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성체를
믿는
카톨릭
교도
로마 카톨릭의 중심에는 미사와 성체가 있습니다. 바티칸 제 2 공회는 미사와 성체를 “기독교 전체 삶의 원천이며 절정”(the fount and apex of the whole Christian life)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로마 교회는 미사는 희생 제사이며 갈보리 십자가의 희생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성체의 희생 제사는 하나의 희생 제사이다. 즉, 희생 제물은 하나이며 같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렸던 희생과 똑같은 희생 제사가 사제들의 사역을 통해 드려진다. 오직 제사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드려지는 신성한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단에서 피흘려 바친 그 희생 제사와 같은 것이며 단지 피 흘림이 없는 방법으로 드려진다. … 미사는 참으로 화목의 제사이다.”(신조 구문 1367).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피없는 희생 제사는 말도 안되는 모순으로서 오직 미혹하는 속임 외에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성만찬은 희생 제사가 아니라 기념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희생물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표입니다. 참 신자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감사함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속을 기억하며 그분이 재림하실 때까지 주께 찬양을 드립니다. 참 신자가 주님의 성만찬에 대해 믿는 것과 카톨릭 교도가 미사와 성체에 대해 믿는 것이 얼마나 크게 다른지요! 참 신자를 향해서는 더 이상 죄로 인한 수치와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지니며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완성된 희생 제사를 참으로 믿는 자들을 위해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을 확보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미사에서 드려지는 신성한 제사’를 믿고 의지하는 가련한 카톨릭 신자를 위해서는 주의 구원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카톨릭
교인은
그리스도
예수님께만
기도하지
않고
마리아와
성자들에게도
기도한다.
참 신자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유일한 중보자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복음의 영광은 신자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인은 마리아 및 공인된 성자들에게도 기도합니다. 카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죽은 자와의 교통: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교통은 죽은 자와의 교통에서 충분하게 느껴집니다. 교회는 교회가 시작되던 때부터 교회의 순례자들과 함께 죽은 자들을 기억하며 존경함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그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위해 효과적으로 중보할 수 있도록 합니다.”(신조구문 958).
성경은 하나님만이 그분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함과 진실함에 있어서 무한하며 영원하며 변함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그분만이 기도를 들으시며 그분만이 완전하게 거룩하신 분입니다. 한마디로 그분만이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하나님께만 기도가 드려지지 않고 죽은 자를 향해 기도가 드려진다는 사실은 지독한 신성모독입니다! 죽은 자를 부르거나 불러내는 것은 접신하는 것으로서 성경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참조, 신 18:9-11).
하지만, 미혹에 빠진 가련한 카톨릭 신도들은 로마 카톨릭 전통에 따라 죽은 자를 부르면서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성경적으로 전혀 보장 받을 수 없는 헛된 기도입니다. 성경은 다른 중보자들을 금하는 반면, 카톨릭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속 사역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정하신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입니다(참조, 히 9:24).
결론
성경은 참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라고 말합니다(참조, 렘 23:6). 복음의 찬란함은 신자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고정되는 것입니다. 이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오른 편에 있는 기쁨의 강으로부터 한없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영생은 그분의 완전한 생명이고, 그분은 모든 것을 충만하게 채우는 희생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핵심인데, 그 이유는 참 신자는 언제나 생명을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지속적으로 더욱 바라보는 것을 배우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 교황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얼마나 다르며 그 결말과 운명에 있어서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로마 교회는 자기 교인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칠성례와 그 성례를 붙들어주는 지배 체계를 의지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복음은 물리적인 표시들을 바라보도록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자들은 성경의 지시에 따라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시며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우리의 믿음의 시작과 끝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신실하게 주께 고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분 안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은혜의 원천이시기에 모든 신자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신자의 생명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의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사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생생하게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는 완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 자들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신령한 생수를 마시며 성경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주께서는 매우 엄중한 말로 진실하고 독실한 바리새인을 대면하여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요 대표인 대제사장 가야바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
바리새인들처럼 오늘날 수많은 카톨릭 신자들은 교황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자들이 계속 교황을 ‘거룩하신 아버지’로 인식한다면 이는 바리새인들처럼 참 하나님과 아들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참조, 요일 2:22,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라”). 죄 가운데 계속 거하는 자는 반드시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신자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생명과 완성된 희생 제사만이 신자를 위한 대속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완전하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공의가 만족되는 가운데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려면 그에 상당하는 희생이 치러져야 했습니다. 그 희생은 바로 십자가에서 치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보혈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참 신자만이 영원토록 죄와 사탄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우리는 깊은 감사 가운데 다음과 같이 외치게 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리차드 베네트:
베뢰아 등대 선교회의 베네트 회장은 이 선교회의 창설자로 과거에 카톨릭 신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