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말씀보존학회 성경관의 문제점 연구
킹 제임스 성경과 그 원문인 TR(Textus Receptus)만이 하나님이 보존하신 성경이라는 주장
1. <King James> 성경의 바른 이해
1611년 번역된 “킹제임스”(King James)성경은 그 당시로도 전혀 새로운 성경이 아니라 이전의 번역판들에 대한 개정작업이었으며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른바 흠정역(欽定譯) ‘Autorized Version’이라는 것도 사실상 그 자체는 그 이전의 번역판들을 개정한 것으로 1611년 제임스 왕이 권위를 인정한 것으로 Erasmus의 그리스어 텍스트를 기초로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가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6개의 후기의 빈약한 그리스어 사본 뿐이었으므로 많이 애용되어 온 흠정역에 있는 재료는 3세기 이상이나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성경으로는 매우 불명확한 것이다. 사실상 Erasmus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그의 사본도 전부 사용하지 않았다…. 만일 Erasmus가 그것(시내산 사본)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흠정역 성경은 의심할 여지없이 좀더 정확한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George E. Ladd, The New Testamentand Criticism)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죠지 래드(George Ladd)의 말이다. 죠지 래드는 성경 헬라어와 교부 헬라어로써 박사학위를 받은 분으로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신약학자이다.
횃불 트리니티신학대학원의 장두만 교수의 글을 인용해 본다.
“KJV은 1611년에 번역된 성경이다. 언어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하면 그 의미가 변화된다. 약 400년이 경과하면서 단어의 의미가 바뀐 경우도 많이 있고, 1611년 이후에 성서 고고학은 물론 다른 학문도 급격히 발달되어 성경의 배경이나 단어의 의미가 분명히 밝혀진 경우도 많이 있다. 사본의 수도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많이 있다. TR의 원형인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이 겨우 5권의 사본을 사용해서 편집된 것임에 비해 지금 우리는 약 5,400여 권의 헬라어 사본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킹 제임스 유일론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볼 때 KJV은 좋은 번역이고 믿을 만한 번역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번역판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다. 우리가 성경의 영감을 말할 때 그것은 원본에만 국한시키지 결코 사본이나 번역판에까지 확대해서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사본과 번역판은 다소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장두만, 목회와 신학, 98년 7월호)
2. TR(수용원문, Textus Receptus)에 바른 이해
말씀보존학회는 <King James>성경의 원문인 TR만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참된 말씀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글판 킹제임스성경의 서문에 이송오 목사가 쓴 부분을 인용해 본다.
“한편 신약성경의 원문은 사도시대 이후 주로 소아시아의 지역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산재되어 있었고, 이 사본들이 신실한 성도들의 손에 의해 믿는 사람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안티옥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알프스 넘어 유럽으로 옮겨졌고, 독일에서 영국으로 들어갔다. 이 원문은 악한 세력들의 성경 변개 시도와 갖은 박해 속에서도 한 번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옴으로써 정통원문(Traditional Text)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한글 킹제임스성경의 홍보 팜플렛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최초의 원본에서 수많은 현사본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5,366개의 필사본들이 현존하는데, 이 가운데 85%의 필사본들이 “다수필사본”인 헬라어 <표준원문, TR>이며 나머지 15%가 소수필사본인 알렉산드리아 원문이다. 이렇게 알렉산드리아 원문이 소수인 이유는 사람들이 틀린 원문을 필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문에 따라 성경을 판단할 때, 영어 <킹 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표준원문>계열의 성격이고, <개역한글판성경>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성경이다”(홍보 팜플렛 4~5쪽)
정말 그런가? 장두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TR의 기원은 중세의 인문주의자요 신학자인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까지 시중 판매용으로 제작된 헬라어 성경은 전무하였다. 그래서 프로벤이라는 인쇄업자의 종용으로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사본을 수집하였지만, 실망스럽게도 12세기경의 사본 5권 밖에는 입수하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입수한 사본 가운데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는 사본은 단 한 권뿐이었고 그것도 마지막 6절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부득이 라틴어 벌게이트(Vulgate)성경을 번역하여 그 부분을 채워 헬라어 성경을 시중에 내놓았다.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된 인쇄가 1516년 3월 1일에 완성되었다. 1,000페이지 가량되는 방대한 작업을 너무 급히 인쇄했기 때문에 오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헬라어 성경출판은 대성공이었다. 그것은 4판에 69쇄가 발행되었다. 그의 성경은 그후에도 스테파누스(Stephaus), 베자(Beza), 엘제비르(Elzevir)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특히 엘제비르는 그의 2판(1633)서문에서 에라스무스 헬라어 성경의 인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본문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TR(Textus Receptus = Received Text)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고, KJV의 신약 부분은 바로 TR에서 번역된 것이다.”(목회와 신학 98년 6월호)
조지 래드의 말을 들어본다.
“우리는 3세기 반 동안이나 수백만의 신도들이 사용하고 사랑하여 왔던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는 1611년의 <King James Version>이었으며 이것은 최초로 인쇄된 신약성경, Texus Receptus에 기초를 둔 것이고 Textus Receptus는 후기 사본의 대다수로서 이루어진 시리아(Byzantine) 계보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두자. 좀더 최근의 학문 연구로 만들어진 텍스트에 비교해 볼 때 이 Textus Receptus는 빈약한 텍스트일뿐 아니라 판본의 오류가 수 천개나 여기저기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애지중지하여 온 흠정역을 만드는 데 기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신앙이나 신학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하고 객관적인 사실인 것이다.(중략)
Textus Receptus와 KJV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인정되어야 한다. 영감적인 이 책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3세기 반 동안이나 흠정역(欽定譯)은 그 텍스트상에 수 천개의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 백만의 신도들에게 단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왔다. 그 위엄상, 아름다움, 친숙함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에도 다른 번역에서는 느낄수 없는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며 흠정역의 영어 말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인 양 읽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익숙해진 흠정역의 기초가 되었던, 그 시대에 뒤떨어진 텍스트의 결점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다수 번역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참된가?
장두만 교수의 글을 본다.
“사본의 숫자로 볼 때에는 비잔틴 계열에 속하는 사본이 가장 많다. 비잔틴 계열의 사본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사본의 ‘정상적인 전승’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보존’ 때문에 비잔틴 계열의 사본이 많고, 따라서 이 계열의 사본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전승’이란 올바른 사본이 오류가 있는 사본보다 많이 제작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할 수 없는 하나의 가정에 불과한 것이다. ‘섭리에 의한 보존’이란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당연히 그 사본도 보존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본의 무오성을 약속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
그러면 왜 비잔틴 계열의 사본이 많이 제작되었는가? 우리가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한다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릴 것으로 생각된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후 얼마 후부터 로마제국 내에서는 라틴어가 헬라어 대신에 통용되었기 때문에 헬라어 사본을 제작할 필요가 적어졌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는 헬라어 사본이 많이 제작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 사본으로는 라틴어 역본이 많다. 또 다른 이유는 이슬람교가 팔레스타인은 물론 북아프리카, 스페인 및 남프랑스에까지 영향을 미쳤지만,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지역은 15세기까지 이슬람 영향권밖에 있으면서 계속 헬라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히 헬라어 사본 제작이 활발했던 것이다.
3. 한글 개역성경이 말씀을 삭제하고 빼먹었다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에 대하여
말씀보존학회에서는 자신들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을 홍보하면서 자신들의 성경만이 유일하게 “없음”이라는 구절이 없는 참된 성경이라 주장하고 있다. “없음”이라는 구절이 없기 때문에 삭제가 없는 유일한 성경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곧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죠지 래드의 말처럼 TR 자체가 부족한 원문이고 판본 자체에 수 천개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더 신빙성있고 정확한 전기 시대의 사본이 있는 상황속에서 이 부족한 번역들은 교정될 수 있었다.우리들이 사용하는 개역성경에 있는 '없음'이라는 부분은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처럼 원래 있었는데 삭제한 것이 아니라 성경 필사자들이 후기에 첨가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원문비평학적으로 제외시킨 것이다.
한 예를 살펴본다.
■ 요한일서 5:6~7절
▶ 한글 개역성경 :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한글 킹제임스성경(말씀보존학회 발행) :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니,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니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오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영어 KJV에는 이 부분을 이탤릭체로 적어 놓았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이 부분이 없음.)
말씀보존학회에서는 이 부분의 차이점을 이렇게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삼위일체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있는 구절을 통째로 제거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6절의 끝부분을 7절에 놓아 7절이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홍보 팜플렛)
말씀보존학회는 결국 사탄의 세력들이 삼위일체를 부정하기 위해 너무도 삼위일체를 증명하기 멋진 구절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버렸다는 의미이다. 정말 그런가?
R. C. Sproul박사의 말을 들어본다.
“나는 성경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삼위일체의 교리를 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또한 위에 인용한 구절이 참된 말씀임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요한이 이 구절을 직접 쓰지 않았으며 또한 이 구절은 요한 1서의 텍스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확신한다. 왜일까?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희랍어 사본들이 압도적으로 이 구절에 대한 반대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최초의 텍스트들에는 나타나있지 않다. 성경 텍스트에 우연히 첨가된 필사자의 주석을 지적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죠지 래드의 말을 들어보자.
“성부, 진리, 성령인데 이것을 증거하는 이가 셋이다”(요일 5:7, 8 AV) 이것에 관한 증언을 빠뜨렸다는 이유로 Easmus 자신이 비난을 받게 되었다. Easmus는 자신을 변론하여 말하기를 Latin Vulgate에 있는 이 말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리스어 사본에는 아무데도 없었으며 단 한 개의 그리스어 사본에서만 발견된다 해도 그의 후판에 그것을 집어 넣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사본이 나왔을 때 Easmus는 그의 약속을 이행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흠정역에 이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이 그리스어 사본은 옥스퍼드에 있는 한 수도승이 Latin Vulgate에서 그 말을 뽑아 다 쓴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 천개의 그리스어 사본에 이 말이 있는 것은 단지 셋 뿐이며 그 연대는 12세기부터 13세기, 그리고 16세기이다. Erasmus의 신약의 다른 열 두 개의 구절에는 그리스어 사본의 증언의 뒷받침이 없는 부분이 있다.”
장두만 교수
“사본상의 증거가 분명한데도 의도적으로 그 구절을 빼먹었다면 어떤 비난이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NASA나 NIV번역자들이 KJV에 있는 일부 구절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사본상의 증거로 볼 때 원래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필자들이 나중에 포함시켰다는 증거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시킨 사람들이 더 큰 비난을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목회와 신학 98. 6)
이 외에도 합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원문비평학적으로는 논할 구절이 많지만 원리는 같기에 지면상 한 예로 그치고자 한다. 개역 성경이 말씀을 삭제했다는 대담한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무모하고 무지한 주장에 불과하다. 오류가 있을 수 있는 한 인간이 편집한 사본을 마치 원본인 것 마냥 취급하고 또 그것을 한 번 더 번역한 KJV을 우상시 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4. 이송오 목사 혼자 13년간 번역했다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이 무오한 최종권위라는 주장에 대해
▶ 한글 킹제임스성경은 누가, 얼마동안 번역을 한 것인가? “나 혼자했다. 13년 걸렸다.
▶ 그렇다면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 100%로 번역한 것인가?“그렇다.”
▶ 한글 킹제임스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말이 있다던데?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시키려는 말이다.”
▶ 한글 개역성경을 사용해도 원문과 교리적으로 큰 차이점은 없다는 의견도 많이 있던데.
“누가 그런 말을 하는가. 그런 거지같은 00의 말을 듣는가?”
▶ 만약 한글 킹제임스성경에 잘못된 부분이 발견된다면 수정할 용의가 있는가? “물론이다.”
▶ 그 의미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불완전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고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인가?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이 있다. 유죄가 판명될 때까지 무죄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쓰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한글 킹제임스 성경보다 훨씬 좋은 성경을 번역해 냈다고 하자. 그 때까지는 이것이 최종권위이다.”
이송오 목사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 발간 서문에 번역의 표준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구약의 번역은 처음부터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을 영어로 가장 잘 전수한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하고, 신약은 처음에 희랍어 표준원문에서 직역했으며 제 3판을 킹제임스성경과 대조하면서부터 킹제임스성경에 철저하게 어휘를 맞추었고, 구약의 어휘는 히브리 맛소라 원문과 비교, 투영시킴으로써 히브리어, 희랍어,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불가피하게 생길 수 있는 언어의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굳이 번역이 원칙이라고 내세워 틀을 먼저 짜놓고 끼워 넣는 식의 번역을 탈피하였고, 표현기법에 있어서 이전 것보다 더 낫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개역한글판> 성경으로 익숙해져 버린 문화적 및 전통적 통념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성구사전(Young’s Concordance)의 어휘만을 획일적으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본 성경 어휘로 새로운 성구 사전을 만든다는 자세를 취하여 어휘의 통일성과 더불어 의미의 전달에도 중점을 두었다.”(한글 킹제임스성경 발간 서문)
위의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자신의 표현대로 ‘번역의 기준도 없이’ 이것 저것 뒤섞어서 자신의 판단대로 노력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어 킹제임스에서 100% 번역했다는 그의 말은 이내 자신의 말로 거짓임이 판명된 것이다.
그가 혼자 원칙없이 편의주의적으로 번역한 이 성경이 어떤 부분이 오류인지 나열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욥기 29:3이 원래 “촛불”(candle)인데 단어 개역한글판성경(NASV)에는 “등불”(lamp)로 바꾸어 놓았으니 변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준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대민족이 초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등불로 더 정확히 번역해 놓은 것을 변개라고 말하는 정도니 다른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이송오 목사는 영어 킹제임스가 이상한 듯한 부분은 자기 나름대로 고치고 영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역한 부분도 많다.
결론적으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것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도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서의 새로운 번역도 아니다. 그것은 번역으로서는 별 가치가 없는 중역(重譯)에 불과한 것이다. <말씀보존학회>사람들이 번역을 하려면 구약은 MT(Masoretic Text)에서 직접 번역을 하고, 신약은 TR(Textus Receptus)에서 번역했어야 할 것이다.”(장두만 교수)
▶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던 사람들이 보았던 원본을 가지고 한국사람이 한글로 직접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무슨 수단을 쓰든지 수용언어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것이 수용언어로 되어 나온 것이다. 우리 나라도 히브리어 학자나 헬라어 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제 우리 성경에서 틀린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단어가 왜 여기에 쓰여졌는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줄 수 있다. 이 나라에 학자들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는 것이다.”(잡지, 교회와신앙, 95, 2)
결론적으로, 한글 킹제임스성경은 이송오 목사가 개인적인 의욕을 가지고 이것저것을 사용해 편집해 만든 조잡한 번역판인 ‘이송오 버전(Version)에 불과하다. 이 성경을 유일하게 영감된 성경으로, 고칠 것이 전혀 없는 성경으로 말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100년 전통의 권위있는 성서공회를 무참히 깍아내리며 자신의 번역만이 참 성경이라고 하는 그의 주장은 ‘비성경적’이라 말해도 과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러기에 아래의 말은 우리가 매우 위험스럽게 여겨야 할 말이다.
“이제 성경이 나온다. 참 하나님의 말씀이 이 달에 나온다. 참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고대했던 그 성경이 나온다. 그때까지만 사탄의 사람들이 사탄의 성경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장 합동측 총회 이단조사연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