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의 전적부패를 신뢰하는 삶
성경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지적으로만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분별력이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어리석다 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선하고 악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든 분야에서 다 부패했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고귀한 일,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런 일을 한다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이 충성되게 일하고 나서도 끝에 가서는 나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 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것이 개혁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우리 인간은 뭐가 잘되고 일이 좀 잘되면 자기 공로로 내세우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유혹은 물리쳐야 합니다. 어떤 때는 특별히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내가 잘했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내가 제일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내가 개혁주의자가 아니라면 안 싸웠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계속해서 싸웁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서 우리가 좋은 일을 했는데, 그 영광을 우리가 다 받아 버리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교만은 인간에게 계속 붙어 다니는 유혹입니다. 교만이 곧 죄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인간의 가장 무서운 죄는 교만이요, 두 번째로 무서운 죄도 교만이요, 세 번째로 무서운 죄도 교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무 이것을 강조하면 어떤 사람은 젊은 사람 기를 다 죽여 놓는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가 어떻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까? 여기서 예정교리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정교리를 이상하게 해석해서 질문을 많이 하는데, 예정교리의 본래의 의도는 인간의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이 구원인데,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것이 바로 예정교리입니다. 나의 믿음으로, 나의 결심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고, 구원에 있어서 내가 공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바로 이것이 예정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한번 보십시오. 칼빈이 말한 인간의 전적부패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예정입니다. 본래 예정교리는 믿는 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예정교리를 쓰지 마십시오. 믿는 사람이 자신을 돌이켜보니까 자기가 잘해서 믿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이 믿게 하셔서 믿게 되었구나 하는 고백적 차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거나 인간의 전적부패는 가장 비인도적인 입장이라고 주장하는 니이체니 막스니, 포이에르 바하와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기독교는 인간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존재이니 얼마나 고귀합니다. 어느 날 YMCA에서 공개 철학강의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인권문제에 관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인간이 존귀한 근거가 무엇이냐 철분을 조사하면 못 두 개 밖에 안 되고 총 한방에 죽는데 무엇이 중요하냐, 아무리 존귀한 이성을 가진 자라도 교통사고로 죽는데 무엇이 존귀하냐 근거도 없는 이러한 인권에 대한 외침은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막스주의에서 이러한 인권을 얼마나 강조하는데 왜 공산주의에서는 인권이 무시당합니까.” 인간이 존중되고, 인간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상이기에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기에 고귀한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이성이 있기 때문에 고귀하다고 했는데 요즘은 이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고, 실지로 우리가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것 은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까닭일 뿐인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위에 올라가면 오히려 가치가 더 하락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와 관련해서 최근에 학생들 사이에서 느낀 것을 한 가지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지만 역사에 있어서 인간이 역사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역사는 항상 죄로 섞여 있습니다. 좀더 재미있는 비유를 보면 천국은 이와 같으니 해놓고 가라지 비유를 합니다. 즉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에 가라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인간의 죄악이라는 것은 인간 공동체에 너무나 강하게 나타납니다.
현대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라는 사람이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말하기를 인간의 모든 공동체는 이기주의적입니다. 그것은 항상 비도덕적입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입니다. 제가 최근에 언론 연수원에 가서 기자들을 연수하는데, 국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비도덕적이라 하면 깜짝 놀라요. 개혁주의 신앙에서는 혁명을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혁명을 해봤자 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그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혁명을 통해 좋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러시아 혁명, 멕시코 혁명, 어느 혁명이 성공했습니까? 그래서 니버는 잘 지적했습니다. 대게 혁명을 일으키면 그 혁명을 일으킨 세대는 어느 정도 소위 혁명의 정력이 남아 있어서 꽤 괜찮아 보이지만, 그 세대가 지나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급격한 혁명을 일으켜서 많은 사람을 죽이지만 자신은 죽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빈부, 억눌린 자를 보지만 자신은 수 억대의 재산을 가지고도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지는 않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국가가 이상주의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국가는 커녕 교회도 이상적인 교회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지만 선지자들은 계속 외쳤던 것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악을 대항해서 싸우고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좋은 이유는 개혁주의가 민주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개혁주의의 신앙정신이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비효율적인 제도입니다. 몇 시간 떠들고 나면 다시 처음 시작으로 돌아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좋은 이유는 여러 사람이 의견이 반드시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개혁주의는 독재 정치를 허용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개혁주의는, 적어도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개혁주의는 굉장한 자제와 금욕을 행합니다.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자본주의가 칼빈주의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세계 내적 금욕” 때문입니다. 세계 내적 금욕은 짐을 싸들고 기도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살면서 금욕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개혁주의 정신을 받아들인 나라에 가보면 압니다.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 매우 해이해져가고 있습니다.
또한 개혁주의 신앙에 입각한 여러분들은 시간관념이 철저해야합니다. 생활이 규칙화되고, 향락에 빠지지 않고, 모든 감정과 향락에 있어서 절제를 하고, 시간을 엄격히 지키는 고급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개혁주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에서 나타나야합니다. 유혹과 싸워야합니다. 죄악의 요소가 나를 사로잡을 때는 그것을 억누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주의의 힘입니다. 이 힘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상 받을 준비를 합시다.
손봉호 박사: 서울중앙교회를 다녔으며 장로로서 서울 영동교회에서 오랫동안 설교로 사역.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후 총신대학교에서 강의. 한국외국어대학교 화란어과, 철학과 교수와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고신대 교수.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