2.16.16) 등이다.

5. 예수님은 성경대로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이미 언급된 핵심 교리에 내포된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미 시공간의 역사적 사건으로 다 이루어졌다. 오직 미래적 사건인 주님의 재림만 남아 있다. 지금 현존하고 계시는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오시는 것”(파루시아)이 두 번째 오시는 것이므로 재림이라고 칭한다. 주의 재림 사건은 곧 임하게 되는 긴박한 종말론적 사건이다. 재림은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친히 오시는 사건이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몸으로 오시는 사건이다. 재림은 땅의 모든 족속들이 모두 다 가시적으로 단 번에 임하는 공개적 사건이다(마24:27, 30). 주께서 고난 당하시기 전 재림의 전조를 밝혀 주셨다. 전쟁, 기근, 지진 등 여러 가지 난리가 일어난다(마24:6-8). 성도들과 교회가 극심한 환란과 핍박을 받는다(마24:9-10).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난다(마24:11).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 된다(마24:14).

재림의 주목적은 “심판”이다. 재림의 주 앞에 죽은 자와 산 자들을 다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고 영접한 자는 생명의 부활에 이르게 되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불신자는 불못 곧 지옥에 던지움을 받는 심판의 부활이 임하게 될 것이다(계20:15, 마25:26, 막9:48).

주의 재림에 대한 칼빈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virtutis suis) 승천하신 때와 같이 보이는 모습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행 1:11; 마 24:30). 그 때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모두 변화되어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전 15:51~52; 살전 4:16~17).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심이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가 됨은 그분께서 우리를 ‘자신의 영예에 동참하는 사람들’로 삼으시기 때문이다(마 19:28).

그때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심판의 보좌에서 실행됨을 볼 것이다. 심판의 날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가 심판하고 계시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오직, 그리고 전적인 공로로 말미암아 낱낱이 사해짐을 세세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아멘의 찬송을(고후 1:20)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그 찬송의 입술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삶 가운데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이다(『기독교 강요』, 2.16.17-18).”

영광의 주께서 주의 나라를 위해 힘쓴 모든 성도들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성도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약속하시는 주의 말씀을 붙잡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를 대망하며 복음적 사명을 힘써 감당하여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제52문의 해답처럼 종말에 사는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의 위로 속에 승리하길 바란다.

결론) “천하에 구원을 얻는 길은 예수 밖에 없다”는 개혁신학의 기독론이요 구원론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역설하였다, “그리스도께 구할 ‘목표’(scopus)는 ‘그분 자신 안에 있는 의(iustitia)와 해방(liberatio)과 생명(vita)과 구원(salus)’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방식과 방법’(placandi modus ac ratio)으로서 주님의 ‘무름’(satisfactio)이 요구된다(기독교 강요, 2.16.1).

죄로 인하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분과 원수가 되어 있었다(롬 5:10; 갈 3:10, 13; 골 1:21~22).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꺼이 또 그저 베푸시는 자신의 관용’, 즉 ‘거저 베푸시는 호의로’ 우리의 구원이 역사한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부성적 사랑’을 받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기독교 강요』, 2.16.2 을 인용한 문병호, ”기독신문“ 지상강좌 참조).

기독론 성경교리와 진리의 핵심이다. 기독론이 무너지면 기독신앙은 폐허될 수 밖에 없다. WCC 신학의 치명적 문제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으로 일어나는 기독론에 대한 도전이다. WCC의 그리스도의 구원개념은 기독론적 구원 즉 십자가의 복음이 중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 입장에서 사회 구조 악으로부터 구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의 기독론 입장에서 WCC의 종교다원주의, 사회복음주의 및 종교혼합주의를 철저히 경계하여야 한다.
WCC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개혁주의 복음 신학을 배타주의, 독선주의라 꼬집고 비판하지만 개혁주의는 “성경절대주의” 이며 “그리스도 유일 구원주의” 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영광스런 부활의 진리로 어둡고, 혼탁해진 교회를 밝혀야 합니다.

발체: 리폼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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