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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om aleikhem !

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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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1 23:42
개혁주의 사상의 쉬운 이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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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872  

 1. 시작하는 말

오늘날 개혁주의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상당한 많습니다. 만약 이들만이라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면 이 한국사회 전체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제 어느 정도 개혁주의로 무장이 되느냐에 문제가 될 것이고 개혁신앙운동원들이 어느 정도 튼튼하게 사명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국가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개혁주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겠다고 생각됩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지금 대부분 교회생활을 통하여서 개혁주의 사상 속에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개혁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데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금 의식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분이 좀더 개혁주의 정신에 투철해진다면 더욱 더 반가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2. 개혁주의의 어원과 역사


첫째, 개혁주의란 만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대부분의 말이 서양말을 번역한 것인데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그것이 개혁주의입니다. 개혁주의는 도무지 서양에서 거기에 해당되는 말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서양 사람에게 역수출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의」란 말은 그 사상의 내용이 유연성이 없고 바뀌어지지 않는 위험이 있으니까 「ism」이란 말이 없는 것이 다행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서양에서는 reformed faith, reformed theology 등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개혁주의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면 역사적으로 종교 개혁에서 나왔습니다.   종교개혁은 여러 사람의 개혁이 있었는데, 특별히 우리가 개혁주의라 했을 때 칼빈의 사상을 말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큰 두 줄기는 하나는 루터교고 하나는 개혁주의입니다. 그러면 루터교는 루터파라 하는데 개혁파는 칼빈파라 하지 않느냐 하는데 칼빈은 도무지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을 아주 싫어했고,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금 칼빈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란 말 대신 개혁주의란 말을 사용합니다. 

개혁주의가 받아들이는 신학적 기독교 입장은 칼빈 만이 한 것이 아니고 그 뒤에도 여러 신학자-아브라함 카이퍼(목사, 신학자, 언론가, 수상역임), 바빙크(자유대학 신학교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인물인가에는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상이 성경적이냐 아니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혁주의에서는 도무지 인간을 우상화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전에 교황이란 인물이 한국을 휩쓸고 갔는데 놀라운 것은 한국 사람의 정신적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을 우상화하여 평화의 사도니, 그리스도의 대리자니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의심스럽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습니다. 저에게는 도무지 우상이 없고 이 세상 인간이 다 별수 없다는 생각뿐입니다. 인간은 별 수 없다는 것, 이것도 개혁주의의 한 특징입니다.

개혁에서의 「개改」자는 고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있으니까 고친다는 것입니다. 즉, 잘못되었다는 것이 전제가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열쇠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때 교회가 성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교황이 와서 천주교의 인상이 강조되었지만 그 시대의 카톨릭은 많이 쇠퇴해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성경을 신부만 읽고 누구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라틴 성경만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권리는 교회만 있었습니다. 또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해 있었습니다. 부패가 아주 극치에 달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을 찾아갔을 때 교황이 금은을 세면서 아퀴나스에게 " '금과 은은 내게 없어도' 란 말은 쓸 수 없지"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아퀴나스는 "예,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라는 말도 쓸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은 실제로 개혁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면죄부 판매가 옳은가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내건 것은 모두 면죄부와 관계있습니다. 이 조항을 공공장소에 게시하고 루터는 이 면죄부가 과연 옳은가 이것을 제안했던 것이었습니다. 실제 교황청은 너무 부패해 가지고 성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여러 가지 압니다만 카톨릭의 사상 가운데 성경과 거리가 먼 것이 한둘이 아니고 지금도 마리아를 숭배한다든지 마리아가 에베소에서 승천했다든지 마리아가 동정녀로 남아있었다는 등, 그리고 교황의 말은 성경과 동일한 권위가 있고, 그에게는 절대 잘못이 없다는 교황 무오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의 많은 교리가 교황 무오설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교황 제도를 없애지 않는 한 그것은 철회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3. 개혁주의의 특성


1) 성경 중심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모토는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오늘날의 개신교회 중 성경을 중요시하지 않는 데가 어디 있느냐, 모두 성경을 말하지 않느냐, 그런데도 구태여 개혁주의만 성경을 중요시한다고 하느냐는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개혁주의에서 성경을 중요시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성경을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과 함께 성경에 입각한 일관성 있는 생활태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일관성 있는 하나의 생활체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그저 성경을 적당히 읽어서 성경에서 은혜 받고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세계관, 우리의 인간관, 우리의 신관, 우리의 가치관, 이 모든 것이 가르침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개혁주의의 특색입니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른 신학은 개혁주의가 아니면서 그와 유사한 사조를 띄었다고 해서 개혁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가 개혁주의, 개혁주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몇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 하겠습니다.

오늘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카톨릭인데 카톨릭은 정말로 성경과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이성과 신앙은 분리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모든 사람은 다 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이성은 모든 사람에게 다 동등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물론 안 믿는 사람도 이성은 가지고 있지만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위에 또 하나 더해졌는데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 위에 하나 더 얹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말로 고치면 소위 자연과 은총이라고도 말하는데 자연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가지고 있는 것이고 기독교인은 그 위에 은총이 하나 더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니까 안 믿는 사람도 이성의 영역에서나 자연의 영역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다만 안 믿는 사람이 하나 못 가진 것이 무엇인고 하니 믿음이요 은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은 그 이성의 영역 내에서는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이성은 동일합니다. 다만 그 위에 믿는 사람이 믿음을 하나 더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카톨릭의 소위 토미즘,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카톨릭 신학의 특징이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니 안 믿는 사람도 상당한 진리를 획득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인간으로서 그 상당한 진리를 소유할 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다만 믿는 사람이 그 위에 하나 더 알 수 있다고 하여 이성의 자율성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카톨릭 신학의 글에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문자P로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소문자 p로 써놓으면 그것은 다른 철학자이고 대문자 P로 써놓으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고, 거의 구원받을 뻔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상당한 교회가 비록 개신교회라도 사실은 천주교적 통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는 주일날 교회에 가고 안가고의 차이이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똑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외에 사회생활은 꼭 같은데 다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 다르게 담배 안 비우는 것, 술 안 마시는 것, 조금 나은 사람은 밥 먹을 때 기도하는 것 등의 차이가 있으며 그 외에 탈세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하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개혁주의는 신앙이 없다면 이성도 아무 능력이 없고, 은총이 없으며 자연도 아무능력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개혁주의는 위의 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성이라 하는 것 그 자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힘을 얻어야만 이성의 역할을 할 수가 있으며 자연도 은총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구체적으로 새가 어떻게 나느냐는 문제에서, 새가 모이를 먹으면 속으로 소화가 되어 에너지를 발산하니까 법칙에 의해서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나 안도와 주시나 상관없이 새가 날아간다고 생각하고, 물이 위에서 내려올 때 그것이 폭포가 되는 것은 자연법칙으로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나 안 도와주시나 상관없이 새가 날아간다고 생각하고, 물이 위에서 내려올 때 그것이 폭포가 되는 것은 자연법칙으로 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은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봐야 개혁주의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질 때도 그것은 하나님이 바빠서 어떻게 일일이 간섭하느냐, 그런 것은 다 자연법칙에 맡겨 놓고 가끔 가다가 누가 특별히 기도를 하면 그때 기적을 행하여 하나님이 간섭한다고 생각하면 개혁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머리털하나 떨어지는 것 하나하나까지 하나님이 계산한다고 믿는 것이 개혁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의 영역이 그자체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 모든 영역은 다 하나님의 시시각각의 간섭하에 놓여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우리는 성경을 매우 중요시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왜 성경을 중요시할 수 밖에 없는가 하니까 천주교인들은 이 분야에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으면 괜찮은데 하나님이, 예수님이 없어도 꽤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에서는 만약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지식이 다 헛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거기서 굉장한 차이가 납니다.

개신교 가운데 루터교는 물론 천주교처럼 엄격하게 구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루터교에서는 두 왕국설을 믿습니다. 정치적인 영역에 있어서 세상의 권한은 완전히 세상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하여 서로 상당한 독립성을 인정합니다.

그 다음에 자유주의는 천주교 보다 더 인간의 이성을 절대시합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까 자유주의는 밑에 것이 위에 것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아느냐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므로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든지,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든가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학의 원칙에 어긋나니까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그렇게 되니까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 없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충분히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무슨 계시가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시가 제일 필요한 것이 개혁주의입니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인간은 아무런 올바른 지식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장 성경을 중요시하고 그 다음에 성경과 일관성 있는 삶의 태도, 삶의 철학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상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별로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성경과 일관성 있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성이라는 하나의 상당히 넓은 영역이 성경과는 독립되어서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손봉호 박사: 서울중앙교회를 다녔으며 장로로서 서울 영동교회에서 오랫동안 설교로 사역.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후 총신대학교에서 강의. 한국외국어대학교 화란어과, 철학과 교수와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고신대 교수. 동덕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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