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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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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19 23:14
죽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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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774  

사람들은 대부분 사후세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혼은 육체를 떠나서도 과연 존재를 하는 것인가. 또 존재를 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 것인가 하는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죽음 이후에 대해서 경험을 해보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영혼 불멸과 중간기라는 주제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영혼 불멸

1) 영혼 불멸의 개념

사도 바울께서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했다(딤전 6:16). 왜냐하면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히 사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피조물을 가리켜서도 죽지 않는다고 한 말씀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한 말씀이나(요 3:16), 마귀와 거짓 선지자와 악인들이 세세토록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고 한 말씀이 그러하다(계 20:10). 그러므로 영생은 항상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가 없다.

영생이라는 말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에게 사용될 때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믿는 자의 경우에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축복된 상태를 누리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귀와 악인들의 경우에는, 죽지 않고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의인과 악인의 영생에는 그 내용에서 서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악인들의 경우는 영생이라고 하지 않고, 영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의인의 영혼이든 악인의 영혼이든 결코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즉 복되거나 저주스러운 상태와는 상관없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만큼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 바로 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영생이라고 하기 보다 영혼 불멸이라고 부른다. 그래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생과 구분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2) 영혼 불멸의 증거

사람들은 구체적인 증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영혼이 불멸함에 대해서도 증거를 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을 애써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들 속에서 영혼이 불멸함에 대한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게 된다.

성경은 죽음을 가리켜서, 흔히 열조에게 돌아간다고 표현한다(창 15:15 등). 이 표현은 조상들의 영혼이 불멸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 에녹의 승천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었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고 했기 때문이다(히 11:5).

욥은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했다(욥 19:26).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로 한 말이다. 다윗도 같은 의미에서 말하기를, "나의 의로운 중에 주를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했다(시 17:15).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기를 위하여 기도하던 아들이 죽었을 때,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저에게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고 했다(삼하 12:23). 솔로몬 역시 같은 의미에서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시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말했다(전 12:7).

예수님께서는 영혼이 불멸함을 전제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교훈하셨다(마 10:28). 사도 바울께서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고후 5:1), 만일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쌍한 자들이 되고 만다고 했다(고전 15:19).

솔로몬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전 3:11). 영원을 사모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사람의 본능적인 욕구이다. 사람의 모든 본능적 욕구들은 각각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을 가지고 있다. 식욕은 음식물을 대상으로 가진다. 부귀욕은 재물을 대상으로 가진다. 명예욕은 지위를 대상으로 가진다. 따라서 영원을 사모하는 욕망도 그 대상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그러므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방송 프로 중에 "전설의 고향"이 있다. 전설의 고향은 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귀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한국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줄거리나 형식은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더운 지방에 사는 아프리카 사람, 추운 지방의 에스키모, 서양의 아메리칸 인디안, 동양의 이집트나 인도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육체를 떠난 영혼의 활동에 대한 생각이 모든 민족에게서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음은 영혼의 불멸이 분명한 사실임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은 천사가 죽지 않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눅 20:36). 천사는 육체가 없다. 그러나 천사는 사람과 동일한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동일한 사람의 영혼도 역시 불멸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한편, 영혼이 지닌 특성도 역시 영혼이 불멸함을 말해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영혼은 공간을 차지하는 않는 불가분적(不可分的)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적이라는 말은 불변함, 즉 불멸함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2. 중간기

예수님께서는 장차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재림은 최후의 심판을 위함이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의인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 반면에 악인은 지옥에 던져진다. 그런데 영혼이 불멸한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이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영혼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우리는 한 개인의 죽음에서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중간기(中間期)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는 중간기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만일 중간기가 있다면, 그 장소는 어디일까 하는 것과, 그곳에서는 어떠한 상태로 지내게 될까 하는 것이다.

1) 중간기의 장소

기독교 초기의 성도들은 중간기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사말도 "마라나타(주께서 임하시니라)"라고 했다. 그러나 임박하게 여기던 주님의 재림 소식은 없고, 주변에서는 많은 핍박들과 다른 이유들로 죽는 자들이 늘어갔다. 그리하여 점차 중간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은 죽어서 곧 바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잘 믿는 소수의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 다시 한 번 고통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들은 마침내 중세에 이르러, 천국과 지옥 이외에 연옥이나 림보와 같은 곳이 있다는 교리를 낳게 했다.

중세의 로마 교회는 세례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쳤다.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례는 세례를 받지 이전에 범한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가급적 시간을 늦추어서 임종 직전에 가서야 세례를 받으려 하는 일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도 중한 죄를 범하게 되면, 세례의 효력을 상실하고 구원에서 멀어진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마침내 죽은 영혼이 가게 될 중간기의 장소를 여러 가지로 구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세의 로마 교회가 말한 중간기의 장소들은 다음과 같다. 세례를 받고, 객관적인 공로를 가진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과 중한 죄를 범하여 세례의 효력을 상실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에 들어간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지만, 객관적인 공로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영혼은 연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는 못했으나, 구약시대에 살았던 성도의 영혼과 자범죄를 범하기 이전에 죽은 아이들의 영혼은 림보에 들어간다. 이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연옥과 림보라는 곳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1) 연옥이란 어떤 곳인가

중세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연옥이란 많은 고통 속에서 정화와 연단을 받는 장소이다. 그런데 그 정화와 연단의 기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나 제사 또는 성행으로 단축되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중세 교회의 가르침은 외경 마카비 2서 12:38-45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마카비서는 영감된 권위를 가진 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임할만한 근거로 이용되어 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구절들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 신임을 할 수 없게 한다.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사람의 죄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만 용서받아진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된다. 그리고 우리의 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가졌던 자기 자신의 믿음에 의해서만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성경의 교훈과도 상충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연옥 사상은 교회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패한 교회로 하여금 면죄부를 팔게 하는 구실을 제공할 뿐이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연옥을 사단의 고안물이라고 맹렬히 비난을 했다.

(2) 림보란 어떤 곳인가

림보(Limbus)는 라틴어로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슥 9:11에 나오는 "물 없는 구덩이"를 지옥주위에 있는 지하 동굴이라고 생각하여서 사용하게 된 용어이다. 중세 로마교회는 림보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지만 세례를 받지 못했던 구약시대의 성도들과(Limbus Patrum, 선조림보), 세례는 못 받았으나 자범죄가 없이 죽은 어린아이들(Limbus Infantum, 유아림보)의 영혼을 위한 중간기의 장소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벧전 3:18-20과 요한 3:5이 그 근거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의 내용은 림보와 거리가 멀다. 벧전 3:18-20은 예수님께서 노아의 입을 통해서 노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던 사실과, 그들이 그 복음을 듣지 않다가 지옥에 던져진 사실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요 3:5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그래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 이외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구원은 결코 세례의식이나 사람의 공로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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