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שָׁלוֹם עֲלֵ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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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2 23:47
1. 가정 교회는 과연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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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창암
조회 : 1,976  

소그룹 모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 성도는 소그룹 모임을 통해 교제와 사랑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서 소그룹 모임은 개인 신앙 및 교회 성장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소그룹 모임을 어떻게 운영하는가 하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관별 모임과 구역 모임을 통해 이러한 요구를 충족해 왔다. 그러나 남여 전도회와 청년회 등의 기관별 모임은 사업과 행사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구역 모임은 대개 예배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별 신앙 교육과 돌봄과 권면, 상담, 전도 등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래서 상당 부분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기존의 소그룹 모임 대신 새로운 소그룹 모임을 추구하게 되었다. 각종 성경 공부 모임, 제자 훈련, 순 모임, 셀 모임, 가정 교회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특히 어떤 교회들에서는 지나치게 제도화된 당회 조직 외에 좀 더 유연하고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대안으로 ‘가정 교회’ 모임을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가정 교회야말로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모델이며, 초대 교회는 다 가정 교회 형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과연 신약 교회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신약 교회는 정말로 가정 교회 형태였을까? 그리고 과연 그러한 많은 가정 교회들이 모여서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었을까? 과연 신약 성경은 이러한 주장들에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따라서 이곳에서는 신약 성경이 오늘날 퍼지고 있는 가정 교회 운동과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동조하는 주장을 펴고 있는 신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성경적으로 살펴보고,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방향은 무엇인지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 가정 교회란 무엇인가?

그러면 가정 교회란 무엇인가? 오늘날 무엇보다도 ‘가정 교회’라는 용어의 혼란이 심각하다. 통일교는 지난 1997년경부터 ‘가정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교단명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꾸었으며. ‘참 가정’을 세운다는 것이 그들의 모토이다.1)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성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을 ‘가정 교회(house church)’라고 부른다.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교회들이 실제 그러하였다. 예를 들면 로마 교회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였으며(롬 16:5), 고린도 교회는 아마도 바울과 온 교회의 식주인이었던 가이오의 집에서 모인 것으로 생각된다(고전 16:23; cf. 고전 1:14).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으며(몬 2절),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라는 여자의 집에서 모였다(골 4:15). 또 에베소 교회도 처음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였다(고전 16:19). 이처럼 초대 교회는 성도의 집(가정)에서 모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의 ‘가정’이란 장소로서의 가정을 말한다. 즉, 교회당 건물이나 빌딩이 아니라 성도의 집에서 모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단순히 성도의 집에서 모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가정 교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미국 휴스턴의 최영기 목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정 교회’가 그러하다. 신약 성경에 그들이 말하는 가정 교회의 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장소로서의 가정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교회당 건물이나 상가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영기 목사가 주장하는 ‘가정 교회’는 그런 장소적 의미가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장소적 의미보다 새로운 구조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즉, 그가 말하는 ‘가정 교회’는 교회 안의 한 소그룹 모임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곧 ‘교회 안의 교회’로서 ‘가정 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실 어디에서 모이느냐 하는 장소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며 ‘새로운 교회 구조’가 그 핵심이다.2) 이 ‘새로운 교회 구조’는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役事)를 제한하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와는 달리 ‘성령의 힘을 제한하지 않는 교회 구조’인 초대 교회를 말하는데, 그 당시에는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 안에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3) 그래서 최영기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저는 신약 교회가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조직, 즉 가정 교회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폭발적인 능력이 나오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4)그리고 1996년에 나온 책에서 그는, 자기 교회에는 32개의 ‘가정 교회’가 있다고 말한다.5)

이러한 ‘가정 교회’의 핵심은 교회 안에 있는 ‘가정 교회’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6) 그래서 그것을 ‘구역’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한다. 그러면서 가정 교회와 구역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 구역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묶어 조직되지만 가정 교회는 가정 교회 회원들의 선택에 따라 결성된다.

둘째, 구역 모임은 친교와 서로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가정 교회에서는 예배, 성경 공부, 제자 훈련, 선교, 전도, 친교 등 교회가 하는 모든 역할을 다 한다.7) 따라서 가정 교회는 자그마한 개척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8) 이처럼 최영기 목사가 주장하는 가정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교회이며, 그러한 가정 교회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 교회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교회 안의 교회’라는 구조가 중요하며 어디에서 모이는가 하는 장소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안의 교회’, ‘2층 구조로서의 교회’ 구조는 신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가정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 예루살렘 교회가 “집에서 떡을 떼고”(행 2:46),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행 5:42), “마리아의 집에 .... 모여 기도했다”(행 12:12)는 말은 있어도 그 각각이 완전한 교회였다는 증거는 없다. 예루살렘 교회는 수많은 가정 교회들의 연합체였다기보다도 하나의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가정에 모여서 모임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정에서의 모임은 오늘날의 구역 모임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로마의 교회나 고린도의 교회 등에서도 오늘날 ‘가정 교회’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그런 ‘새로운 교회 구조’의 증거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논할 것이다.

II. 교회란 무엇인가?

그러나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이는 모임을 왜 ‘교회’라고 부를 수 없는가라고 반문한다.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인데 왜 그런 모임이 ‘교회’가 아니냐고 항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벨직 신앙고백」이 교회는 ‘참 신자들의 거룩한 모임’이라고 했을 때, 그 ‘교회’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보편적 교회’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또는 일반적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 그것은 참 신자들의 거룩한 모임이다.”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표현을 따르자면 ‘택자들의 총수’를 의미한다.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불가시적인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모였고, 모이고 있으며, 모일 택자들의 총수로 구성되어 있다.”10) 따라서 성도들 몇 명이 모였다고 해서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아공화국의 개혁주의 교의학자인 헤인스(J. A. Heyns) 교수가 잘 표현한 대로 “참 신자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또는 그들의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다.”11)

모든 성도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는 ‘지역 교회’12)에 속해야 하며 그 교회의 가르침과 치리를 받아야 한다(「벨직 신앙고백」 28조). 우리는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해야 하는데, 참 교회의 표지는 복음의 순수한 전파와 성례의 순수한 거행과 권징의 시행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29조).

참 교회는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거행하는 수종자(목사)가 있어야 하며, 목사와 함께 교회 회의를 구성하는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30조). 그리고 말씀의 수종자들(목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은 교회에 의해 적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31조).

따라서 이러한 선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목사나 당회에 의해 임명되는 ‘목자들’(가정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가정 교회’를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성경적인 의미에서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가정 교회의 ‘목자들’은 대개 교회 성도들에 의해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 않으며 당회를 구성하지도 않는다. 물론 장로들이 다 ‘목자들’이 된다면 이런 문제는 없어지겠지만, 가정 모임을 ‘가정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게 된다.

III. 초대 교회는 다 가정 교회였는가?

최영기 목사와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였다고 주장한다. 최영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정 교회라고 하면 평신도가 지도자가 되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를 말합니다. 신약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는 당시의 교회 형태가 가정 교회였음을 발견합니다.”13) 신약에서의 가정 교회에 대해 깊이 연구한 홍인규 교수도 “사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교회는 모두 가정 교회이다.”라고 말한다.14) 교회 건물 형태로서의 가정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정용성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신약의 교회는 가정에서 모였고, 그 이후 초대 교회도 주후 4세기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주후 313년) 이전까지는 가정에서 모였다. .... 이는 신약 시대의 교회는 모두가 다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음을 시사하여 준다.”15) 침례신학대학교의 장동수 교수도 이와 마찬가지로 말한다.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공동체들은 그야말로 어떤 개인의 집, 즉 가정에서 만나고 예배하고 활동하는 가정 교회로 모였다. .... 주후 3세기까지 교회의 모임만을 위한 교회당 건물은 없었다.”16)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병수 교수는,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신약 성경(그리고 속사도 시대 문서)을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가 가정집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는 가정 교회의 시기였던 것이다.”17)

그렇다면 초대 교회는 다 가정 교회였는가? 신약 성경은 오직 성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 형태 외에 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신약 성경은 가정 교회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 다는 아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신약 성경은 가정 교회 외에 다른 형태도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변 종 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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