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한 비겁함
복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주변의 비난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람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형 교회를 꽉 채우고 있는 여흥에 주린 교인들 가운데 진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보는가? 뿐만 아니라 핍박이 전혀 없는 환경에 사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그런 모호한 입장은 잘해 봐야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뿐임에도 말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위해 싸울 게 아니라, 같이 어울리고 놀아야 제격이라고 생각들 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대다수 신자들의 사고 속에서는 진리를 위해 싸운다는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이 좋게 지내기를 바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아주 재미있게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교회를 ‘근사한’ 곳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은 그들의 교리가 건전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거짓된 사고를 갖고 있지 않는지 점검하는 것 자체가 시대 주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단에 대해 위험하다고 염려하는 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촌스럽게’ 보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는 형편이다. 어차피 영적인 진리 따위에 목숨을 걸지 않다 보니,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 하나님과 어두움의 세력들 사이의 우주적인 전쟁(엡 6:12) – 은 진리에 대한 갈등을 뜻한다. 저들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는 신앙 공동체에 침투해 들어온다. 새로운 수법이 아닌데도, 현 세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불행한 것은 이런 위협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가치 있는 그리스도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의 교회는 점점 거드름을 피우며 세속적인 자만심에 빠져 간다. 하나님의 영광은 생각지도 않고, 진리와 건전한 교리에 전혀 무감각해진 교회 지도자들이 이제는 방법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진리를 위해 살고 진리를 위해 죽을 줄 알아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는 말을 생각해 보라.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는 일에 조금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위해 부름 받았다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 사명으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바로 그 말씀을 하셨다(마 16:24). 비겁자가 어찌 참 신앙인과 같을 수 있단 말인가?
John MacArthur: 미국 Grace Community Church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