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였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권함을 받은 3천명의 성도들이 모인 장소는 바로 성전이었다. 누가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성전이 가장 적합하였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절기 때에는 수십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아마도 성전의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을 것이다(행 3:11). 사도행전 5:12은 이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솔로몬 행각은 이방인의 뜰 동쪽에 있었는데, 미문(美門, 니카노르 문)이 있는 곳과 같은 방향에 있었다. 동쪽에서 미문을 통해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거기에 솔로몬 행각이 서 있었다.18)
사도들은 이 성전에서 가르쳤다(행 2:42, 5:21, 25, 42). 성도들은 여기서 기도하고(행 2:42, 3:1, 4:23-31), 하나님을 찬미하고(행 2:47), 전도하였다(행 5:42).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기 전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늘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눅 24:53).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오순절 전이나 후나 신앙생활의 중심지였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집’에서도 모였다. 그들은 날마다 ‘집’에서 모여 떡을 떼며 음식을 먹었다(행 2:46). 또 성전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가르치고 전도하였다(행 5:42).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의 ‘전체 교회’와 많은 ‘가정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집에서 모인 것을 두고 ‘가정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논할 것이다. 어쨌든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 ‘성전’에서 모였으며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2.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였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난 그들은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왔다(행 18:18,19).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한 후 곧장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 그리고는 얼마 있지 않아 곧 가이사랴로 떠났다(행 18:19-22). 따라서 바울이 떠난 후에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모였을 것이다.
3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다시 에베소에 들렀다. 그는 관례를 따라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강론하였다(행 19:8). 그러자 어떤 이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비방하므로 바울은 그들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2년 동안을 그리하니 아시아에 사는 많은 사람들 곧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행 19:9,10).
따라서 에베소 교회는 적어도 2년 동안 ‘두란노 서원(hJ scolh; Turavnnou)’에서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서원(書院)’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콜레’는 원래 ‘여가(leisure)’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강의실(lecture hall)’을 뜻한다.19) 칼빈은 이에 대해 ‘두란노(Tyrannus)’라는 사람이 비용을 대어 설립하여 시에 기증한 ‘김나지움’일 것으로 추정한다.20)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어쨌든 에베소 교회는 ‘두란노 서원’이라는 강의실에서 모였으며 그곳에서 말씀을 듣고 배웠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6:19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였다고 한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hJ kat! oi\kon aujtw'n ejkklhsiva)’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 몇 번 나타나는데(롬 16:5, 골 4:15, 몬 2절), 초대 교회가 성도의 집에서 많이 모였음을 나타내 준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의 경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도 모이고 두란노 서원에서도 모이고, 두 곳에서 모였다는 말인가? 주일 예배와 친교 및 기도 모임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가지고, 주중의 성경 강론은 두란노 서원에서 한 것일까? 우리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두란노 서원으로 분리해서 나가기 전에 바울은 그의 관례를 따라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강론하였다.
안식일 날 드리는 회당 예배가 곧 그들의 공식 예배였다. 따라서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명확하게 구별되기 전에는 기독교 예배와 유대교 예배가 공존하고 있었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을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인식했으며, 따라서 유대교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었다(행 28:22). 그러한 시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와 교육과 기도의 장소로서 역할하였을 것이다. 두란노 서원으로 분리되어 나온 후에도 그들의 집은 계속해서 교제와 교육과 기도의 장소로서 역할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또는 주일 날 예배를 어느 곳에서 드렸는지, 또 성찬식을 어디서 어떻게 행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어쨌든 오늘날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만이 신약 교회의 모습이라고 하는 주장은 지나치며 사실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신약 교회는 ‘의도적으로’ 가정에서 모였다고 하는 주장도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용성 교수는 “신약 시대에 교회는 단지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가정에 모였던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의도적으로 가정에 모였음을 특히 누가-행전은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21) 곧 가정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예배를 위한 가장 역동적인 무대 환경을 제공하여”22) 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가정에서 모였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신약 교회가 가정에서 많이 모인 것은 자연발생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생겨나는데 마땅히 모일 곳은 없고, 또 예배당을 건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감당할 재정 마련도 쉽지 않으며, 또한 적은 무리를 위해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가정에서 모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정이 가지는 따뜻함과 친밀감, 자연스러움의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가정에서 모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성도의 수가 많을 때는 ‘성전’에서 모이기도 하고 또한 ‘강의실’에서 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목적에 맞게 장소를 선택하였으며, 장소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어디’에 모이느냐보다는 ‘무엇’이 전파되느냐, 그리고 ‘어떻게’ 행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 즉, 외적 환경보다는 복음의 내용과 삶이 더 중요하였던 것이다.
3. 야고보서의 수신자 교회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디아스포라에 있는 열 두 지파’라고 되어 있다(약 1:1). 여기서 ‘열 두 지파’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유대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 “디아스포라에 있는”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이 전체 표현은 팔레스타인과 인근의 수리아 지역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23)
그러면 이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모였을까? 2장 2절에 보면 ‘회당’이란 표현이 나온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 신약에서 ‘회당(sunagwghv)’은 원칙적으로 ‘건물’ 또는 ‘모임’을 뜻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들어오다’는 동사와 함께 사용되었으므로 건물적 의미라고 생각된다. 야고보서에서 ‘모임’을 뜻할 때에는 ‘교회(ejkklhsiva)’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약 5:14).24) 비록 여기의 ‘회당’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assembly)’을 가리킨다고 보더라도, 거기에서 장소적 개념 또는 건물적 개념을 배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떤 장소, 유대인의 회당처럼 예배하기 위해 정해진 장소에 모인 모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3절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는 표현이 그러한 장소성과 건물 구조를 시사하고 있다.25) 따라서 여기의 ‘회당’이란 표현은 건물로서의 ‘회당’이란 개념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이 ‘회당’은 물론 유대인들의 회당은 아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회당을 빌려 사용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야고보서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회당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따로 사용한 건물을 뜻한다. 오늘날 용어로 말하자면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 되겠으나 당시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사용하던 용어인 ‘회당’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초기 기독교 예배 형태가 유대인의 회당 예배 형태에서 유래했으며, 동일한 유대인들이 예배드리게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회당’이란 용어 사용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에 팔레스타인과 인근의 수리아 지역에 곳곳마다 교회당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로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이내 분란이 생겨서 분리하여 나왔을 것이다. 처음에는 믿는 자들의 가정에서 예배들 드리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이 전에 예배드리는 건물인 유대교 회당을 본떠서 그들 자신의 (기독교) 회당을 마련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가 이 편지를 기록할 즈음에는 유대의 마을 곳곳에, 그리고 수리아 지역의 곳곳에 기독교 회당 건물이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야고보서의 기록 시기를 대개 로마서보다 이른 시기로 보는데,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주후 50년대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이미 유대 지역 곳곳과 수리아 지역 여러 곳에 교회당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곳에서 예배드렸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다 가정 교회였으며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주후 313년) 이전까지는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주장26)은 지나친 것이며 신약 자체의 증거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처음에 성도의 가정에서 모임을 가진 경우가 많이 있으며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신약의 ‘모든 교회’가 다 가정 교회였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약의 교회는 환경과 형편에 따라 ‘성전’에서 모이기도 하였고, ‘강의실 홀’에서 모이기도 하였고, 또한 따로 짓거나 빌린 ‘교회당 건물’에서 모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신약의 교회는 ‘의도적으로’ 가정에서 모인 것은 아니며 형편에 따라 가정에서 모이기도 하고 홀에서 모이기도 하고, 또는 별도의 건물에서 모이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획일적으로 다 가정 교회 형태였으며 또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교회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이며 사실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